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란 정의와 폭력의 합성어다. 정의는 강력해야 하고, 폭력은 정의로워야 한다. 폭력은 정의가 아닌 것조차 정의로 만들 수 있고, 정의는 폭력에 대해 감히 거스를 수 없는 명분과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래서 권력인 것이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틀어지면 그 순간 권력은 붕괴하게 된다. 폭력이 정의를 뒷받침하지 못하거나, 정의가 폭력을 정당화하지 못할 때 권력은 안팎으로 균열을 일으키며 끝내 허물어지고 마는 것이다.

 

언론과 검찰이 공생해 온 관계가 그랬었다. 물론 전부터도 언론은 그런 식으로 권력에 빌붙어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해 오고 있었다. 언론이 떠들면 진실이 된다. 모든 언론이 하나가 되어 떠들기 시작하면 그 자체로 정의가 되어 버린다. 권력이 이미 저질러 놓은 행동들이 그렇게 언론에 의해 정당화되고, 다시 언론이 떠드는 소리들을 권력이 받아 행동으로 옮기면 정의는 구현되는 것이다. 권력이 언론을 필요로 하는 이유이며 언론이 권력에 기생해야 하는 이유다. 그럼으로써 언론은 자신들의 정의를 현실로 만들 힘을 가지고, 권력은 자신들의 모든 행위를 정의로 만들 수단을 갖는다. 그래서 특히 언론과 검찰 모두에 대한 통제를 놓아 버린 민주정부에서 언론과 검찰의 유착은 폭주를 넘어서는 것이다.

 

언론이 떠들면 검찰이 수사한다. 언론이 한 목소리로 떠들면 검찰이 기소해서 재판에 넘긴다. 재판결과는 상관없다. 재판에 넘긴 그 순간까지만 언론은 관심이 있을 뿐이다. 재판에 넘겨진다는 자체가 유죄심증이라는 논리를 언론 스스로 만들어낸다. 그리고 검찰이 수사하면 언론은 그 수사를 정의로 만들기 위해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그래서 검찰의 수사는 항상 옳고, 언론의 보도는 검찰의 수사를 통해 입증된다. 그런 언론과 검찰의 협업을 통해 현직 대통령을 탄핵으로 끌어내리고 정권교체까지 이루었을 때 그들의 자신감과 자부심은 그 끝을 모를 지경이었을 것이다. 자신들이 지금처럼 손잡고 함께 한다면 대통령이고 정권이고 그저 우스울 뿐이다. 그리고 하필 그 순간 그 중심에 있던 인물이 윤석열이었다는 사실이 지금 상황까지 만들고 만 것이었다.

 

바로 그 윤석열과 손잡고 언론은 박근혜를 끌어내렸다는 것이다. 다만 문재인의 집권을 막는데는 실패했었다. 윤석열이 검찰총장이 되고 가장 먼저 한 것이 바로 그 문재인을 치는 것이었다. 한겨레와 경향이 정신줄 놓고 쫓아 달려갔던 이유였다. KBS가 인터뷰까지 왜곡해가며 검찰을 지원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문재인의 집권은 막지 못했지만 다시 한 번 윤석열과 함께 문재인을 끌어내릴 수 있으면, 나아가 노무현처럼 만들 수만 있다면 자신들은 다시 한 번 자신들의 정의를 입증해 보이는 것이다. 그럴 힘이 검찰총장이 된 윤석열에게 있었고, 그 힘의 사용을 정당하게 만들어 줄 힘 또한 언론인 자신들에게 있었다. 그러므로 자신들은 대통령마저도, 정권마저도 우습게 여기는 정말 특별한 존재들이다.

 

감히 언론 나부랭이가 소비자인 시민들을 서슴지 않고 비웃고 모욕할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심지어 언론사를 정상화겠다고 파업하며 시민들의 지지를 호소했던 그들마저 정작 자신들이 원한 결과를 얻어내고 가장 먼저 한 짓거리가 자신들을 지지했던 시민들을 정치적으로 편향된 대상으로 낙인찍는 것이었다. 필요할 때는 지지를 호소하지만 일단 얻을 것을 얻고 나면 오히려 더 비천하고 누추한 존재로 경멸하고 무시하는 것이다. 이제 자신들이 검찰과 손잡고 실제 이 사회를 좌지우지할 힘을 가지게 되었다. 더이상 시민들따위의 도움 없이 검찰의 도움을 받아 자신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기사를 통해 오보를 내고 그를 가지고 검찰에 수사받고 재판까지 받게 하면 되는 것이다. 재판결과가 나오는 동안 자신들이 만든 이미지가 그들을 정의하게 된다. 그런데 그깟 시민들따위.

