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아직 여성운동의 전통이 취약하다. 여성주의에 대한 지식도 없고 인식 역시 빈약하다. 심지어 여성들 자신들마저 여성주의와는 전혀 거리가 먼 삶을 스스로 선택하여 살아가고 있다. 여성이 남성에 종속되지 않은 독립적인 존재임을 강조하기에는 여성주의 자체가 이미 너무 낯설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이미 여성들 자신이 느끼고 있었다. 대한민국이라는 현실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여성으로서, 아니 아내이자 며느리로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아들을 낳아야 했고, 그리고 아들을 낳기 위해 심지어 아직 핏덩이인 딸을 죽여야만 했었다. 뒤웅박팔자라는 말을 한다. 뒤웅박에 똥을 넣으면 거름통이 되고 돈을 넣으면 돈통이 되듯 여성의 삶도 다 남자 만나기에 달린 것이다. 도박에 미쳐 술만 마시면 폭력을 휘둘러도 그것이 자신의 운명이겠거니.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것이 어딘가 잘못되어 있음을 여성들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소연할 곳이 필요했다. 공감해줄 대상이 필요했다. 여성주의자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정작 여성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이들 다수의 일반 여성들에게까지 절실하게 닿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이들 평범한 다수의 여성들의 목소리 또한 여성주의자들에게 들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서로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것처럼 - 하기는 다수의 중요한 여성주의자들은 계급적으로 주류인 상류층에 속한 경우가 많았었다. 평범한 이 사회의 일반적인 여성들을 이해하기에는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너무 적었다. 그들의 여성주의는 이 사회 여성의 현실이 아닌 그들이 보았던 권위있는 누군가의 저작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세계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다. 논리도 다르다. 그래서 여성주의는 오히려 다수 여성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메갈리아인 것이다. 메갈리아가 주장하는 것은 매우 직접적이고 직관적이다. 그냥 남자들이 잘못했다. 남자들의 잘못으로 인해 자신들이 억울하다. 남자들이 한 그대로 남자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여성주의에 대한 첨예하고 정교한 이론 따위 알지 못해도 자신들이 얼마나 부당하고 억울한 대우를 받아왔는가는 경험으로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 원인이 무엇이고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 그것을 어떻게 되갚아주면 되는 것인가. 페미니즘의 단계 가운데 극단적인 레디컴 페미니즘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페미니즘을 여성과 사회 모두에 각인시켜야 한다. 여성이 차별받는 현실을 모두가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자면 멀리 있는 이론이나 논리보다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직관이 더 빠르고 쉽다. 남자들에게 그대로 돌려주자. 그리고 자연스럽게 현실에 불만을 가진 여성들은 메갈리아로 몰려들게 되었다.


그래서 함부로 메갈리아를 공격하지 못하는 것이다. 워낙 여성주의의 전통이 일천하다. 여성들 사이 여성주의 자체가 그다지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메갈리아를 불편하게 여기는 남성들의 편에서 그들과 함께 공격하고 나섰다가는 자칫 여성주의 자체가 와해될 가능성이 있다. 남성이 여성주의마저 정의하고 강제한다. 남성의 눈치를 보며 남성들이 지지하는 여성주의만을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나마 한국사회에서 여성주의가 어느 정도 뿌리내리고 있다면 걱정이 덜하겠지만 그러지 못하니 더 조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분노를 세상에 내놓기 시작했다. 절대 그 의미를 부정해서는 안된다. 


화려한 수사와 논리로 여성주의를 이론적으로 공박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여성이 아니거나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당장 빚때문에 먹고 죽을 농약을 사들고 돌아가는데 농업의 현실이 어떻네 떠들어봐야 농민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분노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과 그런 여성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보편이라는 이름의 권력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그들은 이해할 생각조차 없다.


일탈이 있다면 그것대로 비판하면 되는 일이다. 범죄가 있다면 법에 따라 처벌하면 끝나는 일이다. 과연 누가 메갈인가. 누가 메갈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는가. 개인의 신상을 뒤지고, 개인의 사상과 양심까지 검열하려 한다. 강제하려 한다. 메갈을 하지 마라. 메갈 근처에도 가지 마라. 설사 자신이 아무 잘못도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메갈과 관계가 있다는 것만으로 너는 악이다. 죄인이다.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배제되어야 한다.


가장 불쾌한 것은 사회의 일부를 다수의 힘으로 철저히 배제하려 하는 그 의도다. 폭력이다. 권력이란 폭력이 정의를 가졌을 때 나타난다. 자신들이 정의가 된다. 그 정의를 확인하려 한다. 다수의 폭력이 권력이 되어 나타났을 때 그것을 파쇼라 부른다. 다양성은 대중의 선택에 의해 배제된다.


범죄는 범죄다. 일탈은 일탈이다. 여성들 역시 당당해져야 한다. 일탈과 범죄를 통해서라도 주장하려는 바가 있다. 회피는 비겁한 것이다. 절박하지 않으면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메갈리아라서가 아니다. 그들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정의는 항상 상대적인 약자를 향해 기울어 있다. 유일하게 믿는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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