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정기준은 세종이 만든 훈민정음에 대해 이렇게 일갈한다.

 

"백성은 어리석기에 무서운 것이다."

 

나 역시 일정부분 동의하는 바다. 임진왜란 당시 어떤 백성들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 전쟁에 대비한다고 자신을 노역에 동원했던 사실을 잊지 않고 자신을 괴롭힌 권력을 응징하기 위해 기꺼이 침략군의 편에 서고 있었다. 물론 침략군 또한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해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번에는 다시 입장을 바꿔 조선조정의 편에서 침략군과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 백성은 무서운 것이다. 의리도 염치도 신념도 정의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매번 선택을 달리할 수 있다.

 

백성이 임금을 알고 나라를 알고 도리를 알고 의리를 알고 정의를 알고 신념을 알고 가치를 알면 그리 매몰되고 마는 것이다. 임금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나라를 위해 가족까지 내팽개친다. 어린 자식마저 돌아보지 않고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겠다고 죽을 길로 떠나는 이들마저 있다. 숭고하지만 그래서 자신이 얻는 것이 무엇인가? 그래서 국가와 민족이란 것이 일개 백성인 자신을 위해 무엇을 얼마나 해 줄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위정자들은 그 국민과 민족을, 임금과 조정을 백성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서라도 선정을 베풀어야 하고, 그럼으로써만이 백성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정부와 권력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양보하고 희생하려 할 것이다. 바로 국가와 민족이, 정부와 권력이 자신에게 이익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일본놈들이 지배하는 식민지 조선은 조선의 백성들을 위해 조금도 이익이 되어 주지 않았다.

 

오래전 서프라이즈에서 놀던 당시 그런 글을 쓴 적이 있을 것이다. 냄비가 되자. 냄비가 되어야 한다. 냄비가 조리도구로서 유용한 이유는 그만큼 빨리 달구어지고 빨리 식기 때문이다. 그래서 냄비를 이용해서 다양한 요리들을 할 수 있다. 요리를 해서는 바로 식기로도 사용할 수 있다. 냄비가 유용한 이유는 쉽게 주어진 조건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권력이 얼마나 잘하든 한결같이 반대하고, 권력이 아무리 못해도 한결같이 지지하는 무쇠솥같은 국민이라면 새로운 무언가를 담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권력자들이 항상 더 새로운 더 이로운 것들을 궁리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을 그것을 담을 그릇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잘하면 국민은 반응한다. 내가 잘해주면 국민들은 바로 반응해 준다. 그래서 그런 국민들을 위해 더 잘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게 된다. 어제가 아닌 오늘을, 바로 지금을, 바로 지금 보이는 행동과 결과들만을 집중해서 오로지 판단하게 된다. 그런 국민이 영리한 국민이다. 그런 국민이 현명한 국민이다. 이기적인 국민이야 말로 권력을 항상 긴장하게 고민하게 노력하게 만든다.

 

이낙연에게 아직 기회가 없지 않다 말하는 이유인 것이다. 원래 민주당 지지층에서 이재명에 대한 비호감도가 매우 높았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절대 이재명만은 안된다. 이재명만은 지지할 수 없다. 차기 대선주자로 생각할 수조차 없다. 그래서 처음 이재명의 차기 대선주자로서의 지지율은 민주당 지지층이 아닌 민주당 밖의 보수층과 중도층으로부터 주로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가. 이제는 이낙연보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지지율이 훨씬 앞서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잘하고 있으니까. 그만큼 이전의 감정마저 깡그리 잊을 정도로 지지자들이 원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으니까. 지금 잘하면 과거의 일은 잊혀지는 것이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다수는 과거의 일따위 상관없이 지금만으로 판단한다. 그러니까 더 열심히 더 잘하려 노력하면 보상은 뒤따른다.

 

그러면 이낙연은 아닐 것인가. 그냥 나를 보면 되는 것이다. 바로 직전까지 개새끼 씹새끼 해가며 욕을 퍼붓다가 갑자기 다음 글에서는 그래도 대선주자로서 아직 희망이 있다며 낙관적인 소리들을 늘어놓는다. 문재인 대통령도 정치라고는 해 본 적 없는 신인이 노무현 후광으로 바람을 타고 있을 뿐이라고 비관적으로 보다가 사람이 괜찮은 것 같으니 바로 열성지지자로 뒤바뀐다. 원래 자칭 진보들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실체를 알고 혐오의 감정을 가지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잘하면 인정한다. 잘하는 것 같으면 지지한다. 그래서 진짜 잘한다 여겨지면 이명박근혜를 사면하든 말든 니 마음대로 하시라.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한결같은 지지란 없다. 영원한 반대 같은 것도 없다. 그러니 항상 긴장하고 삼가면서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낙연이 그런 민심의 무서움을 제대로 느끼고 깨달았다면 아마 이후 민주당의 행보에서 크게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깨달은 것이 없다면 이낙연은 딱 거기까지인 인물인 것이다. 실패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실패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무능하다는 것은 실패한 자체가 아닌 그 실패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항상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지게 되는 경우 더이상의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대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미 등돌린 사람들이야 벌써 다 끝난 듯 떠들겠지만 그들마저 다시 되돌려세울 수 있는 성과들을 보여 줄 수 있으면  아직 끝난 것이 아니란 것이다.

 

고관여층의 확신에 찬 주장들만 듣지 말라. 김어준이 아무리 대단해도 180석 의석의 여당을 이끌고 있는 것은 이낙연 자신인 것이다. 친민주성향의 스피커들이 아무리 대단해도 실제 민주당을 이끌고 성과를 내는 것은 당대표인 민주당인 것이다. 그들이 지지자들 사이에 영향력을 가지는 것은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지 그들이 특별히 더 잘나서가 아닌 것이다. 잘하면 된다. 결과로써 보여주면 다시 돌아온다. 단 하나 이낙연이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아직 나는 이낙연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았다. 잘만 한다면. 그리 쌍욕을 퍼부었는데 태세전환이 놀랍지 않은가. 내가 냄비라 그렇다. 무식하고 멍청해서 확고한 신념 같은 건 없다. 잘하면 인정한다. 잘해야 하는 사람이 잘해야 내게도 좋다는 사실 정도는 언제나 잘 알고 있다.

 

검찰개혁과 사법개혁과 언론개혁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어떤 모습으로 지지자들이 바라는대로 이루어지게 될 것인가. 이낙연이 차기 대통령이 되기 위해 지지를 구해야 하는 대상은 어디의 누구인가. 이재명으로부터 빼앗아 와야 할 자신의 핵심지지층은 어떤 사람들일 것인가. 만회하기 위해서는 더 큰 노력들이 필요하다. 승부수가 필요하다. 멍청하지만 않다면. 이래도 모르면 그것밖에 안되는 것이다. 칼날위에 서있다. 권력의 속성이다. 지켜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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