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야당에서 차기를 노릴만한 거물이 등장하는 것은 정부에 대한 공격을 주도하면서 그것을 차기를 위한 새로운 아젠다로 이어갈 때인 것이다. 즉 자기 논리와 주장으로 정부를 비판하면서 한 편으로 그 비판을 새로운 정책에 대한 대안으로 이어갈 수 있을 때 그는 차기를 노릴만한 인물로 대중들에 각인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국민의힘은 어떤가.

 

윤석열이 국민의힘 지지자들의 지지까지 다 빨아들이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 그동안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가장 악랄하게 치명적이고 효과적으로 문재인 정부를 공격해 온 것은 다름아닌 윤석열 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그저 편하게 그런 윤석열의 난동에 편승했을 뿐이었다. 윤석열이 검찰과 언론을 이용해서 한바탕 정부와 여당을 휘저어주면 그보다 한 발 늦게 국회에서 국민의힘이 정부와 여당에 대한 비판을 내놓는다. 그래서 어떤가. 지금 야권 대선후보 가운데 윤석열을 제외하고 주목받는 사람이 비슷하게라도 보이기는 하는가.

 

그래서 곤란한 것이다. 일단 윤석열은 국민의힘 소속이 아니다. 국민의힘의 이념이나 강령에 동의하는 존재가 아니란 뜻이다. 지금은 반문재인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손잡고 있지만 윤석열은 국민의힘이 아닌 오로지 검찰이라는 조직만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검찰주의자다. 자칫 윤석열이 대선후보가 되거나 하면 국민의힘은 검찰에 완전히 먹혀 버릴 수 있다.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검찰을 어르고 달래느라 얼마나 힘을 쏟았었는데. 그렇다고 윤석열 빼고 국민의힘에서 대선후보를 찾으려니 사람이 없다. 사람이 있어도 대중이 알지 못한다. 심지어 국민의힘에 힘을 실어주어야 할 보수언론마저 반문재인을 위해 윤석열에 올인하는 상황이니 어떻게 해도 답이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 국민의힘의 딜레마일 것이다. 최선은 대선정국이 시작될 때 쯤 윤석열이 자연스럽게 빠져주는 것일 터다. 그런데 그 전에도 문재인 정부와 여당에 대한 강고한 40%대의 지지율을 더 흔들기 위해서는 윤석열이 더 설쳐주어야 한다. 추미애 장관의 직무정지 처분에 국민의힘의 반응이 상당히 뜨뜻미지근한 이유인 것이다. 부당한 조치라고 비판하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썩 윤석열을 싸고 도는 것 같지는 않다. 차라리 필사적이라면 정의당일 것이다. 정의당은 윤석열 하나 바라보고 반문재인 코인을 탔다고 봐야 할 텐데 윤석열 나가리 되면 류호정을 대선후보로 내보내야 할 상황이다.

 

아무튼 당의 역량이 아닌 외부의 인사에 기댄 반정부활동의 결과인 것이다. 당의 역량을 강화해서 실력으로 정부와 겨루려 하기보다 정부에 반대하는 외부의 역량에 너무 기대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차라리 국민의힘이 윤석열을 영입하는 것이 아닌 윤석열이 국민의힘을 흡수하는 그림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게 다 황교안이 장외투쟁에 맛들려 자유한국당의 재정을 고갈시킨 덕분이란 것이다. 돈이 없으니 사람이 없고 사람이 없으니 실력도 안되고 그런데 윤석열이 나서주니 아이고 고맙습니다. 그게 결국 자기들에게 독이 될 줄도 모르고.

 

더구나 어찌되었거나 윤석열이 국민의힘을 흡수하든 어찌됐든 대선후보로 나온다면 당선될 가능성이 있는가. 안철수가 가지고 있던 딜레마 가운데 하나다. 중도층 중에는 민주당도 싫지만 보수당은 더 싫은 사람들이 적잖이 존재한다. 민주당 하는 꼴 보기는 싫은데 보수당은 더 싫은 사람들이 어느 정당에도 속하지 않은 이들을 습관적으로 지지해 온 것이다. 과연 이들이 문재인 정부를 공격한다는 이유로 윤석열을 지지하면서 국민의힘 소속 후보로 나오는 것도 용인할 것인가.

 

그나마 지금 국민의힘에서 머리 좀 쓴다는 사람은 김종인 한 사람 밖에 남지 않은 것 같다. 지금 국민의힘 안에서도 윤석열 편에서 발언하는 놈들은 원래 친검인사들이었고. 그래도 보수당이면 엘리트집단이라는 인상이 있었는데 그것도 이제 옛말이 된 것 같다. 능력도 없고, 비전도 없고, 자존심도, 당에 대한 자부심도 찾아볼 수 없다. 애잔하기조차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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