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요약하면 이렇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성의있게 해결하려 하고 있다. 정신대 문제를 함께 엮지만 않았으면 벌써 일본 정부에 의해 사과도 받고 보상도 받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괜히 정신대 문제를 끌어들여 중간에서 훼방놓은 정대협이 잘못한 것이다.

 

딱 그대로 지금까지 위안부 피해자들의 편에서 최대한 억울함이 없도록 함께 일본정부에 항의하며 싸웠던 이들은 비난받고, 오히려 위안부 피해자들을 윽박지르며 합의를 종용하던 놈들은 기세가 등등해졌다. 2015년 위안부 합의를 받아들이는 것이 옳았다. 1994년 아시아 여성기금을 받는 것이 옳았다. 할머니 자신은 아니라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소녀상도, 기념관도, 기림비도, 세계 여성단체들과의 연대도 의미없고 현금으로 지원하는 것이 옳다.

 

프레임이 바뀐 것이다. 진자 이용수 할머니의 말처럼 운동의 방향이 바뀐 것이다. 그리고 위안부 운동이란 전시 성노예라고 하는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가 아닌 피해자들의 개별적인 경험으로 축소되고 말았다. 강제로 인신을 약탈당하고 노동력을 착취당했어도 자신들과 같이 이야기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니까 앞으로 위안부 운동을 한다고 모금했으면 모두 피해자들을 위해서만 써야 하고 다른 어떤 활동도,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지원하거나 해서는 안된다.

 

그런 프레임 전환에 좋아라 끼어드는 진중권은 역시나 진중권이라 할 밖에. 그렇다고 진중권만 욕하기에는 한겨레나 경향이나 정의당이나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어제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보고 정의연과 윤미향을 욕하던 사람들마저 냉정해지게 된 이유일 것이다.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적지도 않다. 지금 이용수 할머니가 주장하는 바의 의미를 이해한 때문이다. 그러면 그동안 자신들이 위안부 운동을 지지해 온 것이 뭐가 되는가.

 

실제 그동안 피해자 개인의 고통보다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로서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을 모색하며 그 활동들을 지지해 온 이들이 있었다. 오히려 전세계적으로 보면 더 많을 것이다. 정의연이 이룬 가장 큰 성과다. 피해자 개인의 문제가 아닌 인류 보편의 세계의 시민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로 만들어냈다. 그러니까 미 의회에서 결의문도 내고, 세계 각지에서 시민들이 나서서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에 동참해 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모든 활동들이 아무 의미없다 말하고 있었다.

 

아니 그런 정도가 아니라 여전히 정의연과 연대하고 있고 내부의 사정을 자세히 아는 해외의 시민단체들에 대한 취재나 인터뷰조차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정의연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일부러 모아서 들려줄 뿐 정의연을 지지하는 단체나 개인의 목소리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시한다. 그동안 정의연의 활동에 대한 부정이다. 조중동이야 그렇다치고 한겨레와 경향까지 그러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 내용의 일부만 인용해서 윤미향을 죄인으로 확정짓고 공격하는데만 골몰하고 있다.

 

아무튼 그래서 결론은 이른바 말하는 위안부 인권운동이란 이것으로 끝이란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정의연은 해체하고 윤미향 당선인도 사퇴해야 한다. 다만 6월 1일까지는 버텨 주어야 한다. 언론에 떠밀려서가 아니라 운동의 방향이 바뀐 이상 정의연이 더이상 존재할 의미를 잃었기 때문인 것이다. 윤미향 당선인이 국회로 가더라도 더이상 피해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뭘 하겠는가. 그동안의 활동을 모두 부정당했는데.

 

이번 논란을 보면서 그동안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이들이 크게 허탈감과 허무감마저 느끼는 이유일 것이다. 피해자들과 함께라고 생각했었다. 일부 생각이 다른 피해자들도 있었지만 보편적인 인권의 관점에서 세계시민의 문제로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모두의, 그리고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여겼었다. 그런데 아니란다. 아마 그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정의대와 위안부는 다르다. 그 부분을 전혀 말하지 않는 자칭 진보언론을 보면서도 역시 자칭 진보는 진보가 아님을 확인한다.

 

다시 말하지만 정부 입장에서 크게 나쁠 것은 없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도 어려운데 여론이 이런 식으로 바뀌면 그냥 2015년 협상에서 조금 더 얹어 받는 수준으로 재협상을 해도 크게 욕을 먹을 정도는 아니다. 정의연이 사라지면 할머니 개인들을 설득하기도 더 수월해진다. 정의연이 버티고 있었기에 그동안 보수정부에서도 할머니들에게 직접 접근해서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었다. 이제는 그런 정의연도 없는데 뭐가 어렵겠는가.

 

조금만 나쁜 마음을 먹으면 - 아니 오히려 피해자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여긴다는 자세만 견지해도 위안부 문제는 바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실제 정의연이 걸림돌이기는 했었다. 일본이 편한대로 결정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었었다. 한국 언론과 여론이 그것을 치워주었다. 뭐라 말하기도 싫다. 말을 섞기도 싫은 놈들이 오히려 기세등등하게 위안부 피해자들의 편에 선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너무 꼴같잖다.

 

내가 지금 느끼는 불쾌감의 정체다. 나 자신까지 부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역시 당사자의 문제이므로 내가 무어라 거기에 대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차라리 맡기고 지켜보는 쪽을 선택하려 한다. 민주당 입장에서 소극적인 이유는 위에 설명했으니 이해하면 될 것이고. 과연 누가 진짜 피해자일지는. 어떻게든 알아서들 잘 하겠지. 다 의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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