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분노다. 선은 연민이다. 가엾이 여기고 안타깝게 여기는 것이 선이라면, 부당하다 반발하고 부조리하다 반박하는 것이 바로 정의인 것이다. 다만 사람마다 그 분노의 출발점이나 지향점이 서로 다른 것이 세상에 수많은 정의가 공존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과연 부자와 가난한 이의 소득과 재산의 차이가 너무 벌어진 현실에 더 분노하는가? 아니면 더 능력있는 이들이 더 많은 소득과 재산을 가지지 못하는 현실의 부조리함에 분노하는 것인가? 그래서 둘 중 누가 옳다 맗라 수 있을 것인가? 물론 개인의 이념과 성향에 따라 누가 더 정의롭다 판단할 수는 있을 것이다.

 

무엇을 위해 무엇에 분노하는가 하는 것은 곧 그 사람의 정의를 이해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어 줄 수 있는 것이다. 최순실과 조국 가운데 누구에 더 분노하는가? 이명박과 노무현 가운데 누구에 더 분노하는가? 김학의와 박원순 가운데 누구에 더 분노하는가? 김의겸과 오세훈, 혹은 박형준 가운데 누구에 더 분노하는가? 중대재해법을 아예 반대한 국민의힘과 현실을 고려해 내용을 후퇴시킨 민주당 가운데 누구에 더 분노하고 있는가? 그러면 자칭 진보의 정의란 어디의 누구의 무엇을 위한 정의란 것인가? 성소수자에 대한 더 노골적인 혐오발언을 내뱉었음에도 자칭 진보들이 비판하는 것은 홍준표나 안철수가 아닌 그보다 더 온건한 입장을 내비쳤던 문재인이었다는 것이다.

 

이명박근혜 정권 당시 과연 자칭 진보들이 '한나라당만 빼고' 혹은 '새누리당만 빼고'라며 적의에 가까운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단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가. 수구정당의 낙선을 위해서 이념을 넘어 다른 정파와 연대하는 모습을 단 한 번이라도 보인 적이 있었던가?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박근혜가 탄핵되어 조기에 대선이 치러지던 상황에서도 차마 자칭진보들은 '자유한국당만 빼고'라는 말까지 내뱉지는 못했었다. 표창장이 최순실의 국정농단보다 더 큰 죄였던 것이었다. 김의겸이 대출까지 받아서 재개발예정지에 아파트 한 채 구입한 것이 오세훈이 시장의 지위를 이용해 투기를 한 것보다 더 큰 죄였던 것이었다. 김학의의 범죄보다 김학의를 출국금지시킨 과정에 더 중대한 문제가 있었다.

 

박형준과 오세훈과 관련한 수많은 부정들이 드러나고 있는 지금에조차 자칭 진보가 물어뜯는 것은 조국 하나란 것이다. 조국을 더 욕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자칭 진보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자칭 진보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기 위해 무상급식에 반대하고, 성수자를 혐오하고, 국민을 사찰했던, 그리고 부정한 방법으로 사익을 취한 이들을 위한 선거운동에 나선다. 박형준과 오세훈, 안철수는 분노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어째서? 그게 진보의 정체성이니까.

 

분노하는 지점이 다른 것이다. 분노하는 이유가 너무 서로 다른 것이다. 조국에게는 분노하지만 박형준에게는 분노하지않는다. 박원순에게는 분노하지만 김학의나 주호영에 대해서는 절대 분노하지 않는다. 그래서 차라리 이명박근혜가 더 나았다는 말까지 나오는 것이다. 도덕적으로도 이명박근혜가 더 나았고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이명박근혜가 더 나았다. 그들은 과연 진보인 것인가? 그들이 추구하는 진보란 그렇다면 이명박근혜와 더 가까운 어딘가에 있는 것인가? 선거 때가 다가오니 더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라임과 옵티머스와 관련해서 윤석열과 전현직 검사들은 물론 국민의힘 정치인의 이름마저 거론되어도 저들에게 그것은 오로지 민주정부의 치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저들에게 진보란 반수구가 아니라 반민주당이다. 참여정부 당시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쫓아 참여정부의 개혁을 돕기보다 한나라당과 손잡고 그를 저지하는데 앞장서고 있었다. 그래서 한나라당이 정권잡는 것을 도와주면 진보적인 정책들에서 진보정당과 연대할 것이라 기대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오히려 집권 이후 철저히 수구반동을 추구했던 점에 배신감과 분노를 느꼈어야 하지만 여전히 그들이 분노하는 것은 노무현과 참여정부에 대해서였다. 민주당만 아니면 된다. 국민의힘이라도 상관없다. 박형준과 오세훈, 안철수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칭 진보란 것이다. 다르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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