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 말 가운데 틀린 게 없다지만 진짜 개소리라 생각한다. 가는 말에 채찍질한다? 예쁜 놈 매 한 대 더 때린다? 물론 의미는 이해한다. 결국 채찍질해야 먼저 목적지에 도착하고, 한 대라도 더 맞고 더 열심히 공부하면 더 높고 귀한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중을 위해 지금을 희생해야 한다. 그런데 싫거든? 그냥 오늘 떡 하나 더 먹고 미운 놈 하는 게 더 낫거든? 아마 내가 이상한 모양이다. 오래전부터 저런 문화가 정말 싫었다.

 

보상은 아주 나중에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고서 알아서 누리면 된다. 그 전까지는 그저 못하고 아쉬운 것들만 야단치고 매를 들어가며 고치고 바로잡을 뿐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놈들이 저 모양인 것이다. 성장과정에서 누리지 못한 보상을 한꺼번에 다 누리려 하니 온통 저 난리들인 것이다. 법을 집행해야 하는 놈들이 법을 어기고, 더욱 법을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놈들이 저 편할대로 법을 만들고 이용하려고나 들고, 정작 그런데도 오히려 사회분위기는 그런 그들에게 관대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어렵게 노력해서 그 위치에까지 올랐는데 그런 정도는 봐 주어도 좋지 않겠는가. 그러라고 부모는 자식을 기르고 선생은 학생을 가르친다.

 

문제는 그렇게 먼 미래만 바라보다 보니 당장은 보상은 커녕 온통 아프고 싫고 짜증나는 체벌과 야단과 비난 뿐이란 것이다. 그러면서 또 말한다. 보아라. 역심히 노력하지 않은 결과 저처럼 벌받으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가난하고 누추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것이 노력하지 않은 대가며 벌이다. 그러므로 저렇게 살기 싫으면 지금을 인내하며 그저 열심히 노력해야만 한다. 자연스럽게 학습한다. 노력하지 않으면 벌받아야 하고, 노력했으면 마땅히 모든 것을 누려야 한다. 그래야 지금 매맞고 야단맞는 그들도 스스로 노력해서 성공한 삶을 누리려 할 것이다. 아니더라도 자신이 노력하지 않은, 그래서 잘하지 못한 대가이니 당사자들 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세상의 정의다.

 

인터넷이 쓸데없이 정의로워진 이유인 것이다. 정확히 악플러란 없다. 악플을 다는 놈들 치고 악플이라 생각하고 악플을 다는 경우란 매우 드물다. 자기딴에는 정의라 생각한다. 악을 응징하고 불의를 바로잡고 정의를 세우는 행위라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가 판단하기에 악이라 여기는 대상을 향해 단호히 매를 드는 것이고, 불의라 생각하는 대상을 향해 기꺼이 거친 말로 야단을 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반성하며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면 그것대로 좋은 것이고, 아예 세상에서 사라지면 정의를 실현한 것이 된다. 벌써 10년이 넘어가는 타진요 사태가 그랬었고, 바로 어제 먹방유튜버 쯔양이 은퇴를 선언한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그러고보면 기자 것들이 갈수록 질이 떨어져가는 것도 인터넷 댓글 쓰듯 기사를 쓰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조국 전장관의 딸 조민씨가 혼자 사는 오피스텔에 밤늦게 건장한 남자기자들이 몰려와 문을 두드리며 위협을 하더라는 이야기는 이미 작년 기자간담회 때 나온 바 있었다. 당시 그 이야기를 들은 여자기자들의 반응이 흥미로웠다. 기자가 취재하다 보면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취재를 위해 필요하면 충분히 용인될 수 있는 행동이다. 자신들은 정의의 투사다. 진실을 탐구하여 전하는 메신저다. 세상의 악과 불의를 찾아내고 응징하기 위해서는 어떤 행동이든 따라서 용인될 수 있어야 한다. 협박도, 사칭도, 사기도, 위협도, 조작도, 왜곡도, 그래서 악을 응징하고 진실만 전할 수 있으면 그 수단이 무엇이든 당연히 인정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어느새 전가의 보도처럼 되어 버린 성인지감수성마저 기자의 취재과정에는 적용이 되지 않을 정도다. 여자 기자가 스스로 밤늦게 남자들이 떼로 몰려가 여자 혼자 사는 집 문을 두드려도 취재를 위해서라면 괜찮다 말하는 수준이란 것이다. 

