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한국인들이 어떻게든 한사군의 존재를 한국의 역사에서 지우고 싶어 하는 것과 달리 유럽에서는 오히려 로마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을 문명화의 시작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마저 존재한다. 당연한 것이 고대, 아니 중세까지도 유럽인들에게 문명이란 곧 로마였고, 유럽의 문명화란 바로 이 로마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마 당시에도 아직 식민지화되지 않은 당시 갈리아의 유력자들 가운데는 로마로부터 이름뿐인 관직과 작위를 받고 그것을 앞세우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바로 거기서 중세 유럽의 작위들도 유래되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장면 아닌가?

 

당장 한반도에서도 삼국시대까지 왕들은 묘비 등에 왕호와 더불어 중국 황제로부터 받은 관직을 앞세워 기록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중국의 영토도 아니었고 중국 황제의 지배를 받는 것도 아닌 명실상부 독립국이었지만 당시 동아시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강력한, 그러면서 가장 고도의 문명을 이루고 있던 중국의 황제로부터 받은 관직이 가지는 의미가 그만큼 특별했기 때문이었다. 자기가 왕으로 지배하는 나라 안에서야 당연히 자기가 최고일 테지만 나라 밖으로 한 걸음만 나가도 마찬가지로 자기 나라에서 최고인 왕들이 널리고 널린 것이다. 그 가운데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하다. 더불어 나라 안에서도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근거로써도 필요한 것이다. 중국의 황제로부터 지배를 인정받고 관직까지 받았다. 그래서 심지어 이웃 나라 왕보다 높은 관직을 받기 위한 외교전까지 치열하게 전개되었었다. 중국의 황제로부터 이만큼 인정받았으니 내가 더 낫다.

 

실제 들은 이야기다. 아마 여기서도 몇 번이나 반복해 이야기했을 것이다.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하지 않았으면 지금쯤 자기들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선진국 일본의 국민으로서 그 모든 것을 함께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벌써 수 십 년 전에 미국에 의해 이식된 앞선 민주주의와 자유로운 사회분위기, 그로부터 비롯된 높은 경제력과 문화수준에 더해 우리와는 많은 부분에서 비교가 되는 일본의 역사와 전통까지 모두 우리들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말을 한 사람은 당시 제법 이름이 알려졌던 자칭 진보 필진이었다. 지금 어디서 뭘하는가는 모르겠는데 당연히 서울대 나왔고 시민사회활동도 왕성히 하던 진보정당의 당원이었었다. 대한민국이 식민지에서 해방된지도 벌써 70년이 넘어가는 지금 어째서 사회 곳곳에 친일이 기승을 부리는가 설명해주는 한 예가 될 것이다.

 

사실 일본만이 아니다. 어째서 보수적인 시민들이 모여서 시위를 할 때면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를 앞세우는가? 드라마 '송곳'에서도 나왔을 것이다. 평생 자기가 만나 본 사람 가운데 가장 높은 사람이 군대에서 대대장이었기에 틈만 나면 그를 앞세우는 아마 미화노동자였을 것이다. 고작해야 대대장이다. 나중에 얼마나 어디까지 진급했을지 모르겠지만 당시 그의 계급이라고 해봐야 널리고 널린 무궁화 두 개 짜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대대장이란 존재에 수 십 년이나 지나서까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었다. 가장 비천한 노비들이 주인을 위해 자식까지 바쳐가며 충성하는 이유인 것이다. 결국 노비에서 풀려나고도 주인의 성씨를 따라 자기 성씨를 정하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당장 오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서도 프랑스 국민으로써 프랑스 국왕이 화려한 차림을 하고 호사스럽게 파리 시내를 행진하면 마음이 뿌듯해지는 것이다. 그래도 내가 저 프랑스 국왕의 백성이다.

