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본선이다. 이번 시합만 이기면 4강에 오를 수 있다. 아니 대진에 따라 결승도 노려 볼 수 있다. 그런데 상대 공격수가 수비진의 빈틈을 노려 골키퍼의 사각에서 완벽한 슛찬스를 만들었다. 이거 먹히면 진다. 상대 선수에게 뚫긴 수비수 입장에서 선택이 뭐가 있을까? 반칙을 해서라도 끊어야 할까? 아니면 페어플레이를 위해 골이 들어가는 걸 보고 있어야 할까?

 

스포츠중계를 듣다 보면 흔히 듣게 되는 멘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해당 선수의 파울이 몇 개 남았다. 농구의 경우는 파울 다섯 개가 누적되면 더이상 경기에 출장할 수 없고, 축구의 경우도 옐로우카드가 축적되면 레드카드가 되어 퇴장당하게 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어차피 파울이란 말 그대로 반칙이므로 일부러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니 파울의 갯수에 딱히 신경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경기운영을 위해 주력선수의 파울은 매우 중요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왜? 필요할 때 써야 하니까. 파울로라도 상대를 막아야 할 때는 파울도 서슴지 않을 수 있는 것이 또한 선수의 역량인 것이다. 그렇게라도 이겨야 하는 것이 응원하는 팬들의 기대를 짊어진 선수의 숙명이기도 하다.

 

아마추어는 말 그대로 아마추어이기에 개인이다. 그냥 자기만족이다. 대부분 아마추어 경기가 언제 어디서 열리는지도 모르니 그냥 자기가 좋아서 뛰는 선수들끼리 자기만족으로 시합을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도 단체경기라면 팀이니까, 동료니까,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모두의 바람과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도 때로 승리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물며 프로선수다. 국가적인 기대를 등에 업은 대표선수다. 자기만족이 아니라 팬들의 기대를 충족하고 국민들의 바람을 이루어주기 위해 경기에 뛰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양심을 위해 그런 시합에서 정정당당한 승부를 위해 이길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해야 하겠는가. 그것도 개인의 선택일 수는 있겠지만 프로선수로서, 혹은 대표선수로서 자각이 크게 부족하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야구 한화의 팬 입장에서 한화가 가을야구에서 우승을 노려볼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자기 양심을 위해 오로지 정정당당한 승부만을 추구하는 선수와 팀의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선수 가운데 누구를 더 바라게 될지 생각해 보면 간단할 것이다. 롯데 팬 입장에서 마침내 한국시리즈까지 팀이 진출했는데 양심을 지키겠다고 승리를 위한 편법이나 반칙을 거부하는 선수가 있다면 또 어떤 입장이겠는가? 물론 그런 시도들을 상대팀에 들켜서 오히려 승부에 불리한 영향을 주는 경우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어떻게든 이기고자 하는 그 마음을 팬이라면 몰라줄 리 없다. 이길 생각이 없는 게 문제지 이기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은 팬이라면 용인할 수준일 수 있는 것이다.

 

어째서 보수유권자 사이에서는 현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이토록 높기만 한 것일까? 조금 떨어지는가 싶으면 바로 회복하며 단단한 결집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낙연이 다시 재기하기 어려울 것이란 이유다. 보수유권자들이 윤석열을 지지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도 대통령선거에 나가 이길 수 있을 것 같기에 지지한 것이었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당연히 빨갱이들을 이기고 대통령이 되어 대한민국을 지켜냈으니 무지성으로 지지해주는 것이다. 정치인으로서 선거에 이겨서 당선된 것만으로도 기본은 한 것이다. 반드시 막아야 하는 적대세력이 있다면 그를 막아낸 것만으로도 자기 할 몫은 다 한 것이다. 어째서 김한길류가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는가? 별 것 없다. 한명숙에 대해 오히려 지지층에서 별다른 동정론이 나오지 않는 이유도 그들이 선거에서 제대로 이겨 본 적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 이기지 못하는 정치인은 자격이 없다. 아무런 가치도 없다. 이길 수 있고 이겨야만 정치인이란 유권자들에게 가치를 갖는다.

 