 

한동훈이 저토록 오만할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한 번도 제대로 수사에 협조한 적이 없었다. 같은 검찰이면서 검찰의 수사를 불신하며 모욕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래도 언론이 자기가 말한 대로 써 줄 것을 알고 있으니까. 언론에 의해 자기의 말만이 진실로 전해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동훈의 의도 그대로 MBC를 제외한 모든 언론들이 한동훈의 무죄를 주장하며 그 수사 자체마저 부정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 중이다. 다만 여기서 고리 하나가 빠진다. 그런데 언론이 떠든다고 한동훈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추미애가 지금 검찰인사를 미루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이성윤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허튼 짓 말고 제대로 수사하라. 인사권은 법무부장관에게 있다. 윤석열이 뭘 어쩌든 검찰의 모든 인사는 추미애 법무부장관에 의해 결정된다. 무엇보다 더이상 국민들이 전처럼 언론의 보도를 신뢰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정치권마저도 이제는 언론의 보도를 그냥 반만 흘려듣는 정도다. 언론이 떠든다고 정의가 아니다. 더구나 언론이 아무리 정의를 주장해도 검찰은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어떤 수단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인사를 앞두고 과연 자기를 따르는 일선검사들도 적지 않을 이성윤이 법무부장관과 척질 결정을 할 수 있을까. 한동훈이나 언론이나 여전히 오만하지만 현실은 그를 따라주지 않는다.

 

윤석열이 뜬금없이 진짜 민주주의 이야기를 끄집어 낸 이유이기도 하다. 검찰총장과 대통령은 같다. 검찰청과 청와대는 같다. 언론과 정부는 같다. 시민과 기자도 같다. 사실 나름대로 절박하게 현실을 인정하는 선언이기도 하다. 원래는 검찰총장이 대통령 위에 있었다. 언론이 시민보다 위에 있었다. 그러니까 건들지 말라. 괴롭히지 말라. 그를 위해서 자기가 권력을 가져야겠다. 자기가 저 위에 올라가야겠다. 언론이 도와달라. 아니나 다를까. MBC가 검찰에 맺힌 것이 진짜 많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MBC만 그런 윤석열에게 한결같이 비판적이다. 우리가 이 나라를 가지자. 이 나라 대한민국을 가지자. 보수 정치권을 향한 메시지가 아니다. 언론을 향한 메시지다. 다만 언론의 주류가 보수언론이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보이는 것 뿐이다. 윤석열이 진짜 이재용 잡고 싶어서 그를 기소하려 했었겠는가.

 

그런 점에서 지금 조국 전장관이 하고 있는 일들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언론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인사권을 법무부장관이 돌려받으며 검찰총장의 장악력이 전과 같지 않은 상황에 결정적으로 검찰을 통해 언론을 처벌하는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다. 워낙 작년 이른바 조국사태를 국가적인 규모로 키워 놓은 탓에 조국 전장관의 그런 행보를 아무리 언론이라고 무시하기가 쉽지 않다. 현행법 안에서 검찰을 통해 형사처벌을 받게 하고 민사를 통해 손해배상까지 하도록 한다. 검찰이 언론을 지켜주기 위해서는 다시 언론의 비판에 직면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검언유착으로 인해 한껏 무리수를 두고 있는 상황에 기자들을 기소하지 않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기자들이 검찰의 수사와 기소를 그대로 앉아서 당하고만 있을 것인가.

 

검언유착 수사에도 변수가 되어 줄 수 있는 것이다. 이동재 혼자 모든 것을 뒤집어쓰려 해도 과연 검찰을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윤석열 검찰과 채널A를 믿을 수 있을 것인가. 그 신뢰의 고리를 깬다. 검찰과 언론의 오랜 유착관계에 균열을 일으킨다. 검찰의 행사를 언론이 훼방놓고, 언론의 보도를 검찰이 부정한다. 벌써부터 정의연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언론의 잇딴 기사삭제와 정정보도로 난관에 처해 있다. 더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 언론이 책임지거나 아니면 검찰이 책임지거나. 물론 검찰은 언론을 위해 자기가 희생할 조직이 아닌 것이다.

 

사실 어느 한 쪽만 허물어도 되는 문제이기는 했었다. 검찰이 언론의 칼이 되어 주거나, 언론이 검찰의 거울이 되어 주는 경우만 막아도 검찰 혼자, 혹은 언론 혼자 지금처럼 미쳐 날뛰는 상황은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을 죽이고 현직 대통령까지 탄핵하고 나니 무서울 것 없이 날뛰던 검찰과 언론이 마침내 천적을 만났다. 문재인이 아니다. 문재인을 중심으로 언론도 검찰도 믿지 않고 굳게 뭉친 과반에 가까운 시민들이다. 그들이 언론과 검찰의 훼방에도 민주당의 176석을 만들었고, 조국 전장관과 정의연이 반격에 나설 환경까지 만들어 주었다. 결국은 언론과 검찰의 힘이라는 것도 민주주의 국가이기에 시민들로부터 나오는 것이었을 텐데도.

 

정신을 차리면 살아남고 아니면 죽는다. 과연 몇이나 살아남을까. 이성윤이 야망이 있다면 아마 여기서 윤석열과 다른 행보를 걸으려 할 것이다. 검찰총장도 좋지만 대법관도 바라는 것이 바로 국회의원 배지라는 것이다. 검찰총장을 거쳐서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하다. 언론 가운데서는 어디가 살아남을까. 한겨레와 경향이 망할 것은 알겠다. 조중동이야 원래 독자들이 그런 성향들이었다. 시대의 종말을 본다. 흥미로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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