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 군을 따라다니며 병사들을 상대로 몸을 팔던 성매매 여성들의 존재는 거의 전쟁의 역사와 함께한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역사가 유구할 것이다. 아예 거의 남성들로 이루어진 병사들의 사기관리를 위해 지휘부나 혹은 정부에서 직접 그런 여성들을 배치하고 관리하며 운용한 경우 역시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2차세계대전 당시 구일본제국의 군부가 자국의 여성 가운데 자원자를 받아서 위안소를 운영한 자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본군이 직접 위안소를 운영하기로 결심한 것은 러시아혁명 직후 벌어진 적벽내전에 참전했다가 겪은 어떤 사건 때문이었었다. 당시 공산주의혁명에 반대하던 다른 열강들처럼 일본 역시 백군을 지원하려 연해주에 직접 파병까지 했었는데, 바로 여기서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현지 여성들을 강간하다가 성병에 걸린 병사 다수가 전력에서 이탈하는 상황을 직접 겪은 것이 계기가 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병사들이 현지 여성을 강간하도록 내버려두기보다 군이 엄격하게 통제하고 관리하는 위안소를 통해 검증된 대상을 통해 성욕을 해소하도록 하는 편이 군의 전력유지에 더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을 한 것이었다. 물론 그런다고 진짜 일본군이 전쟁 도중 강간을 안했느냐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위안소는 위안소대로 운용하고 강간은 또 강간대로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 단지 애초 계획은 그랬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위에 쓴대로 일본 자국 내에서 주로 성매매 여성들을 대상으로 지원자를 받아서 위안소에 배치될 여성들을 모집했었다. 말 그대로 군 위안부였었다. 위안이라는 말 자체는 위로하여 편안케 한다는 뜻이지만 그 대상이 성욕이 되면 의미는 달라지게 되는 것이었다. 대부분 남성으로 이루어진 병사들의 욕망을 위로하여 편안케 함으로써 사기를 높이고 전투력을 강화시키는 목적에서 위안소는 설치되었고 위안부란 곧 그런 위안부에서 병사들을 위해 봉사하는 성매매여성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천황폐하의 군대를 위해서 봉사할 여성을 모은다 하면 주로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 가운데 돈 때문에라도 자원하는 이들이 아주 없지 않았고, 덕분에 아직 전황이 좋을 때는 기간을 채우고 상당한 대가까지 챙겨서 고향으로 들어간 이들이 제법 되었다 한다. 문제는 전선이 확장되며 동원된 병력까지 늘어나면서 언제까지고 그런 방식으로 자원만 받아서는 필요한 수효를 모두 채우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속여서 유인하거나, 강제로 납치해서 강간하고 감금하거나, 혹은 인신매매로 사들이거나. 그래서 이후 위안소와 관련한 전쟁범죄들이 저질러지게 되었던 것이었다.

 

아마 여기서 눈치챈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어째서 일본의 극우나 한국의 보수가 위안부라는 표현에 저토록 집착하는 것인가. 위안부란 가치중립적 표현이다. 더욱 자원하여 돈까지 벌고 돌아온 이들이 없지 않았던 일본에서는 위안부란 전쟁범죄와는 거리가 먼 그냥 군에서 운용한 위안소에 있었던 군을 상대로 하는 성매매여성을 가리키는 말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종군위안부란 자체가 1970년대 종군기자나 종군간호사처럼 자발성을 전제로 군이 공식적으로 운용한 공창으로서 위안소를 정의하여 붙인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당시까지 아직 일본군 위안소에서 벌어진 반인륜적인 전쟁범죄가 공식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연히 종군위안부란 말 자체에도 어떤 강제성이나 범죄의 이미지는 들어가 있지 않다. 그래서 묻게 된다. 일본인 가운데 자원해서 종군위안부가 되었던 이가 있다면 그 또한 피해자라 불러도 좋은 것인가. 그냥 종군위안부가 되었다는 자체만으로 피해자로 여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군위안부 자체는 피해자가 아니다. 바로 일본 극우와 한국 보수가 종군위안부라는 표현을 고집하는 이유인 것이다.

 

그러면 어째서 일본군 성노예인가. 성노예라는 말은 사실 현실에서도 의외로 매우 흔하게 쓰이는 단어다. 이를테면 누군가 다른 사람을 납치해서 감금한 뒤 위력을 사용해서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저질러 왔다면 그를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성노예라는 말에는 이 모든 과정들이 다 담겨 있다. 속여서 유인했든, 위력을 사용해 무력화시키고 강제로 옮겨 왔든, 결국 납치한 것이고, 인신을 구속하여 감금한 것이고, 자신의 욕망을 강제하여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 극우나 한국의 보수가 질색을 하는 것이다. 성노예와 위안부는 그 발생과 원인에 대한 이해와 해결의 방식 역시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일본의 극우든 한국의 보수든 결국 금전적인 해결만이 전부인 양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 본질에 대해서는 외면한 채. 그리고 그런 주장이 어느새 대세가 되어 버렸다. 다른 것 필요 없고 그저 피해자들을 위해서 경제적 지원만 다했으면 되는 것이다.

 

어째서 정의연이 이 문제만이 아닌 전반적인 여성의 인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여가며 활동해 왔던 것인가. 그래서 이용수 할머니도 스스로를 여성인권운동가라 정의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조금 더 논의를 확장하면 종군위안부 자체도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범죄로 정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성매매 자체를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범죄로 여기는 사고라면 가능하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의해 여성이 다수의 남성들을 상대로 자신의 성을 도구화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 그 자체를 문제삼는다. 과연 실제로도 그러한가. 종군위안부를 실제로 그런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거의 없다시피 하니 저들 역시 종군위안부라는 표현을 고집하게 되는 것이다. 그 안에 의도가 담겨 있다. 그래서 정의연에서도 보다 직접적인 다른 표현을 공식화하려 노력해 왔던 것이고. 결국 실패했지만.

 

그러나 결국은 당사자들이 싫다면 그만인 거니까. 솔직히 일본 극우와 한국 보수의 승리라고 생각한다. 정의연은 피해자들을 납득시키지 못했고, 일본 극우와 한국 보수는 피해자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므로 일본인 종군위안부와 마찬가지로 한국은 물론 아시아와 유럽의 수많은 피해자들 역시 단지 종군위안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그 다음은? 그래서 결국 돈이다. 얼마나 피해자들을 위해 쓰였는가. 피해자들을 위해 얼마나 되는 돈이 돌아갔는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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