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만화에서 흔히 보게 되는 장면이다. 고등학생이거나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인물이 부동산을 알아보러 돌아다닌다. 그러면 주위에서 당연하게 묻는다.

 

"독립하려고?"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도 30대까지 젊은 직원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만이 방을 따로 얻어 자기가 월세를 내며 살고 있었다. 심지어 한 시간 넘게 걸려 출퇴근하는데도 여전히 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월세를 얻고 싶어도 보증금 낼 돈이 부족하다.

 

재개발이 예정된 동네에 아주 오래되고 낡은 반지하 단칸방조차도 월세의 몇 배나 되는 보증금을 내고서야 겨우 들어가 살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좁고 볕도 들지 않아 어둡고 습기까지 차는 반지하방에 살고 싶은 사람은 기성세대 가운데도 거의 없다 봐야 할 것이다. 그나마 살 만한 집이면 기본이 몇 백에, 조금 괜찮다 싶으면 천 단위를 넘어간다. 월세가 그런데 전세는 어떨까? 아예 전세대출까지 고려해서 어지간하면 요즘은 그냥 억은 넘어간다 보는 것이 옳다. 과연 막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젊은이가 자기 힘으로 그만한 돈을 마련할 수 있을까?

 

자기가 돈 벌어 전세금 마련한다는 것도 제법 대단한 중견기업 이상에 정규직으로 취업할 수 있는 소수에게나 해당되는 도시전설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그나마 월급 모아서 얻을 수 있는 전세라는 것도 변두리 주택가에 방 하나나 두 개 짜리가 고작일 것이다. 아니 요즘 이쪽은 거의 전세물량이 없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파트처럼 집값이 올라 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요즘같은 저금리 시대에 일반주택 전세는 임대인 입장에서 전혀 남는 것이 없다. 집값이라도 올라서 나중에 차익을 실현할 수 있지 않는 한 전세는 더이상 임대인 입장에서 매력적인 제도가 아니란 것이다. 부동산 가격이 안정화되면 따라서 당연히 전세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아무튼 그렇다면 막 사회에 첫 발을 딛은 젊은이들이 자기 힘으로 돈을 벌어 살 수 있는 전세란 과연 어디까지일 것인가.

 

전세가 쓸데없다 여기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아니 당장 월세조차도 만만치 않은 보증금 때문에라도 겨우 갓 취업한 젊은 초년생들에게는 부담스럽기만 한 것이다. 그래서 나 역시 90년대 막 사회에 첫발을 딛고 한동한 고시원 생활을 해야 했었다. 그렇게 겨우 모아 반지하 단칸방 하나 월세를 얻었는데 그마저 IMF로 홀랑 날려먹었으니 내가 지금도 김영삼이라면 이를 가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부분일 것이다. 이명박이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며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아무튼 현실이 그런데 몇 억 씩이나 하는 전세란 제도가 얼마나 현실을 위한 것일 수 있는가. 내가 전부터 전세라는 제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 온 첫째 이유일 것이다. 어지간해서 서민들이 자기 능력만으로 몇 억이나 하는 전세금은 커녕 몇 천 짜리 월세 보증금조차 모으기란 너무 버겁기만 하다는 것이다. 아니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기는 한가?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도 그래서 젊은 직원들이 월세 보증금이라도 마련해 보겠다고 몇 년이나 부모의 집에 얹혀 살며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있었더란 것이다. 올해만 다니고. 아니 내년만. 한 해만 더. 그래도 사실 현실적으로 몇 천이나 되는 돈을 모으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래서 전부터 생각해 온 것이다. 그러고보면 전세는 커녕 월세의 몇 배, 심지어 몇 십 배나 되는 보증금이란 것도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제도라는 것이다. 대부분 나라에서는 월세를 얻을 때 따로 보증금 같은 것 없이 몇 달 치를 선불로 내거나 사례금을 따로 지불하거나 하는 식으로 장벽도 매우 낮다. 그냥 길거리를 떠돌던 홈리스라도 그나마 아무거라도 직장을 가지고 나면 바로 받은 월급으로 적당한 월세를 찾아서 들어갈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돈벌이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젊은이들도 일찌감치 집을 나와 독립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 젊은이들이 자립심이 부족해서 늦게까지 부모에게 얹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독립해서 나와 살기에는 현실의 장벽이 너무 높기에 그런 것이다.

