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튼 평소 아예 아무 관심도 없던 것들이 느닷없이 아는 척 관심있는 척 하려니 이런 모순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용수씨의 주장이 가지는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용수씨의 주장을 모두 사실로 단정할 경우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이용수씨의 주장을 인정하면서 위안부운동을 계속 이어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된 일인지. 아무 관심도 없었으니 당연히 알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니 생각도 하지 못한다.

이용수씨는 첫째 위안부운동을 주도하던 단체로써 정대협의 존재와 자격 자체를 부정했었다. 정대협은 근로정신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체다. 근로정신대 문제를 해결하는데 위안부 피해자들을 그동안 앞장세워 이용해 온 것이다. 그러므로 정대협에게는 위안부문제의 해결을 위해 앞장설 자격조차 없었다. 바로 위안부운동을 시작했고 주도했던 그 정대협에 대해 하는 말이다. 위안부운동은 출발부터 부정한 존재에 의해 부정한 의도로 시작된 잘못된 운동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위안부운동에 앞장 서 왔던 피해자들의 역할을 부정했었다. 위안부 운동에 있어 가장 상징적인 인물이던 김복동 할머니조차 사실은 자신의 의사가 아닌 정대협의 강요에 의해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며 이용당한 것 뿐이다. 그동안 수많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름으로 시작되고 진행되었던 상당한 성과까지 봤었던 모든 그동안의 활동들이 정대협의 일방적인 강요와 강제에 의한 왜곡과 조작으로 전락하고 만다. 피해자 자신들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제 3자일 정대협의 입장과 주장만이 강제된 것일 텐데 그런 활동에 새삼 무슨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일까? 차라리 할머니들을 강제로 끌고다니며 자신들의 입장만을 위해 이용했다면 마땅히 부정되고 단죄되어야 할 죄악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결론은 어떤가? 근로정신대문제의 해결에 위안부문제를 끼워넣는 바람에 오히려 해결만 더 어려워졌다. 일본정부는 벌써부터 사죄도 하고 배상도 하려 했는데 정대협이 근로정신대문제를 끼워넣고 일본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심만 드러내느라 여전히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오히려 문제의 해결을 훼방놓기만 하고 있다. 그래서 이용수씨의 편에서 주장하는 대부분이 이용수씨의 주장처럼 위안부운동을 근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할 게다. 그동안의 위안부운동이 잘못되었으니까. 그러니까 그 출발부터 과정은 물론 결과까지 모두 잘못된 위안부운동을 이제와서 계승할 의미가 과연 있기나 한 것인가.

무엇보다 정대협이 같은 위안부피해자임에도 무궁화회 피해자들과 갈라서서 온갖 비난을 들어야 했던 이유가 있었다. 같은 위안부 피해자임에도 정대협의 활동방향은 무궁화회에 속한 피해자들이 아닌 그 밖의 피해자들을 향하고 있었다.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 없는 보상은 의미가 없다. 보상조차 아닌 위로금은 더욱 받을 수 없다. 일본 정부 차원에서의 책임을 인정하는 배상이어야지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정대협이 시작한 것이 아니란 것이다. 오히려 당시 민간기금으로 조성한 아시아여성기금에서 위로금을 받기로 동의했던 피해자는 소수였었다. 아니 설사 다수였어도 진심어린 사죄와 반성보다, 배상금조차 아닌 위로금으로 만족하고 끝낼 수 있는 피해자들보다는 어렵더라도 배상을 받고자 하는 피해자들의 편에 서고자 했던 것이 바로 정대협이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정대협과 뜻을 함께하며 활동까지 같이 했던 피해자들이 얼마이고, 그 분들이 남기고 간 유지가 있을 텐데, 이제 와서 이용수씨의 한 마디에 그 모든 걸 포기하고 뒤집으라고? 한 마디로 늬들이 지금까지 한 일은 다 틀렸으니까 지금 와서 다 뒤집고 새로 시작하라? 누가? 무슨 자격으로?

