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결혼해서 배우자가 있음에도 다른 이성과 바람이 났다. 개인 사이에 해결할 일이다. 개인적인 정의감이나 도덕관으로 비난을 할 수는 있지만 어찌되었거나 남의 일이고 개인이 알아서 어떤 식으로든 풀어갈 문제인 것이다. 한 순간의 실수라 여기고 그냥 봉합한 채 살 것인가, 아니면 배우자로서 신뢰를 저버린 이를 용서하지 않고 끝내 갈라설 것인가. 그래서 결국 어떤 식으로 용서하고 어떤 식으로 갈라서든 그러한 과정과 결론들이 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극히 미미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간통죄가 사라진 것이다. 개인의 문제를 국가가 나서서 강제할 수는 없다.

 

반면 수사기관에 의한 피의사실 유포와 언론의 사생활 파헤치기는 다수의 무고한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는 사회적인 문제인 것이다. 아직 혐의가 확정되지도 않은 피의자에 불과한데도 그를 다수의 기자들 앞에 세우고 단지 혐의에 지나지 않는 사실들을 공공연히 퍼뜨려 여론재판을 시도한다. 수사가 채 시작도 되기 전부터 언론에 의해 선입견을 만들고 다수 여론의 공격을 통해 당사자를 궁지로 내몰아 안에서부터 무너뜨리려 한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생활은 물론이고 주변까지 피폐해지는 경우를 그동안 수도 없이 보아 왔었다. 더구나 언론이라는 것들이 자기들이 직접 취재한 것도 아닌 누군가로부터 받은 일방적인 사실들을 진실인 양 보도하는 것은 언론이라는 권력을 이용한 폭력에 다름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피해자인 개인이 불륜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있으므로 그러한 행위들이 정당하다 말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바로 이런 것들을 두고 나오는 말이 인권감수성인 것이다. 인간의 존엄에 대한 기본적인 사고 자체가 가능한가, 아닌가? 내가 2찍 진보 새끼들을 진보가 아니라 단언하는 이유인 것이다. 진보를 자처하지만 정작 필요한 시점에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인간의 존엄을 시궁창에 내팽개쳐 버린다. 배우 이선균의 죽음에 진보를 떠들어대던 언론들도 한 몫 했던 사실을 기억하는 때문이다. 내가 손석희라는 나이만 쳐먹은 버러지새끼에게 결정적으로 혐오감을 가지게 된 계기였다. 단지 개인이 자신의 방어권을 행사하는 것마저 부정하는 그 행태를 보면서 너는 왜 검찰에 출석해서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반박했는가 물어보고 싶어진 것이다. 검찰이 의심하고 언론이 떠들면 그 순간 유죄인가?

 

아니나 다를까 관련인사들이 모여서 발표한 성명에 대해서도 태도들이 한결같다. 그래서 불륜을 잘했다는 것인가. 수사기관은 수사하고 언론은 보도한다. 행실이 발랐으면 언론이 무어라 보도하든 상관없지 않은가? 그런데 그렇게 보도한 사실들이 수사기관이 수사한 내용들인 것이고, 수사과정에서 흘러나온 것들이라는 게 문제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 수사기관은 비공개수사를 요청하는 피의자를 다시 한 번 기자들 앞에 세웠고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사실들을 흘림으로써 사회적인 비난을 유도하고 있었다. 개인의 잘잘못을 떠나 그것이 드러나고 여론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이와 같은 공적인 힘들이 쓰이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인가.

 

파시즘이 다른 게 파시즘이 아니다. 개인이 사라진 다수를 파시즘이라 부르는 것이다. 파시즘을 오히려 전근대의 유산이라 여기는 이유다. 근대의 가장 큰 발견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개인이기 때문이다. 오롯이 홀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개인의 존재야 말로 근대의 가장 큰 성과 가운데 하나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개인을 다시 민족이니 국가니 하는 전체에 매몰시키는 것이 바로 전체주의, 즉 파시즘이라 불리는 것이다. 다수가 저지르는 폭력에 무감각하다. 오히려 개인의 사소한 잘잘못에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것이야 말로 다수의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근거이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은 다수의 편에서 마음편하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런 놈들이 2찍을 선택하는 것이다. 배우 이선균의 죽음에 대해 연예관계자들이 나서서 발표한 성명에 반감을 드러내는 대부분이 그런 2찍들이었다. 2찍 진보 포함이다. 평소 그리 인권 떠들어대더니 이런 경우 그들은 철저히 권력의 편에 선다. 다수의 편에 선다.

 

마약으로 수사를 시작했으면 마약과 관련해서만 떠들어야 한다. 마약으로 수사를 시작해서 알게 된 개인의 사생활까지 퍼뜨리는 건 분명한 월권이다. 무엇보다 수사기관에는 개인이 누구와 사랑을 하든 관여할 어떤 권한도 주어지지 않았다. 언론은 취재를 하는 곳이지 받아쓰기 하는 곳이 아니다. 더구나 공적인 수사기관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위치에 있는 언론이 수사기관과 결탁해서 그들을 돕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결국 수사기관으로부터 혐의를 받는 개인과 주변을 무너뜨리고 재판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이라면. 그런 공적인 구조의 문제가 과연 개인의 사생활보다 가치가 없는 것인가.

 

이마저도 정치로 이해하는 버러지새끼들은 굳이 상대할 가치도 없다. 2찍이 어째서 2찍인가. 민주당 안에 있던 2찍들이 결국 이낙연을 따라 나간 것이 어째서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기쁘고 반가운 호재로 여겨지는 것인가. 인간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 새끼들은 인간으로 취급할 필요가 없다. 버러지는 버러지다. 내가 특히 2찍 진보들을 혐오하는 이유다. 차라리 2찍 수구들은 평소 하는 말과 행동이 같기라도 하지. 사람같지도 않은 것들이다. 저런 새끼들도 인간이라는 게 그저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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