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진의 합종론에 대항한 장의의 연횡론이란 한 마디로 늬들이 뭉친다고 강대한 진과 맞설 수 없을 테니 그냥 순리를 따라 진에 머리를 조아리란 것이다. 진을 제외한 육국이 힘을 합쳐서 진과 맞설 수 있다면 합종론은 분명 의미가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해도 진과 맞서서 이길 수 없다면 괜히 진을 자극해서 패망을 앞당길 뿐이다.

 

역사상 그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 캐스팅보트란 그래도 어느 정도 양쪽의 힘이 비등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자기가 어느 한 쪽의 편을 들면 상대가 곤란해지는 정도가 되어야 그 선택에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잘 판단해 달라. 그런데 자기가 어떤 선택을 하든 대세에 영향을 줄 수 없다면 괜히 강자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는 선택은 제 명을 단축하는 결과만 낳게 되는 것이다. 

 

지금 정의당의 처지가 그렇다. 열린우리당 시절에야 민주노동당이 한나라당과 손잡으면 의미있는 의석수가 나왔었다.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중간에 날아간 의석에 내분으로 세월을 보내는 사정까지 생각하면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이 손잡고 열린우리당을 몰아세우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의 연대가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노무현 전대통령도 당시의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이냐 민주노동당과의 소연정인가를 두고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국민의힘과 정의당이 손잡으면 과연 국회에서 민주당의 독주를 막을 정도의 의석수가 되던가.

 

결국 정의당이 국민의힘과 손잡고 민주당도 막지 못하면서 민주당을 막으려 했다는 인상만 강화시키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뭐라도 정의당이 의도한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못하면서 민주당만 막으려 했다는 인상만 남기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그 정의당이 총선에서 얻은 표 가운데 상당수가 원래는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분열된 표라는 것. 민주당 지지자는 아니더라도 민주당과 정의당을 하나로 보고 그 중간에서 양쪽 모두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던 이들이다. 그런데 정작 민주당의 개혁입법은 막지도 못하면서 국민의힘과 함께하는 모습만 보이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정의당 입장에서 더 곤란한 것은 민주당이 아예 그런 정의당에 대해 아무런 비판조차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의힘과 손잡았다고 한 마디 하는 민주당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다. 김남국 정도나 자기 개인을 공격했으니 발끈해서 한 마디 하는 정도지 나머지 민주당 정치인들은 그런 정당이 있었는가 하는 정도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아예 그 존재 자체가 정치권에서 사라질 지경인 것이다. 같은 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위협이 될 만한 적도 아니고, 그냥 앞에서 성가시게 얼쩡거리는 엑스트라 1, 2 정도의 위치가 지금의 정의당인 것이다. 심상정이 뭐라 떠들든 아예 들리지조차 않는다. 당대표가 누구인지도 이제 관심조차 없다.

 

그러니까 선택을 잘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민주당을 막을 수 없다면 오히려 민주당보다 앞서서 더 강경하게 더 선명하게 민주당의 개혁을 이끌었어야 했다. 공수처법에 대해서 더 강경하게 개정안을 만들어 민주당을 압박하고, 공정경제 3법에서도 더 선명한 법안으로 민주당을 유인하고, 수많은 개혁법안들에 있어 민주당보다 더 진보적이고 더 개혁적인 모습으로 민주당을 견인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그랬다면 진보정당으로서 민주당의 개혁법안들에 대해 일정 지분을 주장하며 자신들의 존재감도 드러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에게 남은 것은 국민의힘과 손잡고 민주당의 개혁법안들을 훼방놓으려 했다는 사실 하나. 공수처법 개정안도 당론은 찬성이었지만 장혜영의 기권과 그를 옹호하는 당대표의 발언만 남았다. 그래서 과연 진보정당으로서 정의당에 미래가 있을 것인가.

 

과거의 성공에 사로잡힌 것이다. 과거 자신들이 한나라당과 손잡고 노무현 전대통령을 몰아붙여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만들고 있었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퇴임하고도 얼마나 심상정을 비롯한 자칭 진보의 비난에 시달렸는가 아는 사람은 안다. 이번에도 그때처럼 할 수 있다. 상황이 바뀐 것을 모르고. 당장 지금 민주당은 과거 열린우리당과 다르다. 지금 정의당이 당시 민주노동당과 다른 것과 같다. 그래서 마지막에 그들이 의도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올 초 심상정이 대통령 탄핵을 언급할 것을 나는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아무튼 이로써 범진보개혁진영의 민주당과 정의당이란 연결고리는 완전히 끊어진 것이나 같다고 할 수 있다. 유시민도 이제 생각을 고쳐 먹을 때가 되었다. 정의당은 민주당과 한 편이 아니다. 이 사회의 진보와 개혁을 위해 함께 손잡고 나갈 수 있는 파트너가 못되는 것이다.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그 사실을 입증해 보여줬다. 차라리 한 묶음으로 엮으려면 민더불어민주당과 열린민주당, 시대전환, 기본소득당을 하나로 묶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정의당은 국민의힘과 국민의당과 엮는 것이 옳다.

 

기다려 온 순간이다. 정의당이 정신을 차리고 영리한 선택을 했다면 꽤나 속이 터졌을 뻔했다. 잘난 척 자기들이 더 강경하고 선명한 개혁법안들을 발의했다고 민주당더러 따라오라며 으스댔다면 얼마나 열받았겠는가. 앞을 가로막고, 발목을 잡아끌고, 그러고도 발에 채이고 있는지도 모르게 무시당하고 있다. 순리대로 가는 것이다. 망할 놈들은 망한다.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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