 

하긴 그러고보면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며 임대료까지 올라가자 해외에서도 늦게까지 부모에게 의지해 사는 캥거루 세대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해외에서는 월세를 얻으려 해도 월세 자체가 비싸서 부모의 집에 기대 함께 사는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우리나라는 월세는 고만한데 월세의 최대 몇 십 배나 되는 보증금을 마련하기가 너무 버거워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와 함께 살아야 한다. 혼자서 나가 살려고 해도 방 하나 구하기가 이렇게 힘든데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러니까 결혼도 않으려는 것이다.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월세라도 그럴싸하게 얻어 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둘이서는 어떻게 살더라도 아이라도 낳으면 과연 어떻게 될까?

 

그러니까 뭐다? 몇 억 씩이나 하는 전세금보다는 당장 젊은 사회초년생들이 바로 들어가 살 수 있게 보증금조차 필요없는 값싼 월세가 더 시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자기집은 커녕 전세조차 자기 힘으로 벌어서는 모으기가 거의 불가능한 현실에서 차라리 보증금조차 없이 더 값싸게 얻어서 전세금 모을 돈으로 소비라도 마음대로 하며 안정적으로 살 수 있게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언론이 개새끼라는 것이다. 그렇게 서민 걱정하고 청년 걱정하고 낮은 결혼율과 출산율을 걱정하는 새끼들이 정작 그들을 위한 임대주택은 주민들더러 반대하라고 부추기는 기사나 써제끼고 있는 중이다. 주민들이 집값 떨어진다고 반대하는 이유는 그렇게 거짓정보를 흘리며 부추기는 놈들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누구이겠는가. 그러면서 서민을 걱정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가?

 

전부터 일관되게 해 온 이야기일 것이다. 평생 악착같이 모아서 10억짜리 아파트를 사나, 평생 쓰고 싶은 것 다 쓰면서 10억짜리 아파트에서 3억 월세를 주고 사나 결국 아파트를 남기거나 7억 만큼의 소비를 남기는 정도의 차이밖에 없다. 그렇게 악착같이 모아서 7억 만큼 아끼며 살 것인가. 그냥 아파트를 포기하고 7억 만큼 자신의 삶을 즐기며 살 것인가. 어차피 안되는 거라면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한 개천을 만들어야 한다. 붕어, 개구리, 미꾸라지가 모여서 마음놓고 살 수 있는 개천이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지금보다 월세 얼마간 더 내더라도 보증금을 다시 은행 잔고로 돌려서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월세 보증금조차 부담이 되는 진짜 서민의 삶을 지금도 살고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인 것이다. 나이 서른이 넘도록 여전히 부모와 함께 살면서 내일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못하는 무기력한 젊은 세대를 가까이서 몇 년이나 보아 왔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인 것이다. 그나마 최저임금이라도 올라서 일자리가 있는 젊은 세대들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상황인가. 그럼에도 그 돈 모아서는 앞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다. 그래도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젊은 세대의 원망과 분노가 세상을 혼란케 하는 것만 걱정하는 것인가.

 

결국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때로 주민의 반대마저도 무릅써가며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단호하게 결정해야 할 부분인 것이다. 임대주택에 반대한다. 왜? 어째서? 그리고 언론은 그런 무리한 주장들을 어째서 한 마디 비판조차 않는 것인가? 답은 너무 명확하다. 그래서 일부러 회피하는 것이기도 하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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