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긴몰라도 지금 정의연을 둘러싼 논란들의 원인 가운데 하나는 위안부운동을 둘러싼 주도권다툼에도 있을 것이다. 해외활동가들도 한결같이 지적하는 부분이다. 돌아가시기까지 김복동 할머니와 윤미향 전이사장이 위안부운동의 최전선에 있었으니 이제는 다른 주체가 나서서 위안부운동을 주도해야 하지 않겠는가. 마침 그 틈이 보이기도 했다.

 

문제는 위안부운동에 있어 정대협이 가지는 상징성이다. 사실상 위안부문제가 불거진 초기부터 활동해 온 단체이고, 이후 위안부운동의 모든 중요한 장면들을 만들어 온 주체였다. 그야말로 위안부운동의 시작이자 끝이라 보아도 좋았다. 그러니까 이용수할머니의 기자회견문에서도 정의연이 이루어낸 성과 위에서 새롭게 시작하자 했었던 것 아니겠는가. 정의연을 부정하고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그동안 정의연이, 정대협이 이루어 온 것이 너무 크고 너무 많다. 모두 부정하고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

 

다만 착각한 것은 그동안 정대협을 노려 온 적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더구나 힘까지 세다. 거의 모든 언론과 식자층과 정치권과 한일관계에 민감한 기업들이 그동안 위안부문제에 앞장서 온 정대협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정대협만 사라지면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 할머니를 개별설득해서 쉽게 조기에 해결할 수 있었다. 정대협만 아니었으면 벌써 오래전에 위안부 문제는 대중의 기억속에서 잊혀져갔을 것이다. 그나마 국민적인 지지가 뒷받침되었으니 지금까지 버틴 것이지 아니었으면 벌써 오래전에 타겟이 되어 오욕속에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바로 지금처럼.

 

지금 언론의 보도가 목표하는 바는 하나다. 정대협을 신뢰하고 지지하던 사람들에게 더이상 신뢰하지도 지지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무려 30년 동안의 이용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처음부터 위안부 피해자들을 속이고 이용한 것이다. 정대협 활동의 모든 정당성을 부정한다. 정대협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수요집회까지 부정한다. 정대협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수요집회도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당신들이 지지해 온 위안부운동은 더이상 없다. 과거에도 모두 거짓이었고 앞으로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당신들도 속은 것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여전히 정대협이 추구하던 위안부운동의 대의를 이해하고 동의하고 지지하던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들이 그동안 위안부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지원해 왔던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들마저도 어느 순간 정의연과 함께 여론이 공격할 대상이 되어 버린다. 어제까지 위안부문제에 전혀 관심도 없던 이들이, 아시아 여성기금을 받고 끝냈어야 했다고, 2015년 위안부협상을 받아들였어야 했다고 주장하던 바로 그들이 어느 순간 피해자들의 편에서 위안부운동을 지지하고 지원해왔던 이들을 앞장서서 공격하기 시작한다. 그럴 수 있는 명분을 피해자를 중심으로 한 그들 스스로가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생각했을 것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위안부운동을 시작한다면 충분히 정의연을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말했다. 원래 그들은 위안부 문제에 별 관심이 없던 이들이라고.

 

미래통합당 곽상도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미래통합당이 그동안 위안부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 오고 있었는가. 심지어 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반일종족주의의 저자들과 행동을 함께하는 모습까지 보여 온 이들이었다. 2015년 위안부협상의 주체이기도 했었다. 협상의 내용을 받아들이라며 피해자들을 강요하고 이간질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었다. 기자회견장에서 목소리를 높이던 이들은 또 누구인가. 그리고 그들을 앞장세워 공격하고 있는 대상은 누구인가. 그렇게 정대협의 활동을 지지해 왔던 이들을 모두 잘라내고 몰아내고 나면 누가 남겠는가. 그것도 아주 불쾌한 기억과 함께 몰아내고서 새롭게 시작하겠다면 과연 누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지해 주겠는가.

 

어차피 저쪽의 목적은 그동안 자신들의 의도를 방해해 왔던 정대협이 다시 일어서지 못하도록 철저히 짓밟아 없애는 것일 게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정대협을 대신하고자 하는 그들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정대협이 사라지고 그들이 다시 저들이 정대협을 대신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줄까. 아니 그렇게 된다고 과거 정대협을 성원하고 지지하던 국민들이 새로운 운동에도 성원과 지지를 보내줄까. 정대협이 자신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처음부터 가짜고 거짓말이었다면 그 자체로 그동안의 지지조차 의미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모든 활동을 깡그리 부정하는 새로운 운동을 지지하기에는 너무 낯설고 불편하기만 하다. 불쾌한 감정마저 남기고 만다. 사실 진짜 의도하는 바일 것이다. 정대협의 활동을 지지해봐야 결국 남는 것은 회계부정이나 횡령 같은 불편한 기억들 뿐이다. 무엇으로 앞으로 그런 사람들을 전처럼 열정적이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순수해지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하긴 그래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동안 한겨레와 경향 등 자칭 진보들의 일관된 노선이기도 했다. 진짜가 아닌 가짜는 필요없다. 진짜가 아닌 가짜독자마저도 자신들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 기꺼이 거부한다. 진짜 독자들만 남기기 위해 심지어 위악스런 기사까지 내보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생존자 가운데 전면에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한 분을 중심으로 새롭게 판을 짜는 것일 게다. 그 새로운 판 위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는 것이다. 정대협은 끝났고 새로운 사람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문을 작성하는데 7-8의 사람이 관여했다고 한다. 그냥 관여했을까. 그냥 아무 상관없는 개인들이었을까. 기자회견문에도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앞으로 그들이 대신했으면 한다. 처음부터 그럴 의도였었다. 그러기 위해 정대협을 파렴치한 집단으로 몰아가며 지금까지 공격해 왔던 것이었다. 그리고 정대협과 함께 그동안의 위안부운동 전체를 부정하며 지지자들까지 시궁창으로 내몰았다. 불쾌한 감정들이 쌓이고 있다. 내가 왜 저런 놈들로부터 위안부문제에 대해 이따위 비난까지 들어야 하는 것인가. 그 원인을 돌이켜 보면 남는 것은 역시 불쾌한 기억 뿐인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정대협의 운동방향을 지지하는 것은 내가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이다. 그저 국민들은 아무 판단도 없이 그냥 위안부운동이라 하니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인가.

 

사실 새로운 것도 없다. 한일관계가 좋아지면 당연히 좋겠지만 지금 그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은 일본정부인 것이다. 일본 정부에서 사과하고 배상도 하고 사이좋게 지내고도 싶은데 정대협이 반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 역시 지금도 열심히 활동은 하고 있지만 일본정부 차원에서 거부하고 있으니 크게 진척은 없다. 정대협만 사라지면 일본 정부가 갑자기 온건해지고 유연해진다고? 그런 말을 잘도 받아쓰는 기자놈들의 머릿속을 한 번 들여다 보고 싶다.

 

원래 위안부운동을 지지하던 사람들을 배제한 채 관심도 없이 오히려 그를 부정하던 사람들로 주위를 채운다. 지지자들을 분열하여 일부를 배제하며 그를 공격할 논리까지 제공해준다. 정대협의 해체는 그냥 시민단체 하나의 해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모르는 것인지 모르는 척 하는 것인지. 감정이 이성보다 앞서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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