 

오보를 내도 괜찮다. 사실확인까지 하고 깡그리 무시한 채 전혀 엉뚱한 내용으로 보도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취재를 통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어도 그렇게 기사를 내는 쪽이 악을 응징하는데 더 유리하므로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한국경제만 취재하고 오보를 냈던 것이 아니었다. 한겨레도 정작 안성 쉼터를 판 당사자와 인터뷰까지 하고서도 의혹이라고 기사를 내고 있었다. 명분은 단순했다. 그렇게 의혹으로 보도를 해야 당사자들이 진실을 밝히고 잘못을 바로잡으려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진짜 잘못이 있으면 검찰수사를 통해서 법적인 책임까지 물을 수 있다. 아니더라도 자신들의 잘못은 없다. 언론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다.

 

딱 자칭 정의로운 네티즌이라 일컫는 이들과 너무나 닮은 행동이며 태도라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쯔양이 이미 오래전에 모든 사실을 밝히고 양해와 용서까지 구한 사안에 대해서도 어쨌든 잘못을 했으니 대가를 치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 실수로 저지른 잘못이고 그 크기가 그리 크지 않더라도 아무튼 작은 잘못이라도 저질렀으니 그만한 대가를 치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참피디가 영웅이 된다. 쯔양이라는 불의의 희생자도 만들었지만 그보다 제대로 단죄한 이들도 적지 않았었다. 뒷광고를 실제로 했다고 밝혀지고 그로 인해 해명과 사과 동영상까지 올렸던 이들의 경우가 부당한 공격에 결국 방송까지 접여야 했던 한 사람의 존재를 지우고 만다. 어찌되었거나 자신들이 옳았던 것도 있지 않은가. 히틀러가 학살한 유대인 가운데도 살인자나 강간범, 악독한 고리대금업자가 있었을지 모른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난징에서 일본군이 학살한 중국인 가운데 조선인을 상대로 사기를 친 사기꾼이 있었을지도. 그래서 그들이 저지른 학살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러고보면 확실히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방송을 그만두려는 쯔양의 등뒤에 뒷광고나 일삼던 사기꾼이라는 낙인을 큼지막하게 찍어준 것도 SBS와 JTBC라는 방송사들이었다는 것이다. 기자들이었다. 아마 그들 역시 나름대로 네티즌들과 똑같이 정의를 구현하는 차원에서 그리했을 것이다. 아주 작은 잘못도 잘못이다. 잘못은 밝혀서 응징해야 한다.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못하도록 철저히 짓밟아야 한다. 기자인 자신들이 그들에게 벌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먹방 같은 건 아예 보지도 않고 쯔양은 그저 워낙 유명해서 이름만 아는 정도인데도 그래서 돌아가는 상황이 정말 엿같다는 것이다. 매번 반복이었다. 이번은 단지 대상이 쯔양이라는 유튜버였을 뿐 이전에도 연예인을 대상으로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래서 타진요의 이름을 첫머리에 언급했던 것이 아니던가.

