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진보가 그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그와 정반대의, 명백히 틀린 정책을 펼치는 보수정부 아래서다. 더 선명하게 보수정부를 비판하며 그 대안으로써 자신들의 진보적 정책을 국민들에 제시할 수 있다. 설득할 수도 있다. 그에 비해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민주정부는 자칭진보들에게 수렁이라 할 수 있다. 뭐라 주장하든 그 정도와 과정만 다를 뿐 대체로 비슷하다. 이래서야 차라리 보수정부가 낫지 않겠는가.

 

극우가 준동하지 않으니 위안부 문제에서 자기들이 할 역할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 극우가 날뛰며 위안부의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해야지만 언론 자신들에게도 비비고 들어갈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위안부 운동을 주도하던 윤미향 전이사장이 국회의원까지 되었으니 거대여당인 민주당을 등에 업고 진짜 자기들이 설 자리가 없게 되는 것은 아닌가. 그러니까 자칭 진보의 존재감을 위해 민주정부를 타도해야 하는 것처럼, 위안부운동에서 주도권을 가지기 위해서라도 정의연을 무력화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모를 리 없었다. 정대협은 위안부운동의 시작이고 끝이다. 처음부터 정대협의 이름으로 시작되었고 정대협의 이름과 함께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나마 모양새좋게 물러나기라도 했으면 그만한 여지라도 생겼을 테지만 이런 식으로 지난 정대협의 30년 역사를 부정한다면 함께 지난 30년 간 정대협이 해 온 활동들까지 모두 부정되는 것이다. 실제 그동안 정대협이 위안부문제의 해결을 위해 해 왔던 모든 노력들이 대중들 사이에서 언론 자신이 제기한 의혹과 함께 철저히 부정되고 있는 중이다. 이용수 할머니 자신의 주장을 빌어 그저 피해자들의 삶이나 더 편안하게 유복하게 보살피면 되는 것이지 무슨 해외 시민단체와의 연대이고 여성인권운동인가. 사실 자칭 진보언론들도 동의한 바였다. 이용수 할머니를 철저히 속이고 이용한 정대협은 가짜였다. 기만이고 거짓말이었다. 그런데 위안부운동을 계속한다?

 

위안부와 관련한 모든 진실들도 정대협의 이름으로 세상에 공개되었을 것이다. 위안부문제의 해결을 위한 모든 논리와 근거들 역시 정대협을 통해 세계의 시민들에게 제공되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 정의연이 가짜다. 정의연은 단지 피해자들을 이용해서 사익을 추구한 위선자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과연 위안부 운동은 무엇을 근거로 기반으로 새롭게 시작되어야 하는 것인가. 김복동 할머니의 활동조차도 정대협의 강요와 강제에 의한 것으로 몰아간 바 있었다. 그렇게 정의연을 다 걷어내고 나면 정의연과 전혀 상관없는 순수한 위안부 운동을 자신들을 위해 남을 것이라 생각한 것인가.

 

결국은 정의연이, 지난 정대협의 30년 세월이 언론에 의해 부정당하며 정대협이 앞장서 온 위안부운동 역시 부정당하고 만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비하하던 이들이 더 기세등등하게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등에 업고 위안부운동 자체를 공격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기들이 그러지 말라면 그만둘 것이라 믿는 것일까. 도대체 그 믿음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설마 한겨레, 경향 등 자칭진보들도 처음부터 그들과 연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아니라면 정의연만 지우면 위안부운동은 다시 원래의 순수한 모습으로 자신들 앞에 놓여질 것이란 믿음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아무튼 어이없다. 정의연을 박살낸 정도가 아니라 그 존재와 활동들까지 모두 부정하고, 그 위에 겨우 힘겹게 이루어진 위안부 운동의 성과만을 지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멍청한 것이 아니면 고도로 사악한 것이다. 누가 위안부 문제 자체를 부정하려는 세력들에게 그를 공격할 빌미를 제공하고 있었는가. 잘못이 있다면 마땅히 밝혀서 책임을 물었어야 하겠지만 그런 결정적인 정황증거조차 아직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항상 이 새끼들은 비슷한 행동들을 반복해 왔었다. 하긴 유물론자들인지도 모르겠다. 정의연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윤미향이 아니더라도 전혀 아무 문제 없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정대협과 윤미향이 이루어낸, 정말 힘겹게 헤쳐 온 과정들을 깡그리 무시한다. 진짜는 이념이고 이상이고 주장이다. 현실이 아니다. 현실의 인간이 아니다. 그래서 입진보인지도 모르겠다. 흩날리는 낙엽보다도 가벼운 한심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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