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조선의 왕권은 약했었는가? 언제부터인지 조선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만 보면 왕과 맞먹으려는, 심지어 왕의 머리위에서 존재하는 권신들이 당연하게 악역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런 권신의 존재와 맞서 왕권을 회복하는 것이야 말로 나라와 백성을 위한 정의인 것처럼 대부분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실제 역사에서도 신하들이 왕의 머리 위에서 놀고 왕은 그런 신하들의 눈치나 보는 존재였던 것인가.

 

간단히 중국 전한의 선제가 곽광의 일족을 제거하기까지의 과정과 고종 즉위 후 흥선대원군이 안동 김씨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과정을 비교해 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선제가 곽광도 아닌 그 자신들을 제거하는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했었다. 이미 대부분 군권까지 곽광의 자식들이 쥐고 있었기에 그를 빼앗고 만에 하나 모를 반격의 여지까지 없애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많은 주의를 기울여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 나가야 했었다. 반면 흥선대원군은 어떠했는가. 아니 그 흥선대원군이 실각하는 과정조차 바로 당일 입궐하려는 흥선대원군을 막아서는 것으로 끝내고 있었다. 왕명이라는 한 마디에 안동 김씨는 조정을 이루는 여러 세력 가운데 하나로 전락하고 심지어 전국의 서원마저 철폐될 지경이었다. 흥선대원군이 잘나서? 원래 조선의 왕권이 그만큼 강했던 탓이다.

 

심지어 안동 김씨에 의해 꼭두각시로 세워졌다는 철종조차도 한 번 제대로 화를 내면 안동 김씨의 수장인 김좌근마저 머리를 조아리고 용서를 구해야만 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어째서 철종은 안동 김씨의 전횡을 묵인하며 그들의 꼭두각시 역할만을 해야 했던 것인가. 그것이 권력인 때문이다. 어째서 후한의 황제들은 그토록 환관들을 총애하여 국정을 혼란으로 몰아간 것일까? 환관이 사라지면 외척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스스로 명문으로써 상당한 일족을 거느리고 세력을 이룬 외척과 황제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환관 가운데 누구를 선택해서 권력을 몰아주어야 하는가는 산수만 할 줄 알아도 바로 답이 나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부모가 아닌 환관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고, 일거수일투족까지 아내나 자식이 아닌 환관에 기대어 살아간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권력에 있어서도 환관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권력을 나누고 부정과 전횡을 묵인하는 대신 오로지 황제 자신에게만 충성하게 만든다. 역대 중국의 황제들에게 어떤 충신보다도 믿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존재가 환관이었기에 그것이 권력이 되어 전횡을 저지르게 만든 것이다.

 

권력이란 절대 혼자 힘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 권력을 쟁취하는 것은 얼마든지 혼자서도 가능하지만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연하게 협력자의 존재가 필요하다. 소작농의 자식으로 태어나 평생을 한으로 여겼던 주원장이 정작 명을 건국하는 과정에서는 지주들을 위한 정책을 앞세워야 했던 이유였다. 덕분에 당시 원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강남의 지주들이 주원장의 편을 들어 명의 건국을 돕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로 건문제를 동정하던 강남의 세력이 아닌 자신을 지지하는 하북의 유력자들을 택해서 영락제는 도읍을 자신의 근거지인 북경으로 옮겼던 것이었다. 조선도 여전히 고려왕조를 지지하며 새로운 왕조에 반감을 가진 개경을 떠나 한양에 새로운 도읍지를 정했던 것이 아닌가. 권력과 이해를 공유하는 기반이 되는 세력이 있어야 권력 역시 안정되게 권력을 이어나갈 수 있다. 그런 친위세력의 도움 없이는 숭정제처럼 스스로 목을 매달거나 단종처럼 왕위에서 내쫓기고 죽임을 당하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권력을 가진 자는 가장 먼저 자신의 권력을 지켜 줄 우군부터 확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을 지켜 줄 우군이 없었기에 임기 내내 고립되어 온갖 공격에 시달리다 오욕속에 죽어갔던 노무현 전대통령과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을 비교해 보라. 낙하산이네 뭐네 해도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하고 행정부의 권한에 속하는 여러 자리에 여권의 인사들을 임명한 행위에 대해 그다지 비판적으로 보지 않는 이유인 것이다. 전리품을 나누지 않으면 누구도 함께 힘써 싸우려 하지 않는다. 이익이 없다면 충성도 연대도 없다. 공동운명체가 되어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이익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노무현 전대통령은 정동영이 그 전리품을 나누었고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이 직접 나누었다. 이낙연이 불만을 가지는 이유일 것이다. 자기가 민주당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이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상황이 이래서야 앞으로도 문재인 그늘에 가려 있을 뿐이다. 그런 불만에서 나온 오판이 아니었을까. 사면론은. 문재인 대통령의 편에 서 있는 동안에는 자리도 있고 이익도 있다. 그러므로 민주당 정치인들도 모두가 문재인 대통령의 편에 선다. 그래서 참여정부 당시에도 정동영의 뒤에 정치인들은 줄서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숙종이 몇 번이나 환국을 일으키며 신하들을 숙청한 것이었다. 소론에 의해 왕위에 오른 경종이 노론을 숙청한 이유이기도 했었다. 선조는 너무나 비대해진 동인을 제거하기 위해 서인과 손잡고 정여립의 모반을 이용하여 기축옥사를 일으켰었다. 다만 광해군은 선조에 의해 불안해진 자신의 입지를 너무 의식한 나머지 소수파에 불과한 대북에만 의지했다가 결국 서인과 남인의 연합에 왕위를 잃고야 말았다. 태종부터 세종까지 양성된 실무관료들은 서로 분열하여 단종을 지키지 못했고, 절치부심한 종친과 공신의 후예들은 수양대군을 중심으로 결집하여 그를 왕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면 영정조에 의해 사실상 당파가 사라지고 왕을 중심으로 사대부의 줄세우기가 끝난 세도정치 시기 왕들에게 선택지란 무엇이 있었을까? 왕과 가까운 한양의 벌열들만이 사실상 관직과 권력을 독점하는 가운데 소수 가문들의 문벌화가 이루어지면 선택지란 결국 그 가운데 하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장 세력이 큰 안동 김씨를 등뒤에 세우면 감히 다른 누구도 자신에게 도전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라고 정조가 김조순을 순조의 장인으로 삼고 고명을 맡겼던 것이었다.