이낙연의 지지율이 빠지기 시작한 계기는 몇 차례 재보궐선거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일방적으로 깨지는 상황을 반복한 것이 가장 컸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영선 당시 후보가 그렇게 간절하게 요청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일방적으로 깨지고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었다. 그냥 지는 정도가 아니라 지고 난 이후의 태도가 전혀 어떤 기대도 걸기 어려운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반복된다. 경선에서 졌는데 승복하기는 커녕 자기 계파와 지지자를 내세워 선거를 망치는데 열심이었다. 민주당 후보가 선거에 지더라도 상관없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지 못하더라도 오히려 자기에게는 좋다. 민주당이 추구하는 정치적 이념과 지향과 가치에 동의하는 지지자들의 입장에서 그를 부정하는 이낙연의 행보를 어찌보아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비토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낙연을 반대정당 지지자들은 좋다고 떠받들어주는 것이고 말이다. 이낙연이 있어야 자기들이 이길 수 있으니까. 기본적으로 보수정당 지지자가 민주당 후보에 표를 줄 가능성은 전혀 없다시피 한데 이낙연에 대한 우호적인 평가는 거의 그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수박이 수박인 이유다. 새삼 선거를 앞두고 각계에서 사람들을 끌어들여 영입입네 발표하는 것에 회의를 가지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굳이 민주당일 필요가 없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고 다수당이 되어 민주당이 추구하는 정치를 펼쳐야 할 필요가 없다. 민주당이 아닌 다른 정당이 정권을 잡고 다수당이 되어 마음대로 하더라도 자기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원래 민주당 소속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이념과 지향과 가치에 동의하여 구성원이 된 동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정당 아무데라도 상관이 없었다. 그저 우연히 영입을 제안한 것이 민주당이었기에 민주당에 몸담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민주당이 선거에서 지더라도 그것이 자기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이재명의 절박함과 이탄희의 담담함이 가지는 근본적 차이인 것이다. 이재명에게는 어떻게든 민주당을 1당으로 만들어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있는 것이고 이탄희에게는 그런 것이 없는 것이다. 주 69시간을 일하고도 더 적은 임금에 주휴수당도 없이 해고의 위협 속에서 일해야 하는 노동자의 처지따위 판사로 특권을 누리며 살아온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이야기인 것이다. 산업재해로 다쳐 불구가 되고 심지어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있어도 판사로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아온 자신과 직접 와닿는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전쟁이 일어난다고 이탄희 자신이 끌려갈 것인가. 중국과 러시아와 관계가 악화되어 경제가 안좋아진들 이미 특권층인 자신에게 얼마나 큰 피해가 있을 것인가. 검찰이 자기를 수사하려 해도 판사이니 재판을 맡은 판사들이 알아서 챙겨 줄 것이다. 아쉬울 것도 절박할 것도 없으니 누구라도 상관이 없다. 결국은 민주당 외의 인사가 민주당 배지를 단 부작용인 것이다.

 

사실 이렇게 복잡하게 쓸 것도 없다. 민주당 소속 정치인을 판단하는 지지자들 사이에 가장 효과적인 기준이 이미 있다. 바로 언론이 해당 정치인을 어떻게 다루어주느냐 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극단에 이르는 편향적 정책들을 오히려 지지하고 있는 이상민을 자칭 진보언론인 한겨레가 어떻게 써주고 있는가. 노랑봉투법에 기권한 이원욱을 한겨레나 경향은 어떻게 다루어주고 있는가. 언론이 좋게 크게 써주는 정치인은 민주당 입장에서 좋은 정치인이 아니다. 그렇게 크게 써주었던 정치인 가운데 하나가 지금 국민의힘에 가 있다. 언론이 좋아하면 민주당에 해악이 되는 것이다. 민주당만 아니면 된다는 것이 2찍 진보를 포함한 언론의 공통된 입장이다. 이탄희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그러고보면 이탄희가 지지자들 사이에 주목을 받게 된 계기도 이낙연과 비슷할 것이다. 희한하게 이탄희에 대해서는 언론이 좋게 써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소영도 다시 판단하려고. 민주당에 좋은 정치인이 없는 것도 아닌데 유독 이들만 부각해서 쓰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어째서 이탄희는 안되는 것인가. 사실 이 한 가지면 이유로는 차고 넘친다 할 수 있다. 언론이 좋아한다. 언론이 좋아하는 정치인이 좋은 정치인일 수 있을까?

 

더불어 정의당이 연동형비례대표제 지켜달라 이재명에게 부탁했다는데 그래서 정의당 의석이 늘면 과연 윤석열의 폭주를 저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인가 생각해 보자. 지난 2년 가까운 세월동안 정의당은 윤석열과 민주당 둘 중 어느 쪽을 더 많이 비판했을까? 어느 쪽을 더 많이 공격했고 어느 쪽과 더 우호적으로 함께 했었을까? 정의당은 그냥 국민의힘의 위성정당이다. 연동형비례대표제를 포기해야 하는 또 하나 이유다. 괜히 윤석열의 위성정당만 하나 더 원내에 들일 수 있다. 정의당의 의석증가는 윤석열에 그만큼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라도 연동형은 포기해야 한다.

 

아마 예전 글 보았으면 알겠지만 나 역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 자체에는 동의하는 입장이었다. 아니 오히려 민주주의의 가치에 맞는다 보았었다. 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이대로 놔두면 윤석열과 국민의힘의 폭주를 막을 수 없다. 그로 인한 나 자신의 피해를 감수해야만 한다. 절박함의 차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양심도 신념도 일정부분 포기할 수 있다. 정정당당한 패배란 없다. 더구나 그 뒤에 당원과 지지자, 그리고 국민이 있다면. 그래서 이탄희는 안되는 것이다. 수박들은 안되는 것이다. 이 기회에 이낙연이 다 데리고 나가기를. 판단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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