사하라 사막을 횡단하는 경기가 열린다. 아니 아마존 밀림을 종단하는 경기라도 상관없다. 매순간 생명의 위험까지 느껴야 하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 온 힘을 다해 다른 사람을 이기고 높은 등수 안에 들면 상당한 보상이 따르게 된다. 단, 설사 중간에 포기하더라도 그에 준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이를테면 1등이 상금 백만원에 금메달을 받는다면 중간에 포기한 사람도 상금 50만원에 같은 금메달을 받게 된다. 과연 자신의 선택으로 경기에 참가하려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더구나 선택도 아닌 강제로 참가하는 것이라면 그런 경기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어떻겠는가.

 

젊은 세대가 코인이나 부동산 같은 일확천금을 기대할 수 있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 이유인 것이다.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뛰면서 청년 세대들은 부동산 가격의 안정보다 그렇게 천정부지로 뛰고 있는 부동산 시장에서 자신도 한 몫 잡기만 바라게 되었다. 청년 세대가 오세훈을 지지한 이유였다. 실제 오세훈이 서울 시장이 되고 부동산 가격은 코인처럼 미친 듯 들썩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현정부와 민주당은 자기들이 살 수 없게 대출을 제한하고 있었다. 코인으로 돈 좀 벌어보려니 규제하겠다 난리치고 있다. 왜 자기들에게 기회를 허락하지 않는가. 기회를 막으려고만 하는가. 이런 것들이야 말로 자기들에게 남은 유일한 기회인데.

 

보상이 별 볼 일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사막을 횡단해도, 밀림을 종단해도 결국 손에 들어오는 것은 본전도 안되는 100만 원의 상금 뿐이다. 그렇다고 경기를 포기할 수 없으니 지름길을 찾아야 하고 그 안에서 이익을 챙겨야만 한다. 그마저도 안되면 마음의 위안이라도 찾아야 한다. 내가 경기를 완주하고도 얻는 이익이 별 것 아니라면 완주하지 못할 경우 돌아갈 보상은 그보다 가혹한 것이어야 한다. 벌을 주어야 한다. 자기보다 못한, 완주했어도 순위가 한참 떨어지는 이들에게는 더 큰 고통과 불이익이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이미 갖고 있는 것마저 빼앗아서 자기에게 달라. 왜? 그만큼 경기는 힘들고 고통스럽고 위험하기까지 했으니까.

 

누군가 그러더라. 청년세대와 장년이상의 세대를 구분하는 가장 결정적인 기준이 바로 공정에 대한 것이라고. 그런데 근본은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청년 세대의 공정 역시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룰 위에 존재하고 있다. 형편이 되지 않으면 자식도 낳지 말라. 2000년대 초반 노무현을 지지하던 당시 청년세대 가운데 누군가 했던 말이었다. 비정규직 파업에 대해서도 역시 당시 다수 청년들은 학교 다닐 때 공부 열심히 했으면 비정규직은 되지 않았을 것 아닌가 당당히 말하고 있었다. 지금 40대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번 돈으로 의료보험료 내서 다른 사람이 혜택보는 건 부당하다. 결론은 승자는 보상을 받아야 하고, 패자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것이 공정한 것이다. 더구나 그 경쟁이 도저히 견디기 힘들 정도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라면 더욱. 그러니까 끝까지 버티며 경쟁할 동력이 생기는 것 아니던가.

 

청년 세대가 말하는 공정이란 바로 그런 공정인 것이다. 너무 힘드니까.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그래서 당장에라도 놓아 버리고 싶을 테니까. 그런데 그러지도 못하니 요구하는 것이다. 더 큰 보상은 바라지도 않는다. 결국 경쟁에서 승리해서 대기업 정규직 되어봐야 미래란 뻔한 것이다. 의사 변호사 검사 판사 대기업 임원 자신들과 상관없는 이야기임을 안다. 그러니까 벌을 주라. 그래서 자기들처럼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승자도 되지 못한 이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해 달라. 기성세대가 말하는 사회적 안전망이란, 사회적 평등이란 그래서 그들에겐 반칙이나 다름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경쟁에서 졌는데. 심지어 포기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벌을 주지 않으면 자기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여성에게도 벌을 주라. 그래서 반페미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과 홀대는 당연한 것이다. 성적이 안되어 비정규직이 되고 차별과 홀대를 받는 것은 오히려 너무나 정의로운 것이다. 아니면 자기들이 지금 이렇게 노력하는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승자는 상을 받고 패자는 벌을 받는다. 버티면 버틴 만큼 보상을 받고 포기하면 그만큼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왜? 그래야 자기들이 이 힘겨운 경쟁을 이어나가는 이유가 설명이 될 테니까. 뭐가 문제인가? 그만큼 경쟁이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모든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면 그 고통을 덜 힘들고 덜 고통스러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나마 장년세대와 청년세대를 나누는 기준이 될 것이다. 그러면 될까? 그래서 이준석이 마치 청년세대의 대변인처럼 나타나게 된 것이었다. 그런 뜬구름잡는 소리 말고 실질적으로 패자와 낙오자들에게 더 가혹한 벌을 내리는 현실을 선택하자. 그리고 그것은 정확히 국민의힘의 정체성과도 이어지는 것이었다. 국민의힘의 범죄나 부정, 비리에 관대한 이유이며, 그들의 차별적 발언들에 무감각한 이유이기도 하다. 승자는 상을 받고 패자는 벌을 받는다. 너무나 슬픈 이유라 더 붙일 말도 없어 보인다. 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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