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말했던 것이다. 송영길 아주 잘하고 있다고. 송영길이 당대표가 되고 민주당이 전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고고한 선비가 아니다. 진리만 쫓는 학자도 아니고 이상만 쫓는 사상가도 아니다. 정치인이다. 그것도 자기 욕망을 위해 끊임없이 주위를 살피며 적응해가는 현실정치인인 것이다. 역시 그래서 말했던 것이다. 속물이라고. 소인배라고. 하지만 그래서 어쩌면 민주주의라는 제도 아래서 더 유용할 수 있다고.

 

현재 민주당의 지지자 가운데 다수가 재난지원금의 전국민지원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낙연 대표체제에서 철저히 외면당해 왔던 만큼 자신이 그것을 현실로 이루어낼 수 있다면 온전히 자신의 성과가 되는 것이다. 이재명이나 추미애가 전국민지급을 주장했었다는 사실은 그 순간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당대표로써 자신이 의지를 가지고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을 추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재난지원금의 전국민지급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주장한다. 그렇더라도 결국 이준석의 동의를 받아 실행하게 된다면 그 모든 공은 이준석에게 돌아갈 것 아닌가. 그러면 지금 이준석이 여가부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데 민주당이 받아서 실제 폐지하게 된다면 그 모든 공이 민주당에게로 돌아갈까? 재난지원금의 전국민지급 여부를 두고 논쟁한 것은 지금까지 민주당 혼자였다는 것이다. 민주당과 행정부를 통해서 내부적으로 논쟁과 갈등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전국민일괄지급도 선별지급도 결국 민주당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논쟁 가운데 존재하는 선택지인 것이다. 이런 것을 아젠다 선점이라 부른다. 먼저 아젠다를 선점하고 나면 뒤따라 어떤 주장을 해도 단지 최초 아젠다에 더해지는 여러 주장 가운데 하나가 되고 마는 것이다. 여당 내부에서의 전국민지급 논쟁에 대해 야당인 국민의힘이 전국민지급의 손을 들어주었다. 결과적으로 선별지급을 채택하는 것도, 실제 지급을 집행하는 것도 모두 정부와 여당의 소관이란 것이다. 

 

그래서 국민의힘 내부에서 반발이 일어난 것이다. 전국민지급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힘이 민주당 내부의 논쟁에 끼어들어 민주당 좋은 일만 해주고 말았다. 문제는 그렇다고 중간에 번복하고 철회하면 그때는 전국민지급이 아닌 선별지급에 대한 책임이 온전히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힘에게로 쏠리게 된다는 것이다. 민주당과 합의하고 전국민지급에 반대하는 바람에 선별지급으로 다시 확정되고 말았다. 원래는 국민의힘의 잘못이 아닌데 괜히 끼어들었다가 덤터기만 쓰고 만 것이다. 송영길이 그럴 의도는 아니었을 테지만 결과적으로 공은 민주당이 독차지하고 책임은 국민의힘에 떠넘기는 일석이조의 묘수를 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송영길의 계산은 단순하다. 당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그에 따라 기재부를 설득하는데 아무래도 힘이 딸린다면 같은 입법부에서 야당의 동의를 얻어 그 힘을 빌리는 것도 하나의 묘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의회가 합의했으니 행정부로서도 마냥 지금까지처럼 버틸 수만은 없다. 물론 그 과정에서 국민의힘에서 엉뚱한 소리를 하며 동의못하겠다 어깃장을 놓는다면 그를 빌미로 책임을 그쪽에 돌릴 궁리도 어느 정도 머리속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멍청하게 합의로 민주당에 힘을 실어주고는 번복으로 책임만 가져가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것은 전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더할나위 없는 상황이다. 이준석 덕분에 재난지원금에 있어 민주당의 책임이 많이 가벼워졌다.

 

어제 쓴 글의 연장이다. 젊다는 건 그만큼 아직 지식도 경험도 기술도 부족하다는 뜻이다. 국회의원이 되어 본 적이 없다. 거대정당에서 정당운영에 간접적으로라도 참여해 본 바가 있다. 그래서 어설프다. 섣부르다. 그런데 자신감만 넘친다. 언론이 띄워주고 지지자들이 띄워주니 진짜 자기가 잘난 줄 안다. 여성부 폐지로 이슈를 선점했다 싶으니 통일부 폐지까지 말했다가 오히려 역풍만 맞고 만 상황이 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송영길의 제안에 대해서도 재난지원금의 전국민지원의 성과를 자기가 온전히 가져갈 수 있으리라 어설프게 판단했을 것이다. 재주는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가 부리고 돈은 국민의힘과 이준석 자신이 챙긴다. 아니라는 걸 깨닫기 위해서는 그래도 선배정치인의 준엄한 깨우침이 필요했을 것이다. 뒤늦게 깨닫고 보니 이건 너무 멍청한 짓이었다.

 

궁리해야 한다. 행동해야 한다.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이낙연이 가장 못한 일이었다. 이해찬과 추미애가 이낙연과 확연하게 비교되는 부분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도 스타일이 다르다. 이런 전형적인 정치스런 행동은 문재인 대통령과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 능구렁이랄까. 정치를 그냥 꽁으로 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리라.

 

그야말로 송영길이 우직한 정수에 이준석이 묘수를 부리겠다 헛발질로 자멸하고 만 상황인 것이다. 그런 것까지 예상했으면 송영길은 대통령감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만든 것부터 정치인으로서 최선의 수를 실천하려 했던 송영길의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생각보다 괜찮은 인물이다. 이낙연과 비교되어서 그런가? 너무 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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