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부동산앱을 켜고 전세를 검색해 보면 반지하 아니면 거의 1억은 기본으로 넘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에도 쓴 것처럼 연봉 3천 받는 사람이 한 푼도 안 쓰고 모으면 3년이고, 절반을 쓰고 절반을 모으면 6년, 그래도 현실적으로 10분의 1씩 모은다면 30년은 걸려야 모을 수 있는 돈이다. 그나마도 구할 수 있는 가장 싼 전세가 이렇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과연 이제 갓 결혼한 젊은 부부들이 바로 자기가 벌어서 전세금씩이나 마련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의문인 것이다. 주위에 무려 6억이나 하는 전세를 살다가 집주인이 올려달라는 만큼 돈을 모으지 못한 탓에 어쩔 수 없이 그만 못한 곳으로 이사가야 하는 처지인 사람이 있다. 사실 6억이면 지역에 따라 어지간한 아파트 한 채 가격은 훌쩍 넘고도 남을 금액이지만 아이가 자라고 하면 그만큼 고려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렇게 벌이가 적은 편도 아닌데 전세값 오르는 속도를 따라가기가 그리 버거운 것이다. 과연 전세를 살면 전세금이 고스란히 남는다고 하는데 어째서 전세금은 그대로인데 사는 집은 계속 바뀌어야 하는 것일까? 더 낡고 허름한 더 아쉬운 것이 많은 동네로 밀려나야 하는 것일까? 그래서 6억이란 전세금은 처음 계약한 2년 전의 6억 그대로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것인가?

 

전세에 대한 터무니없는 착각인 것이다. 나 역시 작년 이사하면서 전세자금대출까지 고려하느라 더욱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지금의 전세는 최저임금의 영향 아래 있는 가계에서 돈을 모아 마련할 수 있는 범위를 아득히 넘어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전세를 살려면 주위의 도움을 받거나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은 곧 누군가의 비용이고 빚이 되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받는다면 부모는 노후의 여유를 그만큼 포기해야 하는 것이고, 대출을 받았다면 그만큼 이자를 계속해서 갚아야 한다. 만일 당시 내가 대출을 받아서 여윳돈없이 전세를 살았다면 지금처럼 일을 그만두고 한가롭게 집에서 뒹굴거릴 수 있었을까? 아직 남아있는 은행잔고야 말로 내가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 가장 든든한 의지처가 되어 주는 것이다. 그런 돈을 전세금이라는 이름으로 집주인에게 계약기간 동안 맡겨 두어야 한다.

 

사실 보증금이라는 것도 대부분 서민 입장에서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막 첫직장을 얻고 사회을 시작한 초년생이 어떻게 천만 단위를 넘어가는 월세보증금을 장만할 수 있을 것인가. 어차피 월세 밀린다고 보증금 빼가며 버틸 수 있는 시절도 아니다. 보증금은 보증금이다. 월세도 아니다. 조금 더 냉정하게 월세를 일정 이상 밀리면 바로 강제력을 동원할 수 있도록 하는 대신 보증금 없이 단지 월세로만 살 수 있게 하도 어차피 큰 무리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아무라도 바로 방을 얻으려 하면 두 어 달 월세만으로 바로 방을 얻어 살 수 있게 된다면 그만큼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내딛는 사람들에게 장벽을 낮춰주는 일이 되지 않을까. 내가 벌 수 있는 만큼.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그리고 그런 범위 안에서 정해지는 주거비용이야 말로 온전한 서민의 영역에 속할 것이다.

 

부모로부터 전세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딱히 월세 보증금을 기대할 처지도 아니다. 그렇다고 계속 함께 살 수도 없다. 부모 자신조차 겨우 알량한 전세나 혹은 여전히 월세에 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진짜 서민들 이야기다. 남의 돈조차 없어서 보증금 5백, 1천만원 짜리 손바닥만한 방 한 칸 찾아서 헤매 다니는 이들의 이야기다. 월세는 어떻게 감당하겠는데 보증금이 너무 어렵고 부담스럽다. 최저임금이 오른 탓에 알바만 해도 어떻게 월세 정도는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보증금에서부터 막히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 그런 진짜 젊은 서민들을 위해 필요한 정책이란 무엇일 것인가. 서울이 천박한 도시라는 이해찬 대표의 말에 동의한다. 청년임대주택 만들겠다 하니 집값 떨어진다며 온 동네사람들이 나서서 반대한다. 보증금 없이 그저 청년이라는 이유만으로 월세만 내면서 살 수 있는 임대주택이 있다면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다른 임대인들로 하여금 더이상 월세와 보증금을 올리지 못하게 하는 압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도대체가 월세로는 못살겠다며 전세부터 이야기하려는 서민이란 어디에 사는 어떤 서민들을 가리키는 것인지. 전세금 빌릴 곳도, 대출받을 신용도 없는 사람들은 그러면 어디서 어떻게 살라는 것인지. 평생 모은 돈에 대출금까지 갚아가며 전세 살고 내 집 살기보다 그래도 얼마 안 되는 수입이라도 오늘을 즐기며 살 수 있다면 그게 그리 나쁜 일인 것인지. 서민의 기준이 다르다. 월세 사는 사람이 보는 서민의 기준은 집도 몇 채 씩이나 있는 사람들이 보는 서민과는 서로 한참 다를 수밖에 없다. 말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내가 자칭 진보들 싫어한다고. 그리 돈이 많더라. 그리 집안도 좋아서 정작 없이 사는 주변의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너무 천박하게 결여되어 있었다.

 

다시 말하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임금수준에서 전세조차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남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의 돈을 끌어올 수 없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다른 세상의 이야기란 것이다. 도대체 몇 억 씩이나 하는 전세란 어디 사는 어떤 서민들의 이야기란 것인지. 차라리 아파트조차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월세가 가능하다면 사는 것보다 더 나을 수 있는 것이다. 한 달에 100만원 씩 모아 아파트 사나 월 200 버는 것 가운데 80만원 씩 주고 월세로 사나. 그래도 20만원 남는다. 굳이 집을 사서 물려줄 필요 없이 역시 자식들 일은 알아서 해결하는 것이다. 나처럼 혼자 사는 사람은 더욱.

 

확실히 명언이라 할 것이다. 서는 곳이 달라지면 보이는 풍경도 다르다. 부모에 손벌리지 않고서도 주거걱정 없이 젊은이들이 자신있게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결혼하면서도 부담없이 자신들만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수 있도록. 월세가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역시 서민의 기준이 서로 다른 때문일 것이다. 전세조차도 이미 이런 수준에 이르러 있다는 것이다. 물론 말많은 놈들이 절실하게 느낄 수 없는 부분일 테지만. 우습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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