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순시대에 어느 백성이 불렀다는 격양가는 중국인의 보편적인 국가관, 정치관을 고스란히 담고 있을 것이다. 기껏해야 2백년도 못가는 왕조들이란 것이다. 심지어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왕조가 몇 번이나 교체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런 주제에 과연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고 황제가 바뀌었다고 내 삶에 뭔가 대단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국가나 군주란 더 좋을 것도 더 나쁜 것도 없는 그냥 그런 존재들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정치를 불신하는 사람들의 사고도 비슷하다. 더 나은가 했더니 그렇다고 더 썩 나은 것도 아니고, 더 못한가 싶었더니 그렇다고 아주 못한 것도 아니고, 그러니 저놈이나 이놈이나. 언론이 조장한다. 이상적인 100을 만든다. 만일 현실에 100이 있다면 이상은 150이 되기도 하고 200이 되기도 한다. 한 점 아주 작은 흠도 없는 이상적인 상황을 만들어 그를 기준으로 다 똑같다고 강조한다. 똥이 묻으나 겨가 묻으나 뭐가 묻었으니 다 똑같다. 심지어 다른 그림자가 비친 것 뿐인데도 원래 색과 다르니 다 똑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아무나 뽑고서 잘하면 찬성하고 못하면 반대하면 된다.

 

아마 자칭 진보 가운데서도 자기가 대단히 이성적이고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라 착각하는 병신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한겨레를 보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어차피 이놈이나 저놈이나, 이재명이나 윤석열이나, 둘 다 똑같이 병신이고 문제가 많으니 그냥 윤석열이 되어도 좋지 않겠는가. 일단 서울대고, 검찰출신이고, 기득권이고, 엘리트고 아무튼 자기들과 가까워 보인다. 공약들이야 일단 대통령 만든 다음 반대하면 되지 않겠는가. 문재인 대통령도 자기들이 하지 말라니까 안하는 것이 많지 않은가. 그래서 끝까지 해내면? 그때 되서 또 정권교체하면 되는 것이고.

 

내가 이래서 자칭 진보들 싫어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은 내게 생존의 문제다. 52시간 근로 역시 내 생존과 직결된 중대한 문제다. 국민연금 지급액이 줄어들면 나는 당장 노후계획을 다시 세워야 한다. 정권 교체하고 일단 반대하고 안되면 다시 정권교체한다는 안이한 생각따위 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저들은 그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자기들은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지도 않고, 52시간 이상 일할 이유도 없고, 국민연금에 기대 살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이 새끼나 저 새끼나, 그러니까 누가 돼든 상관없고, 그래서 윤석열을 지지한다. 한겨레가 윤석열의 신변은 까도 그 정책까지 까는 것을 과연 몇 번이나 보았는가. 그런 적이 있기는 한가. 정의당은? 녹색당은? 사회당은? 참여연대는?

 

이명박 때도 그랬었다. 한반도대운하 공약을 보고서도 일단 당선시키고 그때 가서 반대하면 된다. 국민이 바라는데 밀어붙이는 것은 민주주의에 위배된다. 국민의 뜻을 거스르고 강행하면 다시 정권을 바꾸고 원래대로 되돌리면 된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정권은 교체되었는데 4대강은 다시 원래대로 되돌려졌는가? 웃기는 건 현정부에서 4대강 원상복구하겠다니 반대하는 자칭 진보가 그리 많다는 것이다. 자기들이 반대하면 민주당 정부가 물러서는 모습을 보면서 효능감을 느끼는 것일까? 그래서 반복이다. 일단 윤석열 대통령 만들고 윤석열 정책은 반대하겠다.

 

문재인 정부가 고전하는 이유인 것이다. 지지율은 높은 편인데 정권재창출에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이명박이나 박근혜는 공약한 것을 거의 마음대로 다 이뤘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과연 무엇인가? 진짜 반대한다고 다 물렸다. 반대한다니까 다 후퇴해 버렸다. 이래서야 정권 잡은 효능감이란 어디서 찾아야 한다는 것인가. 그래서 더 저놈들이 착각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그랬으니까. 민주정부는 그랬으니까. 지지자들 역시 민주당 지지해봐야 돌아오는 게 무언가. 문재인 대통령은 너무 사람이 좋다. 임기가 끝나가니 하는 말이다. 권력자는 사람만 좋아 되는 자리가 아니다.

 

아무튼 자칭 진보의 머릿속을 또 한 겹 벗겨 본 듯한 느낌이다. 아마 자칭 중도들도 비슷할 것이다. 자기들은 쿨하니까. 냉정하니까.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다. 그런데 중용이란 이성과 감정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것이다. 이성이란 감정의 결과고 감정 또한 이성의 결과다. 이성이 감정이고 감정이 이성이다. 결론을 내리고 이유를 찾는다. 판단을 내리고 근거를 쫓는다. 똑똑한 척 하는 놈들이 원래 가장 병신이다. 고금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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