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주의자들이 자위를 위한 무장까지 항상 경계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결국 거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모든 전쟁의 시작은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지금 싸우면 내가 이길 수 있다. 지금 싸우지 않으면 오히려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그러니까 싸우자. 그저 조금만 인내하면 되는데. 조금 더 손해보고 조금 더 양보하면 아무 일 없을 텐데. 그런데 손에 들린 총과 칼이 그러지 못하게 부추긴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한 전쟁은 결국 누군가의 오판으로 끝나고 만다.

 

이를테면 2차세계대전 장시 일본의 선택도 비슷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조선? 어, 먹히네? 만주? 이것도 먹히네? 중국? 완전 좆밥이네. 그런데 미국이 더이상 전쟁을 하지 말란다. 저 새끼들도 한 번 손 봐줄까? 왜? 자기들에게는 항공모함도 있고, 전함도 있고, 전투기도 있고, 무엇보다 무적의 황군이 있었으니까. 미국같은 오합지졸들은 자기들이 한 번 힘을 보여주면 알아서 협상하려 나올 것이다. 그래서 감행한 것이 진주만 공습이었다. 그래도 협상을 않으려 하니 다시 미국에 타격을 주고자 했던 결과가 미드웨이 해전이었고. 결과는 모두가 아는 바와 같다.

 

윤석열의 패착은 조국에 대한 불확실한 첩보들을 근거로 너무 확신을 가지고 수사를 시작했다는 데에 있었다. 이 정도면 조국도 잡고 잘하면 정권까지 무너뜨릴 수 있겠다. 조국 하나만 목표로 삼았으면 될 것을 지나친 자신감이 처음부터 정권 전체를 목표로 계획을 세우게 만들었다. 아마 작년 김어준이 그토록 윤석열을 옹호하려 들었던 것은 그런 선택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가 나름 이해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병신이라도 검찰총장씩이나 되어서 그런 무모한 결정을 했을 것인가. 그런데 실제 그랬다. 이건 분명 권력형 비리다. 조국 뿐만 아니라 정권까지 날릴 수 있는 중대한 범죄다. 그래서 시작했는데 나온 게 뭔가? 괜히 정부와 여당에 검찰은 적이라는 인식만 심어주었지.

 

혹시라도 총선 직전 검찰 내부에 1월에 이미 인사조치된 윤석열의 측근들이 죄다 포진하고 있었을 경우를 떠올려 보라. 조국과 관련한 불확실한 의혹들이 작년 조국사태처럼 모든 언론들에 의해 총성을 바로 앞두고 한꺼번에 터져나온다. 나까지 흔들렸었는데. 이렇게까지 떠드는데 진짜 뭔가 있는 것 아닌가. 빠져나오는데 거의 한 달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어땠을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검찰과 언론이 유착하는 매커니즘만 들통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혹시나 싶다가도 설마하며 넘어갔던 그 유착의 고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말았다. 더불어 검찰이 어떤 식으로 보수권과 소통하고 있는가 그 방식과 통로 역시 들통나게 되었다. 아, 검찰은 이런 식으로 민주진영 인사들을 작업하는구나. 몰라서 당했지 알면서도 또 당할까. 그리고 1년 지금 검찰과 언론과 야당에는 무엇이 남았는가.

 

정보는 검찰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기업까지 포함하면 검찰의 정보력은 전체 가운데 높게 쳐 줘 봐야 다섯 번 째나 될까 의문이다. 검찰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막나가는 조직이 아니었던 이유다. 일단 경찰이 있고, 국정원도 있고, 기무사도 있다. 여기에 사기업으로 삼성은 이 모든 조직의 노후를 책임지는 곳이다. 굳이 정권 차원에서 지시하지 않더라도 정보는 항상 권력을 쫓아 이동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더구나 검찰에 앙심을 품은 이들이 또 여기저기 얼마나 많게? 그렇다고 검찰이 하나인가? 역시 윤석열이 저지른 또 하나의 패착이다. 자기 측근들만 너무 챙긴 나머지 자기가 속한 특수부 이외에는 모두 적으로 돌리고 말았다. 아무리 그래도 검찰 요직 가운데 특수통 말고 부처 검사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는게 말이 되는가. 추미애가 일방적으로 윤석열에게 불리한 인사를 했어도 검찰이 조용했던 이유였다. 이제야 제 자리를 찾아간다. 윤석열도 결국 자기들 편은 아니다. 윤석열이 다시 힘을 얻으면 예전으로 돌아가게 되고 마는 것이다.

 

