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 유럽의 귀족들은 그야말로 다양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들였다. 영지가 있으면 당연히 영민으로부터 세금을 거둘 테고, 가진 돈으로 고리대를 놓거나, 혹은 상인과 결탁해서 매점매석으로 폭리를 취하거나, 그러다가 아예 돈을 못 갚는 사람이 나오면 인신매매까지 했었다. 하긴 어디 영주는 징병으로 병사 모아서 전쟁에 용병으로 보내 돈을 벌기도 했다더만. 그리고는 그렇게 번 돈으로 자신의 관용과 자비심을 과시하기 위해 빈민을 위한 병원이나 급식소, 고아원등을 지어 도움을 주려는 이들도 제법 있었다. 묻는다. 어차피 평민들 등쳐서 돈버는 건 같은데 누구는 사치에 돈을 쓰고 누구는 자선에 돈을 쓴다면 누가 더 훌륭한가?

 

카네기가 돈 버는 방식을 두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비판하기는 하지만 카네기 뿐만 아니라 지금 아마존의 베조스가 하는 짓도 카네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동시대에도 많은 사업가들이 카네기와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노동자를 착취하고 경쟁자를 말살해가며 막대한 돈을 벌었을 것이다. 하긴 그 당시 그 정도 돈을 벌려면 그정도 악하고 독하고 비열하고 잔인하지 않으면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째서 지금 많은 사람들이 카네기라는 이름을 다른 의미로 기억하고 있는가. 그래서 돈 버는 방식이 잘못되었으니 카네기가 자신의 재산으로 세운 재단이며 그 재단이 인류사회에 기여한 모든 공은 사라진 것이 되는가?

 

빌 게이츠가 절대 선인이 아니다. 워렌 버핏 역시 마찬가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은 빌 게이츠 시절에도 많은 비판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선행을 하겠다고 자신의 이익을 포기했다면 지금의 마이크로소프트가 있겠는가. 그런데 정작 그 마이크로소프트를 만들고 창업자로서 막대한 재산과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으니 그를 이용해서 인류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자 한다. 그러면 좋은 것이다. 결국 빌 게이츠가 어떻게 모았든 그 재산과 영향력으로 인해 인류사회는 좋은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 기여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이 과연 있기는 할까?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것을 위선이라 할지도 모르지만 위선이면 어떤가? 부정축재로 막대한 재산을 모았어도 기근이 들었을 때 가난한 이들을 위해 풀죽이나마 베풀면 그 위선조차 고마울 수 있는 것이다. 그마저 않는 사람들이 그토록 많다면.

 

위선도 선이다. 소작료를 올려받아 재산을 만들고, 그 재산으로 고리대를 놓아 빚으로 자영농들의 땅을 빼앗고, 빚을 갚지 못한 이들의 가족을 노비로 끌고가서 부리더라도, 그러나 어차피 모두가 그러는 것 여기에 더해 흉년이 들면 소작료를 그나마 낮춰주고, 굶주리는 이가 있으면 곳간을 헐어 식량을 나누고, 병든 이가 있으면 의원을 부르고 약을 풀어 고쳐주려 애쓴다. 이른바 도덕적인 지배라는 것이다. 지주이고, 당연히 소작농들을 착취하는 위치에 있지만, 그래서 그 소작농들을 아무렇지 않게 노예로 노비로 만들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들의 지배자로서 자신의 도덕적 의무를 방기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차라리 그런 위선을 보이지 않아도 되도록 지주와 소작농을 완전히 분리한 일제강점기 소작농의 처지는 어떠했었는가. 어느 쪽이 더 나을까? 똑같은 지주인데 한 쪽은 그나마 알량한 위선이라도 보여주고, 한 쪽은 그조차도 없다.

 

인류의 역사는 어쩌면 그런 위선을 통해 발전해 왔을 것이다. 똑같이 노예를 소유하고 부리면서도 그나마 노예가 조금이라도 덜 고통받으며 덜 힘들게 더 편하게 자신의 삶을 지키며 살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이들이 나온다. 그리스와 다른 로마의 노예제는 그런 위선들이 결합한 결과였을 것이다. 자기 재산도 가질 수 있고, 유산도 상속할 수 있으며, 단지 시민으로서의 권리만 제약받을 뿐이었다. 남북전쟁이 끝나고서도 그런 위선자의 소유였던 노예들은 차라리 자유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버거웠었다. 그런데도 말한다. 어차피 노예를 부리는 것은 같으니 위선따위 떨지 말고 채찍질하고 고문하고 학대하라. 그런 위악자들을 찬양한다.

 

지금 국민의힘과 민주당을 향한 언론의 태도인 것이다. 그래도 변호사인데 오십줄 넘어서 자기 집 하나 건물 하나 없을 리 없다. 임차인들을 보호하는 법을 만들면 자기도 손해를 보는 것이다. 다주택자들의 이익을 제한하는 제도를 만들면 역시 다주택자인 자신도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예 집을 두 채 갖지 말라. 아니 집을 가지지도 말라. 비싼 집은 아예 사지도 말라. 돈도 벌지 말라. 아니면 위선이다. 그보다는 차라리 대놓고 다주택자에 마음대로 임대료를 올려도 되는 국민의힘의 위악을 솔직하다 정직하다 찬양한다. 그래서 과연 이 사회는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흘러가게 될 것인가. 민주당의 위선을 거부하고 국민의힘의 솔직함을 선택했을 때 대한민국 사회는 어떤 방향으로 나가게 될 것인가? 그나마 임차인들을 보호하려는 민주당의 행동을 임대인으로서의 권리를 앞세워 위선으로 치부하며 부정했을 때 임차인의 권리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임대료의 인상을 제한하는 법은 과연 임차인과 임대인 누구를 위한 것인가?

 

자칭 진보에 분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분노보다는 경멸과 혐오다.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법을 만든 민주당의 위선과 그 법에 반대한 국민의힘의 위악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진보적 가치에 부합하는가. 그런데도 법에 반대했으니 국민의힘의 임대료인상은 오히려 칭찬하면서 민주당 소속의 임대료 인상은 내로남불이라며 비난한다. 그러니까 하지 말까? 그냥 노동자며 임차인이며 사회적 소수자 약자들을 위한 어떤 행동도 하지 말아야 할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이유다. 더 선한 행동을 했는데 같은 비난을 받는다면, 아니 오히려 더 큰 비난을 받는다면 누구도 선한 행동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선한 행동을 했으니 더 엄격해지고, 선하지 않으니 더 관대해진다면 누가 더 선해지려 할 것인가? 지금 자칭 진보가 하는 짓거리다. 자기들 성에 차지 않으니 차라리 국민의힘이 더 낫다.

 

용산참사도, 장애인차별도, 소수자차별도, 직권을 이용한 부정과 비리도, 거짓말도, 그러나 원래 선한 척 한 적 없으니 솔직한 것이다. 정직한 것이다. 그로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스스로 선한 척 정의로운 척 하던 민주당의 임대료인상이야 말로 더 큰 문제다. 위선은 악이 아니다. 꾸몄어도 그것은 선이다. 트럭에 철판을 두르고 대포만 올렸어도 자주포로 쓴다면 그건 자주포인 것이다. 위악이 악이다. 악을 감추려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악이다. 그 악을 선이라 외치고 있는 중이란 것이다. 언론이나 자칭 진보들이나. 순수한 선이 없다면 차라리 불순한 선이라도 더 낫다. 그게 사회가 진보하는 방식이었다. 쓰레기는 쓰레기장으로. 벌레는 똥통으로. 인간은 인간으로. 더러운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