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언어란 것은 공간과 시간은 물론 위상의 차이에 따라서도 분화되는 것이다. 처음 같은 말을 쓰고 있었더라도 사는 곳이 다르고, 지나온 때가 다르고, 서로의 위상이 다르면 말은 달라지게 된다. 의외로 흥부전에 그런 언어의 구분이 잘 묘사되어 있다. 왕은 수라고 양반은 밥이고 천민은 하빈이라. 같은 밥인데 쓰는 말이 이리 달라지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같은 단어가 서로 속한 계급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고, 혹은 읽는 법마저 서로 달라지게 된다. 그리고 그런 언어의 차이를 통해 서로가 속한 집단을 확인하게 된다. 사실 그를 위해서 더욱 의도적으로 언어를 구분하는 경향도 상당히 크다. 귀족은 귀족에 어울리는 언어를, 부르주아는 부르주아에 어울리는 언어를, 뒷골목 하류 인생들에게는 그에 어울리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태도의 보수란 말도 나오는 것이다. 엄격하게 그 말과 행동을 판단하여 그 자격을 결정한다. 귀족들과 어울리려면 귀족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부르주아와 어울리려 해도 부르주아에 맞는 언어를 쓸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자칭 진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이유다. 나는 태어나기를 빈민가에서 태어났고 노동자로 자랐기에 그들의 언어에 익숙지 못하다. 내게 익숙한 것은 비천한 하층노동자의 언어다. 쌍욕과 비속어가 일상적으로 난무하는, 그런 것이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는 언어인 탓이다. 그래서 어느 자칭 진보는 나를 비천한 대중이라 말하더라.

 

아마 이야기했을 것이다. 오히려 이재명 도지사가 형수에게 했다는 쌍욕에 친근감을 느끼게 되었다. 당연하다. 나 역시 같은 상황이면 그보다 더 심한 욕도 했을 것이다. 주저리주저리 왜 나쁘고 뭐가 나쁘고 그래서 내가 어째서 화내고 싫어하는가를 설명하기보다 욕 한 마디로 끝내면 좋은 것이다. 씨발년 쌍년 찢어죽일 년 파묻어죽일 년 아마 여기 쓰지도 못할 욕을 너무 당연하게 내뱉으며 그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을 것이다. 그래야 속편한 게 바로 하층 노동자의 사고란 것이다. 씨발년 좆같으면 좆같다 해야지 뭔 고상한 소리 씨부리고 있는가.

 

내가 블로그질하며 욕을 자연스레 섞어 쓰게 된 이유였다. 이전에는 안 그랬다. 고상한 척 어려운 말 섞어 쓰는게 굉장히 그럴싸한 뭐라도 있어 보이는 행위라 여겼었다. 자칭 진보들로부터 얻은 깨달음이다. 나는 저들과 같이 될 수 없다. 내게 욕은 생활이며 일상이다. 저놈들이 이런저런 고상한 말들을 끄집어내는 동안 나는 내게 익숙한 상스런 말들을 통해 나의 생각과 감정을 직관적으로 전한다. 이 새끼 저 새끼 개새끼 버러지새끼. 이재명 지사의 때로 성급하고 거친 말과 행동에 공감을 가지는 이유인 것이다. 나도 평소에는 그리 말하고 행동한다.

 

자칭 진보가 마침내 계급적 이해를, 사회적 약자들의 처지와 이유를 고려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들은 듯하다. 글쎄 그 진중권이 이재명의 쌍욕을 문제삼고 나섰다. 진중권만일까? 자칭 진보들이 여전히 윤석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오세훈이나 원세훈 등에 기웃거리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하긴 그런 점에서 홍준표도 쓰는 언어만 본다면 이재명과 크게 다르지 않을 터였다. 나의 언어다. 내 계급의 언어다. 천하고 순수하고 저열하고 질박하다. 그게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식인인 것이다. 나름 사회에서 인정받는 신분과 지위에 있는 것이다. 물론 알아주는 이 하나 없을 때는 그런 욕설따위 상관도 하지 않았었다. 오히려 긍정하는 경우마저 있었다. 비천한 자가 귀한 신분을 얻게 되면 더 비천한 이전 신분에 대해 엄격해지는 법이다. 정의당과 자칭 진보의 현재를 보여주는 것이다. 수구가 인정해주니 그런 자신을 저러리기 싫어 더욱 수구의 눈에 들기 위해 진보란 가치를 이용한다.

 

80년대 달동네를 떠올려 보면 된다. 곳곳에 똥이 굴러다니고, 또 한 쪽 구석에서는 부끄러움도 모르고 골목 귀퉁이에 신문지 깔고 똥을 누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려서부터 오만 추악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런 추한 어른을 닮으려 하고 있었다. 이재명도 나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위한다던 자칭 진보가 그를 욕하는 현실을 보게 된다.

 

고상함이란 그럴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이들을 위한 것이다. 길고 어렵고 복잡한 설명들을 충분히 여유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처지의 이들을 위한 것이다. 법이 자기 편이고, 기성의 규범과 질서가 자신의 편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 그런 확신과 자신이 있다. 욕이라도 내뱉어야겠다. 변호사가 되었어도 시장이 되었어도 다르지 않다. 익숙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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