 

조국을 잡아야 한다. 조국을 죽여야 한다. 그 전에는 노무현을 잡아야 한다. 노무현을 죽여야 한다. 정의연을 잡아야 한다. 정의연을 죽여야 한다. 그리고 또 누가 있더라? 그래서 검언유착이 아닌 것이다. 언론이 보기에 이동재와 한동훈이 했던 작업들은 유착이라기보다는 마땅히 자신들이 해야 할 의무이고 책임이까지 했던 것이다. 기자가 취재하면서 검사와 상의해야지 누구와 상의하는가? 기자가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검사에게 의견을 구해야지 누구에게 의견을 구하겠는가? 협박을 해서라도 진실만 밝혀내면 되는 것이다. 부정한 거래를 통해서라도 정의만 실현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유시민도 잡아 죽여야만 한다. KBS가 어째서 한동훈을 구하겠다고 그런 오보까지 내고 바로 사과까지 했던 것일까? 자기들이 보기에 너무 당연한 언론의 사명이기까지 한데 범죄로 모는 것을 차마 보고 있지 못하겠어서인 것이다. 유시민을 잡아 죽여야 할 이유가 너무 분명했던 한 곳이 바로 KBS였었다.

 

처음에는 그저 쯔양의 처지가 너무 안되었고 쯔양을 몰아세우는 네티즌들이 뭣같아서 그들을 비판하려 쓰기 시작한 글이었는데 어느새 네티즌이 아닌 언론과 기자를 향하고 말았다. 그만큼 닮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다. 기자가 네티즌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인터넷에 리플 달 듯 무책임하게 기사를 써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를 경계하고 말리려는 선배기자들을 아예 자기들이 앞장서서 징계하고 입까지 틀어막으려 하고 있다. 이같은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당사자들이야 어떤 고통을 받든. 취재의 대상이 된 그들이 어떤 괴로움을 호소하든. 자신들이 낸 잘못된 기사로 인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어도 자신들은 그저 진실과 정의만을 위해 그런 것이므로 감히 책임을 물으려 해서도 안된다. 진짜 딱 악플러들이란 것이다. 단지 남들은 악플이라고 다는 것을 자기 이름까지 내걸고 기사랍시고 쓰고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렇다고 자기 기사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 물으려고 하면 그건 또 싫고. 부모들이 잘못 키운 것이다. 아니 이 사회가 저들을 잘못 키운 것이다. 어린애들도 아니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책임지기 싫은 어린애들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래서 인천국제공항 보안검색요원들에 대한 정규직전환에 대한 언론의 보도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벌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노력하지 않은 대가로 남들보다 열악한 조건에서 벌을 받으며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다른 사람들처럼 정규직이 되어 안정된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보아 넘길 수 있을 것인가. 설사 자신들이 인용한 단톡방의 내용이 허위라 할지라도 자신들은 충분히 그럴만한 문제를 제기한 것 뿐이다. 오히려 당당하다. 벌주는 사회, 벌주는 사람들, 그리고 그 벌을 주기 위해 기사를 쓰는 기자들.

 

확실히 그런 점에서 베테랑 기자들이 말하는 그래도 전과는 너무 다른 법조팀의 분위기란 것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원래 검사가 벌주는 사람은 아닌 것이다. 그냥 수사하고 기소하고 원고가 되어 재판을 진행하는 역할일 뿐이다. 하지만 언론과 검사가 만나면서 재판도 시작하기 전에 이미 판결까지 마치고 있었다. 일베와 검찰이 결합한 그 무엇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러고보니 그들도 검언과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누구의 잘못이다? 그들의 부모가 잘못 키운 탓이란 것이다. 조국 전장관도 잘못했다. 아무리 서울대 법학과에 학생이 많아도 교수로서 그들을 바로 가르치고 이끌어야 할 책임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도대체 교수로서 자기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친 것인가.

 

조국 전장관의 딸 조민씨나, 악플러들 앞에서 손까지 떨며 창백한 얼굴로 죄인처럼 사죄해야 했던 쯔양이나, 취재를 이유로 여자 혼자 사는 집까지 떼로 찾아가 두드리던 기자놈들이나, 오래전 일까지 끄집어내어 정의로운 비난과 욕설과 모욕을 퍼부어대던 악플러들이나, 그리고 벌을 받아야 하기에 그나마 안정적인 정규직조차 될 수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까지. 검찰은 정의롭고, 언론은 진실되고, 대중은 곧 진실이며 정의여야 한다. 어디부터 바로잡아야 할까. 빌어먹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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