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니 벌써 작년 10월 쯤이었다. 시간 가는 걸 잊는다. 그보다 내가 그런 글을 썼었다는 사실조차 가물거려서 결국 다시 찾아서 읽어보고야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바로 지금의 상황을 그때 이미 나는 예견하고 이재명을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읽은 상황을 오판한 결과 이낙연은 수세로 몰린 것이고. 

 

한 가지 내가 그때 판단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이낙연이 설사 민주당 180석 의석을 앞세워 검찰개혁을 이루어내더라도 그것은 이낙연 자신의 공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누구라도 민주당의 대표가 되었으면 당연히 이루어야 할 과제인 것이지 자신의 성과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검찰개혁은 오로지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에서 시작된 문재인 대통령의 공이다. 그래서 이낙연도 조급해진 것이었다. 내 생각과는 달리 자기가 당대표로서 민주당을 이끌고 개혁법안들을 입법해도 그 공이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래서야 어느새 자신을 추월해 앞서가는 이재명을 따라잡기란 요원하다. 뭔가 승부수를 던질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게 하필 사면론이었다.

 

이낙연의 계산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에 이은 통합과 안정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었을 게다. 문재인 대통령이 적폐청산과 개혁정책들을 이루어냈으니 자신은 그 뒤를 이어받아 관리형 대통령으로서 사회의 통합과 안정을 이끌겠다. 선명하지만 그래서 더욱 불안하게만 여겨지는 이재명과 비교하기에도 자신에게는 더욱 필요한 과정이라 여긴 것이다. 문제는 지지자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만으로 적폐청산과 개혁이 모두 끝날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해찬의 말처럼 앞으로 최소 20년은 더 집권해서 일관되게 개혁정책들을 밀고 나가야 비로소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되려는 인물로써 민주당 180석을 가지고 어떤 개혁적인 아젠다를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가 이낙연에게 주어진 숙제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잘못 이해해서 오히려 과거로의 회귀로까지 보이게 만들었으니 이만저만 패착이 아니다.

 

아무튼 그래서 당시에도 이낙연이 홍남기와 기재부를 적폐로 규정짓고 공격하는 것을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던 것이었다. 뭐랄까 막 싸우는 것 같은데 모든 것이 계산되어 있는 듯한, 그저 사납고 거칠게만 보이는데 영리하게 지능적으로 자신만을 위한 싸움판을 만들고 있었다. 재난지원금에 대해 보편지급이라는 아젠다를 먼저 자기가 세팅해 놓는 것이 그랬고, 더구나 재난지원금 지급을 계기삼아 홍남기와 기재부의 보수적이고 경직된 재정운영을 비판하면서 이후 개혁할 대상으로서 관료사회의 관료주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문재인 대통령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좌초된 것도 기재부 관료들의 태업과 저항 때문이었고,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재정정책을 펴려 할 때마다 홍남기와 기재부에서 정면으로 반발하고 나섰었다. 그 사실을 지지자들도 알기에 이재명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던 이들마저 문재인 대통령의 뒤를 이어 개혁을 이끌어갈 인물로써 기대를 가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더구나 때도 좋게 사법부마저 윤석열과 손을 잡은 것이 명백해지면서 문재인 정부 이후는 안정보다 더 강력한 개혁이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게 되었으니 이재명이 벌려 놓은 판 위에서 이제는 여권 전체가 움직이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재난지원금의 보편적 지급이냐? 선별적 지급이냐? 재정안정이냐? 과감한 재정정책이냐? 

 

이낙연의 오판이 더욱 뼈아픈 이유인 것이다. 덕분에 홍남기의 기재부 관료출신다운 관료적이고 보수적인 재정운영이 이낙연의 이미지와 결부되기 시작했다. 홍남기를 추천한 것도 이낙연 자신이었기에 홍남기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만큼 이낙연에게도 그 책임이 덧씌워진다. 그리고 그것은 이낙연 자신 또한 사면론에 이어 개혁되고 청산되어야 할 구세력의 일부로 여겨지게 되었다는 뜻으로도 읽힐 수 있다. 아예 이전 이재명이 문재인 지지자들 사이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이낙연이 민주당 지지자 다수 사이에서 비호감의 대상으로 낙인찍힌 것이다. 이래서야 앞으로 무엇을 하든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 리 없다. 반사효과로 이재명은 더욱 자신의 선명성을 드러내며 이후의 논쟁들을 주도해 나간다. 정세균과 임종석마저 이재명이 만든 판 위에서 논쟁을 이어가지 않는가.

 

그러면 이낙연에게는 기회가 없는가? 그동안 내가 쓴 글 뭘로 읽은 것인가. 선별지급으로 보편지급을 뒤집을 방법은 하나다. 선별지급이 보편지급을 압도할 정도로 현실적이면 되는 것이다. 전국민 100만원 보편지급보다 피해입은 당사자들에게 선별해서 최대 수천만원까지 손실금액을 보전해준다. 이낙연이 아마 아직도 자기가 가진 힘의 크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사면론같은 헛발질을 승부수라고 던진 것이다. 하려면 뭐든 할 수 있다. 더불어 과연 문재인 대통령의 업적을 대신한다는 것이 여당의 당대표로서 반드시 나쁘기만 한 일인가 스스로 되물어 볼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되려 하는데 그 정책적 목표를 공유한다는 것이 과연 그렇게 불리하게만 작용할 것인가. 지금 지지율이 지지부진한 것은 그럼에도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결론은 정치력에서 이재명이 이낙연보다 몇 줄 위라는 것이다. 아니 지금 현재 정치권에서 본능적인  판세읽기와 판만들기에서 이재명보다 낫다고 할 만한 사람을 찾기 힘들다. 인간이 신뢰하기 어려워 그렇지 능력만 놓고 보면 최상급에 속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 마음에 내키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원래 자기가 똑똑한 걸 아는 사람들은 세상 모든 걸 단지 수단으로 도구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보니. 더구나 자수성가한 유형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다른 대안이 없다면 어쩔 수 없다 여길 밖에.

 

이낙연에게 위기다. 그런데 여전히 이낙연에게도 기회는 열려 있다. 잡을 것인가 말 것인가는 순전히 이낙연 자신의 선택에 달렸을 것이다. 무엇으로 지금의 상황을 뒤집을 수 있을 것인가. 즉 무엇으로 지금까지의 자신의 이미지를 일신할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참모는 역시 갈아치워야겠다. 하등 쓸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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