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배고파 죽겠다는 사람이 있다. 며칠을 굶어 일어설 힘도 없다며 엎드려 먹을 것을 달라 구걸한다. 그러자 그를 보던 사람이 손에 들고 있던 빵을 발로 밟으며 말한다.

 

"아무리 그래도 먹던 걸 줄 수는 없으니 조금만 기다리시오. 내 집에 가서 상을 제대로 차려 오리다."

 

집이 어딘지도 모른다. 언제 돌아올지도 모른다. 무엇을 차려 올 지도 알 수 없다. 그러면 가까운 가게에서 뭐라도 사서 주면 어떻겠는가? 첨가물 때문에 안된다. 트랜스지방 때문에 안된다. 너무 달아도 짜도 매워도 건강에 좋지 못하다. 유기농으로 영양의 균형을 맞춘 건강한 식단이라야 가능하다. 굶고 있는 당사자라 생각해 보라.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최저임금 인상분이 자기들이 생각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반대한다. 근로시간단축이 자기들이 기대한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반대한다. 중대재해법도 자기들이 주장하던 것에서 많이 후퇴했으니 아예 통과되지 못하게 반대한다. 그래서 대체공휴일제도 자기들이 주장한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에 반대부터 했었다. 무슨 뜻이겠는가. 자기들이 원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이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한 어떤 시도도 결정도 반대하여 무산시키겠다.

 

최저임금이 한 번에 1만 원이 되지 못하니 그냥 7천 원 만 받자. 노동시간이 한 번에 주 40시간으로 줄어들지 않으니 그냥 앞으로도 계속 60시간 70시간씩 일하게 하자. 중대재해법에 허점이 많으니 전처럼 그냥 아무 책임도 묻지 않고 노동자가 죽어나가든 방관하자. 대체공휴일도 모든 노동자가 누릴 수 없다면 아예 모두가 누리지 못하게 하자. 그러면 결국 누가 피해를 보는가. 바로 나다. 노동자인 나 자신이다.

 

노동자를 위한다는 자칭 진보인 것이다. 사회적 약자를 위하겠다는 자칭 진보들이다. 그러면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완전한 법과 제도와 정책이 아니라면 반대한다는 순수함마저 보여준다. 아무리 배고파 죽겠다고 해도 제대로 격식과 영양과 맛까지 고려해서 정식을 차려 내와야지 먹던 음식을 내주는 것은 안된다. 내가 자칭 진보를 싫어하는 이유인 것이다. 그보다는 거리감이다. 절대 저놈들과 내가 함께 섞이기란 불가능할 것 같다. 자칭 진보들이 그리 좋아하는 계급이란 것이다. 과연 노동자를 위한다고 노동자인 나 자신과 저들은 동류일 것인가.

 

자칭 진보가 그토록 비판했던 2017년과 2018년의 최저임금인상의 결과 그래도 먹고 살 만큼 수입이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 아쉽기는 하지만 52시간의 법정노동시간이 강제되며 일상에 많은 여유도 생겼다. 수입도 늘고, 여유도 생기고, 혹시라도 사고가 날까 직장에서는 안전을 강조하고, 대체공휴일로 내일 하루 더 쉴 수 있게 되었다. 만일 자칭 진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완전하지 못하니 반대만 일삼았다면 어떻게 되었는가. 바로 취미와 현실의 차이인 것이다. 그저 머리로만 생각하고 즐기는 것이라 자칭 진보들은 완벽이란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을 테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나같은 노동자들은 작은 변화라도 실제 이루어질 수 있는 것들을 바라게 된다.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이 정작 자칭 진보가 아닌 민주당을 지지하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자칭 진보는 주장만 하고 민주당은 아쉬우나마 그것들을 실제로 이루어낸다. 반대하는 보수세력과 때로 싸우고 때로 타협해가며 하나씩 조금씩 현실로 이루어내고 있다. 실제 노동자의 삶에 도움을 주는 것은 더 선명하고 올곧은 순수한 주장을 펼치는 자칭 진보가 아닌 그런 현실을 만들어가고 있는 민주당인 것이다. 그것을 모르기에, 아니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에 자칭 진보는 민주당을 질투하고 증오하려고만 하는 것이다. 노동자를 위하지 않는데 노동자의 지지를 받는다. 그래서 자칭 진보가 노동자를 위해 한 일이 무엇인가. 실제 현실로 이룬 것이 무엇이 있었는가.

 

그래도 괜찮은 위치에 있는 이들과 그래서는 곤란한 현실에 살고 있는 이들의 차이인 것이다. 당장 남이 먹던 빵은 거절할 수 있는, 바로 발로 밟아 뭉개 버릴 수 있는 사람과 그마저도 먹을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의 차이인 것이다. 그래도 4년 전에 비하면 월급이 많이 올랐다. 3년 전에 비하면 더 적은 시간을 일하고도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내년에는 올해보다도 더 많은 수입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공휴일이 주말이라고 실망할 일도 없고, 사업장에서도 안전을 최대한 신경쓰고 있으니 괜히 떠밀릴 걱정도 줄었다. 더 완벽해야 한다고? 그럼 물론 좋다. 하지만 이나마라도 내게는 매우 고맙고 소중한 변화이고 발전인 것이다. 진보인 것이다. 진정 노동자인 나를 위하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이로써 분명해지게 된다. 이나마라도 이루어낸 민주당과 이조차도 반대한 정의당, 누가 나에게 정의인지.

 

한 걸음, 아니 반 걸음이라도 너 나아질 수 있기를 바란다. 때로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더라도 결국은 앞으로 더 나아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현실이란 그만큼 고단하기 때문이다. 변화와 진보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이 아니라면 그렇게 조금씩 나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히려 노동자로서의 삶을 더욱 치열하게 몸으로 겪으면서 민주노총에 대한 생각까지 뒤바뀌고 마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노조전임자라는 것이 있었다. 일은 안하고 노조활동만 하는 놈들이다. 노동자면서 노동자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 그들은 과연 실제 현실의 노동자를 위하고 있는가. 대변하고 있는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지금의 민주당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다. 그것이 나의 현실이며 정치의 이유다. 내가 정치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민주당이 나의 현실에 도움이 된다. 나의 현실을 위해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런 기대가 있다. 반면 정의당은 어떠한가. 물론 자칭 진보라면 당당히 와서 조롱하고 비난할 것이다. 무지렁이 노동자 따위가 무슨 노동문제식이나 이야기하려 하는가. 그런 건 잘나고 잘배운 지식인들이 하는 것이다. 언론인 지식인들이 하는 것이다. 그게 자칭 진보의 수준이다. 자기들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이 노동자의 실제 현실보다 우선한다.

 

실제 노동자의 삶을 몸으로 직접 겪으며 투쟁하던 이들도 이제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일은 않고 운동만 하던 노동귀족들이 노동자를 대변한지 벌써 오래 되었다. 그마저도 없이 머리로만 남의 이야기를 빌려 떠드는 놈들이 오히려 주류가 되어 있다. 어차피 내 일이 아니다. 그들과 나의 차이다. 계급의 벽이다. 싫어할 수밖에 없다. 더런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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