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일제에 빌붙어 부역하던 이른바 친일파들이 해방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해방군으로 들어온 미국에 빌붙어서 반공투사가 되는 것이었다. 일제보다 더 나쁜 것이 공산주의자고, 친일에 대한 단죄보다 더 시급한 것이 그런 공산주의자들 이 땅에서 몰아내는 것이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을 때려잡는 친일파는 정의가 되고 혹시라도 독립운동 과정에서 공산주의자들과 조금이라도 인연이 닿았다면 그는 단죄되어야 할 악이 되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반공투사들을 필요로 했던 미군정과 이승만이 뒤에 버티고 있었기에 가능한 변신이었었다.

 

그러고보면 이명박근혜 당시 언론이라고는 손석희의 JTBC 정도가 거의 유일했을 것이다. 아, 청와대에서 나눠준 질문지대로 질문하지 않았다가 청와대 출입처가 끊겼던 미디어오늘도 있기는 했었다. 그래도 진보를 자처했으니 한겨레나 경향이나 당시 보수정부와 여당을 어느 정도 비판도 하고는 했지만 대부분 딱 당시 정부와 여당이 용인할 수 있는 선을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 세월호에 대해서도 차라리 민주당과 문재인을 더 욕하면 욕했지, 아니 차라리 민주당과 문재인을 더 비난했기에 청와대와 보수여당을 조금 더 비판해도 용서받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과연 2016년 말 JTBC를 시작으로 국정농단 보도가 쏟아졌을 때 조선일보가 받아주지 않았다면 한겨레와 경향이 그렇게 적극적으로 끝까지 내달릴 수 있었을 것인가. 박근혜 탄핵에 오히려 가장 공이 컸던 것은 손석희의 JTBC가 아니라 조선일보와 TV조선일 수 있는 것이다.

 

탄핵을 앞두고 박근혜가 청와대 출입기자들을 모두 불러모아 일방적으로 자기 할 말만 늘어놓을 때도 두 손 곱게 모으고 경청하던 기자들 가운데 이들 자칭 진보언론의 기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명박이 노무현 죽이겠다고 검찰을 동원해서 망신주고 압박할 때도 자칭 진보언론은 그 맨 앞에 있었다. 한명숙 전총리를 뇌물죄로 걸어넣으려 검찰을 동원해 공작을 꾸밀 때 역시 자칭 진보언론들은 충실히 보수정권의 손과 발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JTBC가 포문을 열고 조선일보가 호응하는 듯 보이자 마치 그런 적 없었다는 듯 태도를 바꾸더니 박근혜를 탄핵하고 정권까지 교체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알고 있다. 자신들이 원한 적도 기여한 것도 없는 자기들과 상관없는 정권교체였다는 사실을. 마치 일본의 지배가 영원할 것이라 여기며 부역하던 이들이 어느날 느닷없이 광복을 맞은 상황과 비슷할 것이다. 그래서 혹시라도 과거 정권에서 자신들이 했던 일들이 알려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래서 2017년 총선 당시 ㅅ자칭 진보언론들은 하나같이 민주당과 문재인이 아닌 국민의당의 안철수를 지지했던 것이었다. 그래도 진보언론이니 정의당의 심상정을 지지했어도 괜찮았을 텐데 이념적으로 상당한 거리가 있음에도 문재인을 꺾을 수 있을 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거의 안철수에 올인하다시피 했었다. 한겨레 기자가 자기 SNS를 통해 문재인을 문재앙이라 부르고, 선거가 끝나고는 아예 문재인 지지자들을 상대로 '덤벼라 문빠들아!'를 외친 배경도 바로 이것이었다. 이제 문재인 지지자들이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책임을 물으려 할 것이다. 자신들의 행위의 정당성에 대해 물으려 할 것이다. 물론 보수언론들 역시 처지는 비슷했었다. 이명박근혜 정권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만큼 그 실정과 부정에 대한 책임 역시 함께 직접적으로 나눠 져야만 한다. 다른 대안이 없을까?

 

다행스러운 것은 여성계 역시 그런 언론들과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2012년 이후 여성계는 항상 박근혜 정권을 지지해 왔었다. 아니 그 훨씬 전부터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박근혜를 적극적으로 지지해 왔을 것었다. 탄핵정국에서마저 여성대통령에 대한 부당한 탄압이라며 박근혜를 적극 옹호했던 것이 바로 그들 여성계였었다. 그래서 여성주의에 우호적인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성향을 이용해서 반전의 계기를 만들려 했던 것이었다. 친일파들이 반공을 앞세워 오히려 기득권을 강화했던 것처럼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친여성주의 성향을 이용해서 여성주의의 기득권을 강화한다. 그리고 그런 여성주의자들의 움직임은 자칭 진보와 자칭 보수들에게 여성주의와 반여성주의라는 선택지를 만들어 주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보다 더 철저한 여성주의자로서 엄하게 비판하거나, 혹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여성주의적 성향을 비판하거나. 결국은 어떻게든 정당성과 명분을 잃은 자신들에게 정부를 비판할 빌미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더 여성주의자가 되거나 아니면 반여성주의를 주장하거나.

