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동안 추미애 전대표의 발언에 정의당이 반응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거의 분초단위였을 것이다. 추미애 전대표 뿐만 아니다. 대통령이나 정부와 여당과 관련한 인사들의 말 한 마디에도 꼬투리가 있으면 바로 붙잡고 달려들어 맹렬하게 물어뜯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가? 절름발이라는 단어 하나에도 각을 세우던 정의당이 정작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광주반란'이라는 발언에는 여전히 침묵하는 중이다.

 

하긴 당연할 것이다. 지난 총선 끝나고 정의당의 일성이 바로 민주화세대와의 단절선언이었었다. 자신들은 더이상 민주화 세대와 상관이 없다. 공도 과도 함께하지 않는다. 80년대 민주화운동의 기폭제가 바로 광주항쟁이었으니 더이상 정의당 입장에서 상관없는 남의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오세훈이 용산참사의 책임이 철거민에게 있다 주장해도 오히려 지지를 강화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철거민 문제도 더이상 정의당과는 상관없는 남의 일이다.

 

사실 90년대부터도 그런 움직임은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가해자는 누구이고 피해자는 누구인가? 민족이란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구조일 뿐이다. 민족을 배제하고 보면 가해자 남성과 피해자 여성만 남는다. 같은 민족인 조선인 남성도 결국 조선인 여성에게는 가해자일 뿐이다. 위안부와 관련해서 자칭 진보의 역사관을 언급하며 한 번 이야기한 바 있을 것이다.물론 그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여성주의란 일제강점기 친일파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사독재시절 독재권력에 기생하던 여성주의 선배들을 떠올려서라도 민주화의 역사는 부정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민주화운동보다 여성주의 운동이 더 우위에 있다.

 

아마 지금쯤 정의당이나 자칭진보 내부에서 그런 논리들이 만들어지고 있을지 모르겠다. 광주항쟁도 결국 군부와 시민간의 투쟁이 아닌 남녀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그렇다면 군부가 아닌 남성이 가해자가 되어야 하고, 광주시민이 아닌 여성이 피해자가 되어야 한다. 남성을 반란이라 말하든 말든 자기들과 무슨 상관인가. 대한민국은 조선총독부를 계승했으며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일본의 일부가 되어 선진국 일본의 앞선 문물들을 장벽없이 누릴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던 것이 또 당시 자칭 진보 논객의 한탄이었으니. 새삼스럽지 않다고나 할까.

 

아무튼 이로써 분명해졌을 것이다. 여영국이 이미 선언한 바 있다. 진보의 가치란 반민주에 있다. 민주당에 반대하는 것에 있다. 그것이 정의당이란 자칭 진보세력의 현주소인 것이다. 아니 정의당 뿐만 아니다. 녹색당이나 사회당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실제 내가 아는 자칭 진보들 가운데는 녹색당이나 사회당에 적을 둔 경우가 적지 않아서.

 

용산참사를 외면하고, 세월호를 저버리고, 그리고 이제는 광주마저 배반한다. 자칭 진보에 남은 정의란 이제 과연 무엇이 있을 것인가. 저것들이 진짜 진보이긴 한 것인가.

 

하지만 어차피 모두가 예상한 결과라.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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