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 정규직전환 논란에서도 말한 적 있었지만 한국사회는 기본적으로 징벌사회라 할 수 있다. 실력없고 노력하지 않았으면 벌받는 것이 당연하다.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조차 누리지 못하고 가난과 좌절과 절망 속에 신음하며 사는 것은 어쩌면 매우 정의로운 것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노력하고 실력을 갖추려 할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러면 그 반대편에 뭐가 있어야 하는가. 좋은 대학에만 들어가면 뭐든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다. 보상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직원들이 계약직 직원들의 정규직화를 앞장서서 반대한 이유도 이것이다. 내가 그렇게 노력해서 정규직씩이나 되었는데. 내가 얼마나 노력해서 공기업 정규직이란 타이틀을 가질 수 있게 되었는데. 정규직으로 전환되더라도 하는 일 자체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사실 같은 건 그들에게는 이미 의미가 없는 것이다. 단지 자기들처럼 노력도 안했고 실력도 없는 무지렁이들이 자신들과 같은 정규직이라 불리게 될 것이란 자체에 분노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저들은 노력 않고 실력도 없으니 벌받는 게 당연하고 자기들은 노력도 했고 실력도 있으니 상을 받는 게 당연하다. 보안검색요원들이 정규직된다고 자기들처럼 급여도 오르고 사무직으로도 전환될 것이라며 되도 않는 주장을 하고 스스로도 강하게 믿는 자체가 그같은 자신의 노력이 부정될 지 모른다는 절박한 두려움의 표현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의사는 어떨까? 이과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이들이 선택받아 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의대였다는 것이다. 이과 나와서 가장 많은 돈을 벌고 사회적으로도 존경과 신망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이 바로 의사인 때문이었다. 의대를 나와 의사만 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가난한 집 출신들은 신분도 바뀔 수 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 다 참고 고등학교까지 공부만 했으며, 의대에 가서도 그 어렵고 힘든 과정들을 버티며 수련의도 거치고 전공의도 거치며 지금의 위치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자기는 그렇게 어렵게 들어간 의대를, 자기는 그렇게 어렵게 딴 의사자격증을 이제는 정원도 수 천 명이나 늘려 마구 퍼주겠다 하고 있다. 그러면 내가 벌어야 할 돈은? 내가 누려야 할 명성과 지위는? 본전생각 나지 않겠는가 말이다. 나는 의사라는 아주 특별한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 정부도 자기들을 특별하게 예우해야 한다.

 

의사들이 민주당을 싫어하는 이유일 것이다. 민주정부는 기본적으로 의사를 이 사회를 이루는 여러 구조 가운데 하나로 여긴다. 의료라고 하는 이 사회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구성원의 하나로 여기는 것이다. 반면 보수정당에서는 의사들을 검사들처럼 특별한 존재로 대우하는 경우가 많다. 당장 자기들 자식부터 의사를 시키고 싶어 안달하는 이들이니. 자식들 배우자로 의사가 좋지 않을까 고민하는 이들일 것이니. 어째서 조국 전장관의 딸 조민씨가 부산의전원에 입학한 사실로 온 나라가 들썩였는가. 조민 씨가 어떤 생각으로 의사가 되고자 마음을 먹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의사를 그리 우습게 여기던 민주진영의 자식이 의사라는 특별한 신분을 가지려 했다는 자체에 대한 반감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기자들이 그랬다지? 어떻게 조국이 그럴 수 있느냐고. 아들이 아닌 딸이 타겟이 된 이유도 그래서라 보는 것이 옳다. 그냥 사회적으로 기능과 역할을 하는 직업 가운데 하나인가, 아니면 특권을 가진 신분이고 지위인가?

 

의사들이 파업하겠다 나서는 이유인 것이다. 자신들이 그동안 의사가 되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노력한 보상을 받아야겠다. 자신들이 의사가 되기 위해 포기해야 했던 그 모든 것들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받아야만 하겠다. 그것은 자신들이 다른 신분들과 다른 존재라는 증거이기도 할 터다. 딱 인천국제공항 정규직전환 논란 당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반대하던 부류들이 딱 이 논쟁에도 비슷한 논리로 같은 입장에 선다. 의사는 보상을 받아야 하고, 공항 보안검색요원은 벌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정의다. 그러므로 의사들 수가를 올려주기 위해서라도 건강보험의 보장을 줄이지 않으면 안된다. 건강보험의 건전성을 위해 보장은 줄이고 나머지는 민간보험에 맡기라. 이 뭔 개소리인가? 건강보험료 더 나가는 것은 싫고, 그러니까 자기 실력껏 민간보험에 의지해 살아갈 테니 국민보편의 의료복지인 건강보험은 의사들을 위해 양보하고 희생하라. 설사 자기가 그 피해자가 되더라도 그것이 정의라면 받아들이겠다.

 

그래서 인천국제공항 정규직전환을 끄집어내 가지고 온 것이다. 같은 맥락이다. 누군가는 벌을 받아야 하고 누군가는 상을 받아야 한다. 벌을 받을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하고 상을 받을 사람은 상을 받아야 한다. 그 대상이 인천국제공항 보안검색요원인 것이고 의사인 것이다. 박형순이라는 판사도 아시아나 해고노동자의 집회는 코로나를 이유로 불허하면서 민경욱의 집회는 허락했었다지? 같은 맥락이다. 어렵게 공부해서 판사씩이나 되었는데 해고노동자들과 같이 놀아서는 정의가 아닌 것이다. 해고노동자들에게는 벌을, 정치인과 같이 성공한 이들에게는 상을. 

 

온 나라가 코로나19의 급속한 재확산으로 난리인 상황에서 의사들만 한가하다. 의대생들, 수련의들, 전공의들만 한가하게 자기 밥그릇 챙기는 중이다. 자기들은 특별한 존재니까. 그렇게 특별한 존재로 인정해주는 이들을 찾아서 그들 스스로 광화문까지 찾아갔던 것이고, 광화문에서 사람을 불러들인 것이었다. 부모들부터 그렇게 가르쳐 왔으니. 저들처럼 되어서는 안된다. 저들과 다른 특별한 삶을 사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당연한 상식이며 정의다. 어디까지 썩어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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