결론은 다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모르고 임명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어째서 윤석열이었는가? 첫째는 지난 정권에서의 적폐들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윤석열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와 지지가 매우 높았다는 것이었다. 윤석열이라면 이번이 아니더라도 다음에는 반드시 검찰총장이 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이들이 심지어 여당 지지자 가운데서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둘째 그러면서도 한계가 명확했다.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가는 문무일과 달리 이 정도면 얼마든지 나중에라도 정부와 여당에서 컨트롤할 수 있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어차피 검찰이란 다 거기서 거기다. 누가 검찰총장이 되든 결과가 달라지지 않을 것이면 차라리 약점 많고 만일의 경우 통제가능한 인물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다만 여기서도 설마 이렇게 미친 놈일 것이란 생각까지는 못했을 것이다. 합리적으로 아무리 아직 임기도 절반 넘게 남은 정부를 상대로 벌써부터 칼을 꺼내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 말이 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기껏 검사장이나 할 만한 인물에게 너무 큰 힘을 쥐어 준 것이 원인일 것이다. 유시민 이사장의 분석이 맞다. 검찰총장은 검찰총장 나름의 정권을 상대하는 방식이 있었을 텐데, 그런 식으로 조국을 타겟으로 사냥을 벌이는 것은 한동훈 정도에서 했어야 할 일이지 검찰총장까지 직접 나서야 할 사안이 아니었다. 검찰이 가진 모든 힘을 드러내가며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럴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국 전장관이 너무나 잘 버텨주었고, 정권의 지지율 역시 일정 이하로는 떨어지지 않으며 견고하게 유지되었기에 어쩔 수 없이 바닥까지 끄집어내어 승부수를 걸어야 했던 것이었다. 이를테면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진주만 공습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다시 미드웨이에서 한 방 크게 벌여 보려다가 오히려 괴멸되고 말았던 것이 이번 라임 옵티머스 수사조작 게이트인 것이고.

 

다 털렸다. 다 끄집어내져 버렸다. 윤석열이란 어떤 인물인지. 윤석열 자신과 주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윤석열 혼자만 털렸으면 모르겠는데 검찰조직의 그동안의 관행과 악폐들이 모두 까발려져 버리고 말았다. 바로 언론이 그동안 검찰과 합심하여 묻어 온 것들이었다. 라임 옵티머스 사건에 대해서 검찰은 비판하면서 언론은 쏙 빼 놓는 경향이나 한겨레가 그래서 얼마나 역겨운 것인지. 정의당도 모르긴 몰라도 상당히 연루되어 있었을 것이다. 아닐 리 없다. 아무것도 없이 심상정이 감히 지난 2월 공개적으로 대통령 탄핵까지 입에 올렸겠는가. 대통령 탄핵은 윤석열의 목표였었다. 그래서 지금 윤석열은 물론 과거의 적폐 검사들에게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가.

 

확실히 아무리 봐도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꼬라지가 딱 지금 윤석열의 꼬라지다. 덕분에 지금 국민의힘도 정부의 약점을 헤집으며 집요하게 파들어가는 검찰만 믿고 있다 지금 저 모양이 되어 있지 않은가. 검찰만 아니었어도 국민의힘 역시 자신들의 이념과 정책으로 정당하게 정부와 여당과 경쟁하려 했었을 것이다. 총선 전까지만 해도 그럴만한 충분한 역량이 아직 국민의힘에는 남아 있었다. 그런데 윤석열 하나만 바라보고 정치공세만 일삼다가 역시 바닥만 드러내 보이고 말았다. 그러게 차라리 총선 앞두고, 아니면 조금 더 여유를 두고 임기가 끝날 때 쯤 레임덕을 노려서 일을 벌였으면 어땠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최적의 인사였다는 것이다. 검찰 중에도 이런 멍청한 - 그런데 보면 윤석열 혼자만의 판단이 아니라 측근들의 조언까지 종합한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법공부하다가 뇌가 멈춰버린 모양이다.

 

철저히 우위에서 약자를 상대로 윽박지르며 수사하는데만 익숙하다. 역시나 중앙에서 벗어나 주변을 전전하다 겨우 복귀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항상 강자를 상대로 눈치를 살피며 그 약점을 찾는 그 치밀함과 정교함을 배우지 못했다. 숙일 때는 숙이고, 굽힐 때는 굽히고, 넘어갈 때는 넘어가 주고, 약해질 때는 약해지는, 선배 검찰들이 보인 그 교묘한 수단들을 직접 보고 듣고 느끼며 깨닫지 못했었다. 그래서 다행이란 것이다. 적이 멍청할 때 아군은 몇 배의 힘을 얻게 된다. 설마 이렇게까지 한 순간에 모든 것이 까발려질 것이라고는. 라임 옵티머스 역시 윤석열 자신과 가족과 연루된 사건이었다. 오히려 역공으로 더 큰 위기로 내몰린다.

 

그래서 차라리 다행이라는 것이다. 조금만 더 머리가 있는 인물이었다면. 그래서 조금 더 세심하게 주의깊게 때를 기다릴 줄 알았다면. 그래서 여전히 지지자들조차 그를 자신들의 편이라 여기고 있었더라면. 그러나 바로 본색을 드러냈고, 자신들과 연결된 주위까지 모두 드러내 보이고 말았다. 그러고도 비교도 할 수 없이 거대하고 강력한 정부의 숨통을 끊지 못한 순간 결과는 예정된 것이었다. 이미 울산시장선거를 끄집어낸 순간부터 실패는 예정된 것이었다. 그런 윤석열에게 모든 걸 걸었던 언론과 정치권의 무지에 찬사를 보낼 밖에.

 

그야말로 한순간이다.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양 한 번에 모든 걸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고도 전부가 아니라는 인상이다. 추미애 장관마저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수사지휘를 하고 있었다. 싸움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새삼 문재인 대통령이 무서워지는 이유다. 원래 그러려고 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정석이기 때문이다. 묘수는 정수로 받는다. 바로 몇 달 전에도 내가 문재인 대통령과 관련해서 했던 말인 듯하다. 싸움은 끝났다. 이기고 나니 말만 많아진다. 기분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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