 

말하자면 철종과 안동 김씨의 관계는 중국 전한 선제와 곽광의 관계와 비슷하다 봐야 할 것이다. 전한 선제가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곽광의 선택 덕분이었다. 곽광이 소제의 뒤를 이어 황제로 추대된 창읍왕의 행실을 문제삼아 그를 쫓아내고 선제를 차기 황제로 선택했기에 그는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당대 곽광의 권세는 감히 견줄 자가 없을 정도로 절대적이었었고, 그런 곽광의 선택으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기에 선제 역시 절대적으로 곽광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곽광을 부정하는 순간 자신의 즉위마저 부정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심지어 곽광이 죽고 그 일족을 모두 주살한 뒤에도 곽광 만큼은 신원하여 제사까지 지내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당대에 안동 김씨와 견줄만한 세도가가 없고, 바로 그 안동 김씨에 의해 왕위에 오른 만큼 안동 김씨의 권력을 부정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안동 김씨와의 공존은 필수다. 다만 그렇더라도 철종이란 존재가 사라지면 안동 김씨의 권세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실제 고종이 즉위하고 그렇게 되었다.

 

흥선대원군이 정권을 잡고 안동 김씨를 몰아내는 과정도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안동 김씨를 대신할 세력으로 흥선대원군이 선택한 것이 바로 종친과 풍양 조씨였는데,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안동 김씨의 상당수를 여전히 조정에 남겨두고 있었다. 즉 종친인 전주 이씨와 대비 조씨의 가문인 풍양 조씨에 기존의 안동 김씨의 신파, 여기에 더해 중전 민씨의 친정인 여흥 민씨까지가 모여 조정을 이루고 고종의 왕권을 지탱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들 정도 힘이 있으니 안동 김씨도 몰아내고 고종의 권력기반도 단단히 다잡을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신하가 감히 왕의 눈을 똑바로 보고 심지어 막말까지 하는 드라마의 상황 같은 건 실제 역사에서는 없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중국의 역대 황제들보다는 못했다 뿐이지 조선의 왕권은 세계사적으로 보았을 때도 상당히 강한 편이었다. 왕권이 약하다 하려면 왕이 언제든 내쫓길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 살아야 하는데 왕권이 가장 약했다는 철종조차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도대체 어느 놈이 시작한 것인지 아주 드라마 볼 때마다 짜증나는 이유인 것이다.

 

영정조의 개혁이 오히려 조선을 약화시키고 쇄망의 길로 이르게 했다는 주장도 나오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당쟁이 사라지고 결국 왕을 중심으로 줄세워진 문벌만이 남게 되자 결국 왕과 특정 문벌과의 결탁이 세도정치로 이어지며 조선을 지탱해 온 국가의 근본까지 흔들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 세도정치의 시작을 연 안동 김씨의 김조순조차 정조가 어린 세자 순조를 위해 안배한 것이었으니. 당쟁이 문제가 아닌 당쟁이 사라진 이후가 문제였던 것이다. 상식과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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