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도 흔히 등장하는 장면이다. 이를테면 이순신의 경우도 선조가 죄가 있다 하고 죽여야 한다 하니 납죽 엎드리면서도 그동안 공이 있고 실력이 있으니 살려서 써야 한다는 주장이 이원익이나 정탁 등을 통해 나온 바 있었다. 세상에 아무 흠결도 없는 사람이란 존재할 수 없기에 과거 잘못이 있거나 죄를 지어 벌을 받은 경우라도 그보다 능력이 더 필요한 경우 그 재주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과거를 묻지 말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의견이 항상 나오고는 했었다.

 

그나마도 명분이 중요한 유교문화권에서나 저와 같은 과거의 일들이 문제가 되는 것이지 유럽은 아예 그런 자체가 없었다. 필요하면 쓰는 것이다. 뇌물을 받아 쳐먹었든, 지 형수와 놀아났듯, 상속을 노리고 친족을 살해했든 상관없었다. 자기 형제와 붙어먹은 놈들조차 그래서 쓸만하면 데려다 쓴다. 유럽 역사에 영웅이라 불리는 인물들의 뒷이야기를 보면 우리 기준으로 진짜 어이없는 경우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말하자면 개인의 사생활은 사적인 영역이고, 그 실력을 등용하여 사용하는 것은 공적인 일이란 것이다. 개인이 어떤 부정이나 비리를 저질렀든 그 실력으로 더 큰 공을 세워 보다 많은 구성원들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면 마땅히 불러다 쓰는 것이 옳은 것이다.

 

설마 청와대가 윤석열의 문제를 몰랐을까. 청와대에서 인사를 할 때는 대상자에 대한 정보를 경찰 등을 통해 받아서 확인하도록 되어 있다. 윤석열 개인이나 주변에서 다소간에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그동안 보여 온 윤석열의 강직함이라면 검찰개혁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인이 뭔 짓을 저지르고, 장모가 어떤 일들을 하고 다니든, 그래서 윤석열이 어떻게 그 뒤를 봐주고 있었든 그런 정도 문제들보다 윤석열의 성품과 실력으로 이루어낼 공적인 일들이 더 중요하게 우선적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런 정도는 충분히 감내할 만하다. 더구나 공수처가 출범하면 어차피 검찰총장도 공수처의 수사대상이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윤석열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청와대처럼 이면의, 언론을 통해 보도되지 않은 사실들을 확인할 수단과 통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국정농단과 이전 국정원 선거개입 수사 당시의 이미지를 통해서 윤석열이란 인물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지금 윤석열을 열심히 욕하고 있는 진보스피커들 다수도 당시 윤석열은 이번이 아니면 다음이라도 반드시 검찰총장에 올라야 할 인물로 적극 지지하고 있었다. 내가 최근 친여 스피커들의 임은정이나 진혜원 등에 대한 찬사를 의심스런 눈으로 보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그렇게 친여인사들은 물론 국민 일반 다수가 윤석열의 드러난 이미지만 보고 검찰총장감으로 지지하는 이상 청와대로서도 그 요구를 완전히 무시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니까 앞뒤 맥락이나 사정을 모두 살폈을 때 어느 정도 문제가 있기는 해도 검찰개혁만 제대로 이루어낼 수 있으면 좋지 않겠는가.

 

그런데 과거의 일을 묻지 않고 기껏 중요한 자리에 등용해 놨는데 제대로 하라는 역할을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뻔히 개자식인 걸 알면서도 중요한 자리에 앉혀 놨더니 하라는 일은 안하고 엉뚱한 짓거리나 벌이며 오히려 혼란만 키우는 상황이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윤석열에 대한 정부와 여당의 달라진 태도는 바로 그런 것이다. 검찰개혁하라고 검찰총장에 기껏 앉혀 놨더니만 검찰 조직을 사유화해서는 정부를 상대로 싸움이나 걸고 있다. 그마저도 뭔가 정당한 이유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야말로 막무가내로 언론과 결탁해서는 정치질이나 일삼고 있는 중이다. 그대로 두어야겠는가? 그래서 과거 묻어두었던 일들까지 하나씩 꺼내 윤석열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이번에 겨우 확보한 자료들이 아닐 것이다.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다만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아마 지금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 특히 인사청문회 당시 윤석열을 적극 옹호했던 국회의원들이 느끼고 있을 감정은 배신감이 아닐까. 하긴 제갈량도 인사에 실수가 있었으니까. 다시 없을 성군이라는 당태종이나 청의 강희제도, 세종조차도 인사에 실패는 있었다. 인사처럼 어려운 것이 그래서 없는 것이다. 사람을 어찌 자기 마음대로 계산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

 

어째서 여당에서 그토록 비루하게 감싸서 검찰총장에 앉히고는 이제와서 그런 윤석열을 과거의 일로 공격하는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이란 이름과 이미지와 능력이 필요했었다. 그런데 그 필요에 부응하지 못했으니 과거의 잘못들이 다시 그를 공격하는 칼날이 된다. 윤석열이 아마 그런 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청와대는 모르고 있거나 알더라도 그냥 조용히 묻어두지 않았을까. 인사의 책임이란 그렇게 무거운 것이다. 바보는 답이 없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