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런 게 직관이다. 사유를 거치지 않는다. 고민없이 바로 본능에 맡겨 결론을 내려 버린다. 설탕은 달다. 그러니 많이 먹자. 인삼은 쓰다. 그러니 먹지 말자. 어린아이 같다.

 

어째서 가난한 집 아이들을 위해 기껏 내가 낸 세금으로 혜택을 주어야 하는가. 어째서 더 어렵고 더 곤란한 처지에 있는, 더 참혹한 일을 겪은 이들을 위해 내 기회를 양보해야 하는가. 이미 세월호 생존자와 유가족을 위한 대학특례와 보상금을 두고 공정을 따진 것부터 그런 조짐을 보였던 것이었다. 그런 끔찍한 일을 겪었는데 공부라도 제대로 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그런 사정따위 알 바 아니기에 그저 대학가는데 더 유리한 기회를 준 자체에만 집착하게 된다.

 

가난하면 모든 것이 열악해야 한다. 가난한데 물도 전기도 대중교통도 의료도 마음껏 이용하는 자체가 불공정한 것이다. 더 많이 노력해서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높은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가지게 된 이들이 그런 것들을 더 자유롭게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들이 승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승자가 되지 못한 패자에게는 벌이 주어져야 하고 그것은 더 고통스러울수록 공정한 것이다. 당연히 승자에게는 그 이상의 혜택이 주어져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국민의힘 주변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범죄와 비리와 부정들에 대해서는 누구도 분노하지 않는 것이다. 저들은 정당한 자격을 가졌다.

 

학교 다닐 때 공부를 못해서 기껏 비정규직 청소부나 하는 주제에 고속도로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어서는 곤란한 것이다. 물과 전기를 사용할 때마다 후회와 고통 속에 살아야지만 세상은 정의로운 것이다. 극단적인 페미니즘과 상관없는 실제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이나 고통에 대해서도 그냥 여성이라 그런 것이라 단순하게 넘기고 만다. 성범죄에 대해 여성이 받아들여야 할 사실인 양 떠들던 국민의힘 부대변인 후보의 사고는 그런 점에서 그런 이들을 대변하고 있다. 그러니 현실에서 여성에 대해 차별하는 것조차 정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흑인의 범죄율이 백인의 그것에 비해 훨씬 높다. 진학률도 낮고 따라서 문맹률까지 훨씬 높으며 대부분 사회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그러니 흑인은 백인에 비해 부도덕하고 열등하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렇다. 흑인도 노력하면 백인처럼 성공할 수 있다. 단, 백인보다 훨씬 더 많이 노력해야만 그런 가능성이라도 생긴다. 하지만 결과만 본다. 그러므로 흑은 노력하지 않아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다. 얼마나 쉽고 편하고 단순한가. 그러니까 그런 현실에 비례해서 개인으로써 대우하는 것이 공정이고 정의다. 저들의 사고방식이다.

 

여가부 폐지야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수준이다. 원래 처음부터 여가부의 신설 자체를 반대했던 입장이기에 지금이라도 여가부를 폐지한다면 나야 쌍수들고 환영이다. 특히 여가부야 말로 군사독재에 부역하던 제도권의 친기득권 여성단체의 후신이라, 엄격한 도덕주의를 앞세운 권위주의적인 행태가 내 또래들에게는 거의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게임이며 만화며 영화며 소설이며 하여튼 오만 것을 다 자신들만의 도덕적 가치를 기준으로 재단하고 규제하려 했었다. 다만 정치적인 이해로 인해 어쩌지 못하던 것을 이준석이며 하태경 같은 별 볼 일 없는 것들이 이슈를 선점하겠다며 떠들고 나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통일부를?

 

거의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이 제 역할을 못했으니 해체하겠다는 박근혜와 같은 사고수준인 것이다. 통일부가 있는데 통일을 이뤄내지 못했다. 남북관계의 개선도 이뤄내지 못했다. 통일부가 왜 생겨났는가? 남북이 분단되고 심지어 전쟁까지 치렀기에 통일부가 생겨난 것이다. 남북분단과 남북간의 긴장은 통일부의 원인이지 결과가 아니다. 하지만 이 둘을 섞는다. 통일부가 있어도 통일이 되지 않았으니 통일부를 없애자. 그러면 기재부가 있어도 경제가 엉망이니 기재부를 없애야 할까? 국토부가 있어도 집값을 잡지 못했으니 국토부를 없애야 하는가?

 

이런 주장을 그대로 받아 떠들어주는 언론도 문제인 것이다. 하긴 여가부 없애겠다니 차마 국민의힘을 욕하지는 못하겠고 여성단체가 나서서 여가부 없애고 대통령 직속 위원회로 대체하자 주장한다. 거의 언령 수준이다. 국민의힘이 주장하면 곧 길이요 법이오 진리라. 20대 청년들이 그리 주장하고 있으므로 그 분노는 정당하며 정치권은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 한 번 김용민은 개새끼다. 20대 남성이 주장한다고 다 정의가 아니다. 70대 남성이 주장한다고 다 진리가 아니듯이. 이준석과 거의 일치하는 사고를 가진 놈들에게 어떻게 민주당이 맞춰가야 한다는 것인가.

 

아무튼 이준석의 위험한 역사관이 그대로 드러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통일의 대상이 아니라 외교의 대상이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남북분단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따라서 일제강점기는 대한민국 입장에서 국치가 아니다. 로마의 지배를 받던 시절이 아직 국가도 민족도 생겨나기 전 유럽인들에게 아무것도 아니듯 국가도 민족도 없었던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통일부도 부정하고 친일파도 긍정할 수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사고일 테고, 아마도 20대 남성들의 사고일 것이다. 국가와 국민도 상관없이 나만 살고 보자.

 

사유 없이 상상 없이 오로지 자기의 지금 감정에만 충실하면 인간은 어떻게 퇴화하는가. 미디어의 발달이 인간을 위해 반드시 좋기만 한 것은 아니란 뜻이다. 새삼 확인한다. 고민하게 만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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