 

박원순 시장의 죽음을 계기로 여성주의를 앞세우던 자칭 진보와 반여성주의를 이용하던 자칭 보수가 마치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함께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인 것이다. 원래부터 명분을 잃은 자신들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그리고 그 지지자들을 공격하기 위해 이용해 왔던 것이 여성주의이고 반여성주의였다는 것이다. 미투는 그런 그들에게 아주 좋은 기회가 되어 주고 있었다. 여성주의를 선택한 자칭 진보들은 미투에 편승해서 정부와 여당을 공격하고, 반여성주의를 이용하려는 자칭 보수들은 그에 대한 남성들의 불안과 반감을 부추긴다. 그러나 결국 목적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공격이었기에 박원순이라는 거물의 죽음은 그들에게 다시 하나가 될 계기가 되어 준다. 평소 반여성주의를 그토록 처절하게 부르짖던 인간들이 이제와서 정의당의 여성주의자들을 적극 지지하며 나서는 것도 바로 그래서다. 처음부터 여성주의고 반여성주의고 그들에게는 아무 상관도 없었던 것이다. 박근혜로 인해 차마 현정부를 욕할 거리가 부족했던 이들에게 여성주의든 반여성주의든 단지 빌미가 되어 주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자칭 진보들에게 여성주의란 절대적인 무언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절대 의심해서는 안된다. 감히 진실을 요구해서도 안된다. 심지어 변호사에 대한 비판조차도 2차 가해이니 절대 금지해야만 한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도 가해이고, 죽음을 추모하는 것도 가해이며, 죽은 이를 기억하는 것마저 가해다. 그래서 더욱 모든 구성원들은 그런 2차 가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스스로 빨갱이가 아님을 입증해야 했던 해방공간의 상황과 비슷하다. 여성주의에 대한 입장을 묻고 그를 단죄할 수 있게 됨으로써 그들은 권력을 가지게 된다. 여성주의에 대한 조금이라도 다른 대답을 하게 되는 순간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웃기는 건 자칭 진보들에게 그 권력의 배경이 되어 주는 것이 바로 민주정부라는 것. 그러나 그 권력을 민주정부를 공격해서 뒤집는 데에 쓰려고 하고 있다.

 

결국 자칭 진보들이 여성주의를 앞세워가며 현정부와 여당을 공격하려는 이유는 한 가지라 할 수 있다. 진중권이며 홍세화 등 자칭 진보 나부랭이들이 항상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윤석열이 얼마전 공개석상에서 한 발언과도 같은 맥락이다. 문재인은 박근혜와 같다. 문재인은 이명박과 다르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근혜 정권과 차이가 없다. 그렇게 문재인 정부를 이명박근혜 정권과 같은 선상에 놓아야 지난 정권에서 자신들이 침묵하며 심지어 부역하던 과거가 지워질 수 있다. 어차피 이명박근혜를 비판했어도 결국 들어서게 되는 것은 문재인의 민주당 정부라는 것이다. 그래도 문재인의 민주당 정부를 끌어내릴 수 있으면 자신들이 지난 정부에서 보였던 비겁함을 조금이라도 상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박근혜를 끌어내린 것은 촛불시민이지만 박근혜와 똑같은 문재인을 끌어내리는 것은 언론들 자신이다. 그래서 더욱 검찰과 협력해야 하는 것이다. 박근혜를 재판정에 세웠듯 윤석열이 문재인도 재판정에 세우고 말 것이다.

 

말하자면 보상행동이라는 것이다. 이명박근혜 시절 비겁했던 자신들을 인정하지 못하기에 문재인 정부를 이명박근혜 정부와 같이 만들고, 그를 끌어내림으로써 그런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아무것도 한 일이 없을수록, 하긴 그러고보면 박근혜 정부 말기에 대부분 정부와의 싸움은 자칭 진보가 아닌 민주당이 거의 전담하고 있었다. 그것이 더 꼴보기 싫은 것이다. 세월호 정국에서 자칭 진보가 아닌 민주당이 중심에서 국민의 마음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검찰이라면 문재인도 끌어내릴 수 있지 않을까.

 

윤석열의 현정부에 대한 날선 발언들은 그런 언론을 향한 메시지인 것이다. 어쩌면 진중권이나 홍세화 등은 감격의 눈물이라도 흘리고 있을 지 모르겠다. 한겨레 경향 오마이의 기자들은 다시 노무현의 상황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라며 흥분하고 있을 것이다. 검찰이 문재인 정부를 치겠다. 그러면 문재인 정부가 무너지면 자칭 진보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달라지는 것 있을까? 그저 입으로만 떠드는 족속들이. 차라리 지금처럼 뭐라도 현실로 이루어야 하는 상황이 더 부담스러울지 모른다. 그러니 자신들을 위해서라도 문재인 정부는 실패하고 몰락해야 한다.

 

자칭 진보언론이나 자칭 진보지식인이나 자칭 진보정당이나 그리고 자칭 여성주의자들이 여성주의에 그리 철두철미해서 여성주의에 대한 종교적 광신까지 보이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나름의 절박함이다. 특히 자칭 진보들 입장에서 현정부와 여당을 공격할 명분이 여성주의 말고는 거의 없는 빈곤한 현실이 더욱 곤란하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여성주의라도 있으니 그것을 앞세워 진보입네 목소리라도 크게 낼 수 있지 않은가. 지금 와서 과연 조선일보와 자칭 진보들 사이에 과연 차이랄만한 것이 있기는 한 것인가. 당연한 것이다. 여성주의의 의미다. 저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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