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과학에 대해 알면 알수록 결국 불교의 사유에 빠져들고 만다. 정확히 고대 인도인들의 상상력이다. 인간과 그리고 우주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은 물음이다. 과연 우리 인간은 어디에서 왔고 우주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그러나 시간을 거스르고 또 거슬러 고대인도인들이 찾아낸 대답은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이었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그런 시작은 없다. 당연히 끝도 없다.


우주의 탄생 이전에 대해 상상해 보자. 불가능하다. 우리가 경험으로, 혹은 선험으로 알 수 있는 모든 것들은 지금 우주 안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인간의 지식이란 존재하는 우주 가운데서도 아주 일부만을 인지하고 인식할 것이다. 그런데 우주는 바로 우주의 탄생 이후 당연한 말이지만 생겨난 것이다. 수십억년의 광대한 공간도, 시간도 모두 우주과 더불어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면 공간과 시간이 탄생하기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무엇이 있었는가고 묻는 자체가 공간과 시간을 전제하는 것이다. 공간도 시간도 없는데 도대체 그곳에 무엇이 존재했을까? 최소한 인간이 아는 형태의 존재는 아닐 것이다.


의식을 넓혀간다. 인간에게서 지구로, 태양계로, 은하계로, 우주로, 그리고 그 너머로. 우주는 과연 얼마나 넓은가? 우주 밖에서 보는 우주는 얼마나 거대한가? 공간도 시간도 존재하기 이전의 우주 이전의 우주를 기준으로 우주는 얼마나 거대해졌는가? 공간이 없으니 우주가 얼마나 거대해졌는가의 기준도 없다. 시간이 없으니 우주가 얼마나 오래되었는가의 기준도 없다. 우주라고 하는 자체가 없다. 태양이라는 거대한 천체 가운데 원자 하나에서 전자가 지나가는 경로에 있던 한 지점이란 태양에 있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그 존재하지 않는 한 점에서는 과연 지금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그러면 거기서 일어나는 일들을 인간은 인지할 수 있을까? 


인간의 진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어째서 그토록 인간이 진화를 통해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오랜 과학적 추론과 관찰, 실험의 결과가 어째서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논란의 대상이 되는가. 어떻게 우연이라는그 불확실한 과정을 통해 인간이라는 무엇보다 특별한 존재가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유일한 존재인데 우연이 그런 존재를 만들어냈다는 가정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 인간중심의 사고다. 인간이란 특별한 존재이기에 다른 특별한 존재가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을 것이다. 지구와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은 그 특별한 존재의 특별한 의지에 의해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인간이 우주적인 차원에서 수소원자 표면위로 전자가 스치는 궤적의 작은 흔들름만도 못한 존재라면 어떻게 되겠는가. 무한에 가까운 우주에서 고작 태양계 하나, 그 태양계 가운데 행성 하나, 그 행성 위에 존재하는 고작 50억의 개체들에 불과하다.


우주적인 차원에서 인간과 같은 존재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인간이 아무리 진화라고 성장하더라도 우주적인 차원에서 끼칠 수 있는 영향이란 거의 없다시피하다. 과연 지구에만이라도 인간이라는 존재가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 환경을 훼손하고 있다고 떠들어대지만 지구적인 규모에서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해도 좋을 정도다. 그저 때되면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태풍조차 미리 예방하거나 중간에 없애지 못한다. 멸종한 종은 새로운 종이 대체할 것이고, 바뀐 환경은 그에 적합한 새로운 종을 출현시킬 것이다. 인간이 마침내 사라졌을 때 지구와 지구의 환경에는 어떤 영향을 남기게 될 것인가. 그 영향은 과연 얼마나 이어지게 될 것인가.


그냥 우연히 무작위로 키보드를 두드리도록 세팅해놓은 컴퓨터에서  수십억년의 시간 동안 한 부분을 떼어 놓고 보니 세익스피어의 문장과 유사한 것이 발견되었다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의 어느것도 완벽하지 않다. 완결되어 있지 않다. 수많은 허점이 있고 나머지 짜투리가 있다. 그 가운데 유의미한 몇 가지만이 현실에 발현되어 존재한다. 인간의 게놈 가운데 그 역할이 밝혀진 것이 그리 많지 않다. 다시 말하지만 수십억년이다. 인간의 상상을 넘어선 시간이다. 그 시간을 인간은 제대로 묻기라도 할 수 있을 것인가.


묻고 묻고 또 묻는다. 사유하고 사유하고 또 생각한다. 한바탕 물거품과 같다. 비로소 빅뱅을 통해서 우리가 아는 시간이 생겨났다. 공간이 생겨났다. 비로소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의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공간이 아직 없다면 공간을 인식할 수 없다. 시간이 아직 없다면 시간 역시 의식할 수 없다. 얼마나 큰가도 알 수 없다. 얼마나 작은가도 알 수 없다. 얼마나 오랜가도 당연히 알 수 없다.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다. 찰라이기도 하고 영원이기도 하다. 다행히 인간의 의식은 제한적이나마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 다만 그 너머의 것까지 보기에는 인간의 의식은 한계가 있다. 우주란 과연 무엇인가. 그 우주에서 인간이 가지는 위치란 어떤 것인가. 인간이란 우주적인 규모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때로 허무하기도 하다. 히틀러의 학살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우주적 규모에서 본다면 그냥 아주 찰라의 원자핵보다도 작은 티끌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선한 자는 복을 받고, 악한 자는 벌을 받는다. 자기가 한 만큼 당연히 대가를 받게 된다. 그만큼 각자의 행위가 가지는 의미는 크다. 그러나 당장 한국에 사는 자신에게 브라질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 살인사건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어린 소녀를 강간한 범인이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든 얼마나 대단한 의미를 가질 것인가. 선도 악도 없다. 죄도 벌도 없다. 현상만이 존재한다. 의미는 인간이 만든다. 빅뱅 이후 태어난 시간과 공간처럼.


하기는 그래서 더 의미를 부여하려 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마저도 없다면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자신은 과연 세상에 존재하는가. 그냥 인간의 의식이 인간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 여기고 있을 뿐인 것은 아닐까. 아무것도 없이 단지 인간의 의식이 인간을 현실에 존재할 수 있게 한다. 존재할 수 있도록 의미를 부여하고 색을 칠한다.


논란의 해법은 간단하다. 우주적 규모에 있어서 지구의 위치는, 그리고 인간의 크기는. 우주씩이나 신경쓸 필요도 없다. 수십억년의 지구 가운데 모두가 이간에 신경쓸 필요도 없다. 단지 인간이 특별한 것이 문제다. 인간인 자신이 특별하다. 특별한 곳에서 왔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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