그리 지금까지와 다른 위안부운동을 하고 싶으면 자기들끼리 나서서 하면 되는 것이다. 어차피 정의연도 나락이고 더이상 앞으로 위안부운동을 주도할 동력도 사라진 상태다. 누가 지금 이 지경에 놓인 정의연을 믿고 지지도 하고 기부도 하겠는가. 새삼 운동의 목적과 방향을 바꾼다고 해도 한 번 찍힌 낙인이 지워질 리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직 책임질만한 일을 아무것도 한 적 없는 늬들이 나서서 대신하면 되는 것이다. 쉼터도 대신 관리하고, 할머니들도 직접 보살피고, 운동방향이나 방법등도 직접 고민해서 구상하고, 그리고 국민들에게 지지도 호소한다. 딱 10년만 해봤으면 좋겠다. 그래도 정의연보다는 나을 것이다. 피해자가 수 백 명이던 시절부터 10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지금껏 운동을 지켜오고 이끌어 왔었다. 이제 남아계신 분도 몇 분 안 되는데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입바른 소리나 태연히 지껄여대는 그 정의감과 양심에 따르면.

이용수씨의 주장을 모두 인용해서 윤미향과 정의연을 공격하고는, 이용수씨의 주장대로 따르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그러면서 위안부 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헛소리와 함께 윤미향과 정의연에 대한 새로운 요구까지 더한다. 그래서 내가 어제 그런 글을 썼던 것이다. 시민이 벼슬이 아니다. 국민이 곧 시민단체에 채무자는 아닌 것이다. 자기들이 뭐라도 대단한 존재나 되는 듯 여긴다. 자기들이 그리 주장하면 시민단체는 당연히 따라야 한다. 모든 국민을 대신한 시민단체가 아니다. 정대협이 대신하던 시민들은 위안부문제가 돈이 아닌 보다 본질적인 역사와 인권의 문제로서 근본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라는 시민들이다. 그동안도 그렇게 위안부운동과 함께 정의연은 존재해 왔던 것이다. 주제도 모르는 놈들이 함부로 떠들 일이 아니란 것이다.

차라리 위안부운동 자체를 처음부터 부정하며 정의연의 해체를 주장하는 조중동과 보수진영이 더 일관되고 솔직하다 여길 정도로 자칭 진보, 자칭 중도, 자칭 개혁, 자칭 양심들 입에서 나오는 소리들이란 거의가 추악한 개소리들 뿐이다. 그나마 김민웅 정도가 쓸만한 소리를 했다. 내가 더이상 이용수씨에게 존칭을 붙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리 불만이 있어도 그 오랜 세월을 자신들의 곁에서 도우며 보살피며 함께 지낸 이를 뒤에서 칼을 꽂아 죽이는 행위까지 긍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은 의리가 있어야 한다. 인정이 있어야 한다. 심미자 할머니도 이렇게 등뒤에서 칼을 꽂고 헤집지는 않았었다. 사람이 죽었는데 과연 누구를 더 동정해야 할까?

새벽부터 잠도 오지 않는데 어디서 누가 헛소리 지껄인다기에 찾아가 보고 다시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다. 그러니까 정의연 해체하고 윤미향도 사퇴해야 한다니까. 자기 살 길 찾아 알아서 흩어지는 것이 옳다. 버텨봐야 상처만 입는다. 이용수씨가 전면에 나선 순간부터 지금 상황을 예상해 왔을 터다. 고마움을 모른다. 피해자든, 그들에게 모든 걸 맡기고 돈이나 조금 보내주던 대부분 시민들이든. 강한 사람들이기는 하다. 나라면 벌써 다 때려쳤을 것이다. 욕먹으면서까지 그 고생을 더는 못한다. 아니 시작도 못했을 것이다. 사람똥이 똥중에 제일 더럽다더만. 기분도 더러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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