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내가 병원을 안 다니긴 안 다닌다. 그것도 의원급 이상은 지난 30년 동안 맹장수술할 때 말고 가 본 적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낯설었다. 머리 깨져서 병원 갔는데 증상에 대해서는 한 마디 묻지도 않고 다짜고짜 CT부터 찍으라니. 그런데 CT 찍는 값도 30년 전 X레이 찍던 값 정도다. 역시 세상이 많이 좋아진 것일까? 

 

하긴 생각해보니 이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이란 언제나 실수할 수 있다. 나 자신이 증상에 대해 잘못 인식하고 있거나 혹은 무의식적으로 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숨기려 할 수도 있다. 사람의 말보다 확실한 건 주관이 개입될 수 없는 기계로 확인한 데이터인 것이다. 청진기도 필요없다. 문진도 필요없다. 대충 증상을 알았으면 대량생산으로 값도 싸진 정밀기기로 바로 검사하고 진단을 한다. 여기서 필요한 건 그렇게 출력한 데이터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대단한 천재성이 필요한 분야가 아닌 오랜 경험과 성격적인 치밀함과 성실함이 요구되는 부분일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아직 사람의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 아주 없지 않기는 하다. 어머니가 암수술을 했는데 X레이로 아주 찾기 어려운 부위의 암을 의사가 찾아낸 덕분에 조기에 수술하고 지금은 완치된 상태다. 하지만 그조차도 X레이로 이상을 감지하고 CT를 통해 확인한 경우였다. 아마 갈수록 그런 경향은 더 강해져서 사람은 단지 기계에 부속된 기사 정도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마저도 AI가 대체하게 되면 의사의 역할이란 심리적 정서적인 부분 말고 거의 남지 않게 되지 않을까. 그러려고 현대의 의학기술은 지금과 같이 고도로 발달하게 된 것이기도 할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야 대부분 진단이란 사람의 오감에 의지하는 바가 컸었다. 아주 오랜 경험을 가진 숙련된 의사가 남다른 의학적인 직관과 지식으로 사람의 병에 대해 판단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오진율도 높았다. 그러니까 남들보다 오진 적고 완치도 잘 시키는 의사를 명의라며 추앙하고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근대 이후 의학의 지식들이 보편적으로 공유되고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그같은 의사 개인에 의한 차이는 조금씩 좁혀지게 되었다. 예전에는 진짜 하늘이 내린 명의나 되어야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었던 병을 이제는 갓 수련의생활 마치고 전문의자격을 딴 의사도 첨단기계의 도움만 있으면 얼마든지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 진단과 치료를 위한 데이터는 광범위하게 네트워크에 의해 전세계적으로 공유되고 있다. 미국 어느 병원에서 어떤 방법으로 어떤 유형의 환자를 치료했다는 결과가 보고되면 바로 실시간으로 전세계의 의사들이 그 내용을 받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이다. 그러면 의사에게 필요한 자격이란 무엇인가.

 

의학만이 아니다. 아주 오래전에는 수 년 간의 훈련을 거치고서야 겨우 한 사람의 궁사가 만들어지고는 했었다. 아니 몇 년 정도가 아니라 아예 평생을 노력해서 무술을 갈고 닦으면 한 사람의 기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총은 훈련소에서 실제 단 며칠 몇 시간의 훈련만으로 얼마든지 총알이 허락하는 한 사람을 조준해서 죽일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나마도 화승총 시대에는 총을 장전하고 조준하는 것도 대단한 기술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그냥 총알 넣고 방아쇠만 당기면 어지간히 지능에 문제가 있지 않는 한 사람을 죽이는데 크게 지장이 없을 정도가 되어 있다. 그러라고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 아닌가 말이다. 건축가들도 불과 수 십 년 전까지 제도기 들고 낑낑대며 손으로 도면을 그려야 했지만 이제는 청사진이라는 게 뭔 말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인류 보편적인 정치체제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어지간하면 대부분 사람들이 별 무리없이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고보면 학력고사세대인 내 기준으로 의대 커트라인이 그렇게 넘보지 못할 정도로 높거나 하지 않았었다. 아마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당시 내 학력고사 성적으로 서울에 있는 의과대학에 지원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리 부모님이 재수하라 압력을 넣으셨었다. 당시 이과 커트라인 1위는 물리학과였고, 그 아래인가 아래아래인가에 의과대학이 있었다. 의대 못가서 물리학과 가는 게 아니라 물리학과 갈 점수가 안되어 의대 가던 시절인 것이다. 그러면 당시 의사들은 다 진료도 못할 허접쓰레기라는 것인가. 그런데 그때 의사 된 사람들이 지금 의대생 전공의들의 교수들이란 것이다.

 

아무튼 의사놈들의 별 거지같은 헛소리 때문에 아주 케케묵은 오랜 기억까지 다시 끄집어내고 말았다. 언제부터 의대가 그리 잘나갔다고. IMF 아니었다면 의대가 지금같지 않았다. 의약분업 이후 의사들이 파업으로 철밥통만 얻어내지 않았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에 병신은 차고 넘친다는 뜻이다. 저 새끼들 면허 어케 못하나? 짜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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