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유럽에서 군이란 곧 기사를 의미했다. 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기사에게 영지를 나누어 주고 대신 기사는 전쟁이 일어나면 무장을 하고 달려와 왕을 위해 싸우는 구조였었다. 전국시대 이전 중국도 다르지 않았고, 메이지유신 전까지 일본 또한 같은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문제는 아무리 제도가 그렇고 계약 또한 그와 같이 맺어져 있다 하더라도 결국 지키는 것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주나라의 유왕이 죽고 호경에서 낙양으로 도읍을 옮기며 춘추시대가 시작된 원인도 역시 견융이 쳐들어왔는데 정작 제후들이 군사를 이끌고 달려오지 않았기 때문 아니던가.

 

몽골이 쳐들어 왔을 때도 계약에 따라 제후들이 병사를 이끌고 모이기는 했지만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에 어떻게든 전쟁을 끝내야 했기에 참패를 당해야 했던 적도 있을 정도였다. 그나마 외부의 침략과 맞서는 경우라면 어느정도 제후들도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같은 제후를 징벌하는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원래 당대에만 지급되었던 영지가 세습으로 바뀌게 된 이유였다. 서로 이해가 맞아 떨어지다 보니 영지 반납 않는다고 정벌하려 해봐야 다른 제후들이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더 많았다. 심지어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는데 제후 자신의 이해에 따라 멋대로 봉신계약을 맺고 창을 거꾸로 드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하긴 일본 전국시대에도 이마가와나 다케다 같은 유력가문들조차 시세가 불리한 것 같으니 가신들이 모두 돌아서면서 어이없이 멸망하고 있기도 했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아무때고 왕이 필요하면 동원할 수 있었던 상비군이란 것이었다. 처음에는 용병이었고 근대 이후로는 국민개병제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국가 입장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대상은 국민 말고 없기 때문이다.

 

갑자기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확산되기 시작하면 정부 입장에서 어떻게해야 하겠는가. 예기치 못하게 자연재해가 발생해서 환자가 속출하고 있는데 민간병원과 의사들이 자발적으로 동원될 것만 기대하고 있어야 하는가. 이를테면 지난 2월 신천지 사태의 경우처럼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는데 민간 의료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이지 않으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민간병원의 보유한 병상을 활용하는 것도 그만큼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 바로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인력과 시설이 보다 많이 확보되어 있다면 어떻겠는가. 지난 2월 대구와 경북에서 시작된 코로나19의 확산에 홍준표가 폐쇄한 진주의료원을 아쉬워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래도 정부가 바로 지시해서 움직일 수 있는 군의료진과 공보의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가. 군간호학교 졸업생들은 졸업식을 마치고 바로 대구로 향하고 있었다. 정부 입장에서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필요할 때마다 민간의사와 병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기대하기보다 차라리 정부에서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공공의료진과 시설을 더 확보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모든 의사가 대구로 내려갔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의사가 코로나19의 방역에 협력했던 것도 아니었다. 당시 상황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의사협회가 어떤 식으로 코로나19를 수단삼아 정부를 공격하며 정치질을 하고 있었는지.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집단도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매우 정치적이고 의료를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집단이란 것이다. 코로나19로 하루가 시급한데 그런 의사들을 상대로 언제까지 협력을 구하며 그들의 동의를 끌어내려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고 있어야 하는가. 민간의사와 시설의 도움 없이도 정부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인력과 자원을 미리 확보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그래서 의대 정원을 늘리고 공공의대를 설립하겠다 정부가 방침을 정한 것이었다. 정부의 의지대로 일정 기간 동안 근무지까지 강제할 수 있는 정부의 통제 아래 놓일 의료인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조치인 것이다. 근대국가로서 너무 당연하다. 민간 의사들의 자유의지를 최대한 존중하려 한다면 그들과 별개로 정부가 임의로 움직일 수 있는 공공의료의 확충은 필수인 것이다. 그래서 뭐가 문제인가? 지금 의사들이 파업하는 자체에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지금 파업해야 정부가 의사인 자신들에게 양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코로나19로 국민들의 생명이 위협당하는 지금이어야 정부에서 마음대로 의사인 자신들을 무시하고 정책을 밀어붙이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정부의 방침대로 공공의료의 인력과 시설이 지금보다 확충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게 이해하면 되는 것이다. 정부의 입장과 의사들의 입장을.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져야 하는 정부와 그를 수단삼아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하는 이기적인 개인의 집합인 의사라는 존재에 대해서. 근대국가와 전근대국가의 차이인 것이다. 중앙집권이란 단순히 중앙권력의 강화만을 뜻하지 않는다. 중앙이 통제할 수 있는 체제 안에서의 모든 구성과 구조를 가리키는 의미인 것이다. 그래서 뭐가 문제인가? 봉건영주처럼 의사로서의 특권을 지키고 싶은 의사들의 욕심이 문제란 것이다. 코로나19로 위기이니 자신들에게 기회다. 딱 그대로. 전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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