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자칭 진보들이나 노빠들과 어울리면서 깨달은 사실 하나가 바로 무식한 인간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선의도 인정하고 그 선의를 현실로 이루고자 하는 열정도 인정하는데, 그러나 개별의 사실들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너무 결여되었다. 사실 활동가라 부르는 그룹들이 가지는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정의연 논란을 보면서 더욱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하긴 정의연, 이전의 정대협 활동가들이 조직의 운영과 관리에 대해 대단하게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거나 경력을 쌓았을 것 같지는 않다. 회계라는 게 상당히 전문성을 요구하는 작업이고, 돈이 움직이는 과정에는 당연하게 다양한 욕망과 이해가 뒤따르게 된다. 그래도 활동의 취지가 좋으니 선의로 도우려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그렇다고 선의만 가지고 운영하기에 조직이란 자체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지금 나오는 이야기들을 보면 결국 정의연이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치밀하고 체계적인 '조직'으로 간주하고 평가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냥 선의로 열심히 활동해 왔을 뿐 그런 분야에 대해 오히려 문외한일 수 있다 생각하면 오히려 다른 방향에서 이해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냥 좋은 뜻으로 열심히 활동하다 보면 그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겠지. 그리고 그런 허술함을 누군가 악의를 가지고 파고들면 온갖 의혹투성이의 악의 집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정의연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가슴만 뜨거운 활동가들로 가득한 대부분 시민단체들의 사정이 이와 비슷할 것이다. 그렇다고 활동이라도 전문적인가면 그래서 주위에서 전문가그룹의 자발적인 지원과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런 전문가들을 고용하기에는 안성 쉼터 논란에서 보듯 건물 관리를 맡기면서 관리비 포함 120만원 주는 게 고작이다. 심지어 그마저도 2018년부터 50만원으로 줄었다. 가끔 들러서 조언이나 하는 정도면 모를까 상주하며 항상 도움을 주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조건이다. 누가 그런 일을 하려 하겠는가.

 

처음부터 전제가 달랐다는 것이다. 회계장부를 한 점 오류없이 철저하게 치밀하게 작성하려면 그만한 노력과 비용이 들어간다. 전문인력을 고용하거나 외주를 맡기지 않으면 안된다. 아마 그 돈까지 아껴서 뭔가 해보려 했을 테지만 지금으로서 오히려 독이 되었다. 소녀상을 세우지 않더라도 회계장부는 외부에 맡겼어야 옳았다.

 

사실 책임있는 자리에 있으면서 그만한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면 그 자체로 죄악일 수 있는 것이다. 책임에 비례해서 무능조차도 죄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정의연은 자신들이 짊어지고자 하는 책임 만큼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는가. 그런데 정작 그만한 실력을 가진 이들은 아무도 정의연의 역할을 대신하지 않았다.

 

시민단체들의 딜레마다. 자신들은 아마추어에 열의만 높은데, 그러나 정작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을 갖춘 이들은 자신들 만큼 열악한 조건에서 이 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 대부분 시민단체들이 그래서 아직도 자신들의 선의에만 기댄 주먹구구의 아마추어 집단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마저도 책임을 물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비로소 이번 논란을 계기로 정의연을 대신하고자 하는 이들이 이렇게 많아졌다. 정의연이 아니더라도 피해자들을 위해 행동하려는 이들이 이렇게 많다. 그래서 나도 입 다물려고. 정의연도 이쯤에서 그냥 자기 살 길 찾아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나마 이번 논란의 긍정적인 부분이랄까. 좋게 받아들이려 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