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진심을 알고자 한다면 말이 아닌 행동과 결과를 봐야 한다. 사람은 때로 너무 쉽게 진심이 아닌 말을 내뱉고는 한다. 쉽게 하기 힘든 말일수록 더욱 자신을 속여가며 듣기 좋은 말로 진심을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괜히 남의 말 믿고 선의로 대했다가 원망만 듣고 마는 것이 바로 이런 경우인 것이다. 들어주었으면 하는 진심은 따로 있는데 그저 하는 말만 들으려 하고 있으니 당연할 밖에.

정의연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던 당시부터 언론들은 물론 정의연에 부정적인 개인들이 한결같이 쏟아내던 말들이 있었다. 정의연이나 윤미향 당선인의 배임이나 횡령에 대한 의혹은 오히려 뒷전이다. 그보다는 어째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충분한 돈을 지급하지 않았는가. 나아가 충분한 돈을 주겠다던 일본 정부의 제안을 끝까지 거절하고 있었는가. 이를테면 2015년 위안부 협상이나 그보다 전에 있었던 일본 정부의 사이토 안이라는 것들이 그것이었다. 보다 일찍 무라야마 시절 아시아 여성기금에 대한 입장도 비슷하다. 받겠다는 할머니들이 있었는데 어째서 정대협은 그것을 막아섰던 것인가.

정대협의 피해자 홀대론을 넘어선 소외론이 정대협의 과대표론으로 이어지는 이유다. 그러므로 그동안 위안부 문제 해결에 있어 정대협의 입장은 피해자들의 요구와 주장을 모두 대변하지 못하며, 그로 인해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큰 해만 끼치고 말았다. 그러므로 정대협을, 이제는 정의연을 배제하고 진정으로 피해자들을 위한 해결방안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저들이 주장하는 해결방안이란 무엇인가. 무라야마 담화이고, 사이토안이고, 2015년 위안부 협상이란 것이다. 사과는 대충, 중요한 건 돈을 받고 끝내는 것이다. 그러면 이같은 언론들의 여론몰이를 이용수 할머니나 자칭진보들은 모르고 있는가. 내가 아는데 설마 모르기야 할까. 언론들이 무궁화회를 앞세워서 정의연을 공격하는 상황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오로지 정의연만을 비판하며 윤미향을 배신자라 비난한다. 진짜 의도가 어디에 있는가 너무 분명해지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무궁화회 피해자들을 비난할 수 없는 것처럼 이용수 할머니를 탓할 수도 없는 것이다. 피해자가 어떤 식으로 가해자와 합의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피해자 자신이 결정할 자기의 권리인 것이다. 그래서 아시아 여성기금을 받았을 때도, 일본정부가 출연한 10억엔을 받겠다 했을 때도 누구도 한 마디 뭐라 하지 못했었다. 어차피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인데 도중에 지쳐서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을 무어라 한다는 자체가 오히려 무엄하고 무도한 것이다. 그냥 단지 이용수 할머니의 입장이 바뀌었다. 말과 다르게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방치하고 오히려 조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입장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내가 정의연을 해체헤야 한다 주장하는 이유인 것이고. 현정부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다. 일본과의 관계를 생각하다면 어떻게든 과거사 문제를 매듭지어야 하는데 정의연이 배제되면 오히려 현정부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더 넓어지게 된다. 어찌되었거나 모든 책임과 결과에 대한 평가는 현정부의 몫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러면 자칭 진보들은 어째서 알면서도 이토록 보수진영의 주장에 대해서는 한 마디 반박조차 없이 정의연과 윤미향 공격에만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역시 자칭 진보들도 그동안 생각이 바뀐 것이다. 현정부와 여당이 정의연과 가까워지는 듯 여겨지니 정의연의 방식이 아닌 다른 해법을 찾겠다. 정의연을 아예 부정하고 자신들은 내놓을 수 없는 보수진영의 대안을 사실상 방관한다. 반드시 직접 칼로 찔러야지만 살해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칼로 찌르고 비틀어 헤집는 것을 보면서도 망만 보는 것 역시 살해의도가 있다 봐야 하는 것이다. 다만 자기 손에 피를 묻히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그러고보면 정의연 하나 해체되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상황이다. 정부는 일본 정부와 위안부 협상에 있어 선택지가 넓어지고, 보수진영은 과거 정부들에서 과거사를 제대로 풀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며, 자칭 진보 역시 과거사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게 된다. 피해자들이야 당연히 상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으니 나쁘지 않다. 그런다고 박근혜와 이명박을 풀어주기에는 저지른 일이 너무 많으니 그건 또 예외. 물론 정의당 입장에서는 문재인 정부보다야 이명박과 박근혜가 더 가깝게 여겨질 테니 생각이 다를 수 있겠다.

아무튼 재미있는 상황인 것이다. 현정부와 여당이 불리한 것 같이 보이면서도 또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정치의 오묘한 점일 것이다. 친일이니 과거사니 하는 족쇄에서 자유롭고 싶은 것은 보수나 진보나 마찬가지다. 특히 보수진영의 입장에서 한일 무역전쟁의 상황까지 더해지며 아무래도 과거사 문제가 꽤나 걸리고 있었을 터다. 정의연만 사라지면 모두가 행복해진다. 그러기를 바란 언론의 공격인 것이고. 그럼에도 아직 확인하지 못한 것이 있기에 민주당은 시간을 두고 인내하는 모습을 보인다. 내일 이용수 할머니가 어떤 입장을 보이는가에 따라서 민주당의 판단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언론이 아니다. 피해자 당사자다. 잊어서는 안된다. 정치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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