 

몸은 조선에 있으면서 정신은 일본인이고자 했던 이들이 일제강점기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었다. 대표적으로 '메밀꽃 필 무렵'의 이효석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인간은 일본식 집에서 평소에도 일본식 기모노를 입고는 일본어만 쓰고 살았었다 한다. 어디 이효석 뿐이겠는가. 해방되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일본은 선진국으로 경제적으로도 미국을 위협하며 최고의 위치에 올라 있었다. 아직 가난하고 미개한 수준의 개발도상국 한국과 비교하는 자체가 미안할 정도로 한참 저 멀리 앞서고 있었다. 그런 일본의 정신적 시민과 충실한 한국인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특히 자기가 잘났다 여기는 이들의 자존감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  오죽하면 대한민국이 해방되지 않았으면 바라는 말들까지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랬다면 자신은 이 한심한 나라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닌 선진국 일본의 시민으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조국일가에 대한 언론의 사냥이 시작되었던 것도 일본과의 무역전쟁이 발발한 직후부터였었다. 어딜 일본에 감히. 조국이 자신의 SNS에 올렸던 '죽창가'를 지금까지도 자칭 보수와 자칭 진보를 막론하고 한일관계를 상징하는 어떤 매개로써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어딜 한국따위가 감히! 어딜 조국 따위가 감히! 어딜 문재인 따위가 감히! 아마 당시 아베가 한국을 제재하겠다며 무역전쟁을 걸어오지 않았고 한국정부가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았다면 조국일가에 대한 사냥이 당시 그렇게 일방적으로 흘러갔을까? 지금도 윤석열의 입에서 '죽창가'가 나오고 언론이 그를 중요하게 받아쓰고 있는 현실이 말해주고 있을 것이다. 일본에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그런 언론인을 포함한 한국사회 주류들의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 이번 코로나 정국에서의 일본에 대한 보도태도일 것이다. 차라리 일본이 본국이다. 일본인으로서 한국의 방역을 한 걸음 떨어져 보는 듯한 기사가 주를 이룬다. 심지어 경쟁관계에서 어떻게든 한국의 방역을 훼방놓고 격을 떨어뜨리려는 의지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보수와 진보가 따로없다. 방송과 신문이 따로 없었다. 주류와 비주류가 따로 없었다. 그 결과 중앙일보에서는 '조센징'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하고 말았다. 다른 건 몰라도 '조센징'이라는 역사적인 맥락까지 포함한 단어가 데스킹 과정에서 걸러지지 않은 것은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일상에서 그 단어를 써왔기 때문이 아닐까.

 

한국인을 비하하는 멸칭이야 당연히 다양할 것이다. 가장 흔하게 일반적으로 쓰이던 것이 엽전이네, 짚신이네, 저고리네, 혹은 그냥 직접적으로 조선놈, 한국놈, 어글리코리안 등이 일상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표현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역사적 맥락을 무시할 수 없는 조센징이나 반도인 같은 멸칭은 특정 계층에서나 주로 쓰일 뿐이었다. 바로 일본에 자신을 동화한 스스로 일본인이고자 하는 이들이었다. 의외로 학벌 좋고 집안도 좋고 사회적 지위도 높은 인간들이 주로 자주 쓰고 있었을 것이다. 하필 굳이 조센징이었던 이유였을 것이다. 기사를 쓴 기자 자신도, 그 기사를 걸러야 했을 데스크 역시 그 단어에 전혀 아무런 문제점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친근하고 익숙했다. 당연하게 여겨졌었다.

 

새삼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독립국이 된 것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현실에 얼마나 많은 것인가. 대한민국이 일본의 지배를 받으며 일본과 하나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을 차라리 한스러워하는 이들이 한국사회 주류에 얼마나 널려 있는 것인가.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어느새 한국의 저력이 일본을 넘보는 상황에 와 있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일본이 정체되다시피 한 세월 동안 열심히 달려 온 결과 이제는 일본마저 위협할 수 있는 위치에 이르러 있다.

 

자칭 보수만 문제가 아니란 것이다. 자칭 진보도 다르지 않다. 아니 어쩌면 서울대 자체가 문제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경성제대라는 말이 나오는 것인가. 서울대로 대표되는 한국사회의 주류들의 인식수준이 이렇다는 것이다. 일반 시민들과 다른 수준에 있는 선택된 엘리트들이기에 그 정체성마저 일반 한국인들과 달라야 한다. 그러고보면 정의당이 반민주당을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선언한 것도 그와 아주 무관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자칭 진보가 정의연을 공격한 이유이기도 했다. 한국 근현대사의 그늘일 것이다. 앞으로 없기를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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