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어, 일어났나?"

"어, 고든?"


아마 별다른 일이 없다면 그 사이 200년의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그러나 200년만에 만나는 고든의 얼굴은 15초 전에 보았던 그대로일 뿐이었다.


"이래서야 원 잔 것 같지도 않군."

"흐흐흐... 그렇지?"


무려 1091년에 걸친 원정이었다. 그러나 실제 원정에 자원한 승무원들이 인식하는 시간은 고작 일주일 정도에 불과했다. 200년마다 한 번씩 번갈아 깨워서 데이터로 추출한 의식의 상태를 점검하면 그때나 겨우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는 때문이었다. 그마저도 매번 데이터형태의 의식을 완벽하게 이식하기 위해서 이전의 몸과 똑같이 완벽하게 몸을 구성해서 준비해 놓기 때문에 어색같은 것은 느낄 수 없었다. 바로 어제, 아니 바로 의식이 추출되기 직전에서 눈만 잠시 감았다 뜬 듯한 기분이었다.


"별다른 건 없지?"

"그거야 에고가 알아서 처리할 일이고..."

"하긴..."


사실 우주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었다. 최소단위가 수십년이었다. 조금만 거리가 멀어지면 수백년은 기본으로 넘어갔다. 인간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시간이었다. 몸은 견딜 수 있을지 몰라도 정신이 견지디 못했다. 


그래서 전쟁도 원래는 인간이 아닌 컴퓨터가 도맡아 했다. 인간이 필요한 것은 그럼에도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인간이어야 한다는 오래된 원칙 때문이었다.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원정을 위한 우주선에 탑승하고 있는 인원도 실제 전투원이라기보다는 전투가 끝난 뒤 점령하고 지배하는 행정적인 절차를 수행할 이들이었다. 기본적인 무기조차 한 번도 다루어 본 적 없는 이들이 그래서 절반을 넘고 있었다.


"얼마나 남았지?"

"121년."

"금방이네?"

"네 번 째니까."

"아, 그렇지."

"자각이 없네."

"아아..."


주위를 둘러봐도 어차피 하얀 벽 말고 보이는 것은 없었다. 흔한 창문조차 없었다. 어차피 깨어있는 시간이라고 해봐야 하루 정도이니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장식 같은 것도 전혀라 해도 좋을 정도로 필요치 않았다. 바깥풍경을 보고 싶어도 수십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그대로인 막막한 검은 공간을 계속 지켜보고 있는 것도 보통의 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냥 깨어나서 잠시 수다나 떨다가 그런 자신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컴퓨터가 상태를 최종적으로 점검하고 나면 다시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데이터로 돌아가 컴퓨터에 저장되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었다.


"미친 짓이야."

"당연히 미친 짓이지."

"도대체 나는 왜 이런 미친 짓에 자원한 거지?"

"인간이니까."

"아아..."


자원하면서도 항상 회의하고 있었다. 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무려 1091년이다. 그나마 공간도약이라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시간이 절반으로 줄었다. 이 넓은 우주에서 인간이 살 수 있는 조건의 행성을 찾기 위해서는 그 정도 거리는 기본이었다. 고작 행성 하나에 자신의 깃발을 꽂기 위해 1091년이라는 막대한 시간을 허비해야만 했다. 그것도 벌써 여섯번째였다.


"이번에는 몇 년이나 갈까?"

"뭐 몇 년이나 가겠냐?"

"이번엔 네가 바로 하게?"

"못할 게 뭐 있어?"


고든의 말처럼 그런 게 인간이다. 불가능인 줄 알면서도 도전하는 것. 단지 그곳에 그것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떠나고 보는 것. 그래서 여섯번째다. 여섯번이나 그곳을 정복하기 위해 군대는 떠났고, 그리고 그때마다 반란이 일어나며 본성으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그 사실이 본성에 전해지면 다시 자원자를 모아 원정군을 꾸리고 징벌을 위해 떠나보낸다.


"내가 반란을 일으켜도 그 사실이 본성으로 전해지기까지 최소 천 년 이상, 어차피 나는 죽고 없을 테고 후손이 있어도 천 년이 넘어가면 그다지 느낌이 없어. 아마 지금 그곳을 지배하고 있는 것도 최초의 반란군과 유전적으로 이어졌는가조차 확실치 않은 전혀 생소한 누군가일 걸? 어쩌면 그 사이 본성보다 기술이 더 발달해서 군사적으로 우리를 압도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고 말야. 한 마디로 일단 진압에 성공한다면 말이겠지."

"재미있겠는데?"

"그러라고 자원한 거라니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 우주선에 타고 있는 원정군 가운데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이들이 꽤 상당할 것이었다. 처음에는 반란이 일어나기까지 최소 3세대는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본성에서 그곳까지 사절이 도착하는데도 기본으로 천 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말이 본성이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타국의 존재를 3대가 지나도록 여전히 의식하며 정체성을 유지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시간은 갈수록 짧아졌다. 이번 반란 역시 도착하고 기존의 반란군과 손잡고 반역을 선언함으로써 고작 천 년만에 다시 원정군을 꾸리게 된 경우였다. 천 년만에 반란사실이 전해졌고 다시 천 년에 걸쳐서 진압군은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여튼 부지런한 녀석들이라니까."

"그러자고 자원한 거라구."

"쯧..."


굳이 말릴 생각은 없었다. 말 그대로 천 년이다. 왕복해서 2천년이다. 굳이 본성을 위한다고 반란진압에 목숨을 걸어봐야 오고가고 결과가 보고되기까지 그만큼의 시간이 기본으로 필요하다. 살아서가 중요하지 죽고 나서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 이미 오래전 과학이 발견해 낸 유일한 진실이었다. 본성에 충성하려 원정에 참여한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시공의 거리를 의식하는 순간 거리만큼 희석되어 버리고 말았다.


다만 문제라면 과연 오로지 전쟁만을 위해 세팅된 우주선과 컴퓨터를 어떻게 제압하는가 하는 것이다. 말했듯 전쟁은 컴퓨터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역시 알아서 할 일이었다.


"바쁘게들 살아. 바쁘게들."

"흐흐흐흐..."


아직 한 번의 잠이 더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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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영역은 교통과 통신에 비례한다. 한 마디로 힘을 투사할 수 있어야 한다. 명령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만에 하나 외적이 침입하거나 반란이 일어났을 경우 바로 전력을 투입하여 효과적으로 진압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의 상황에 대한 보고를 늦지 않게 받을 수 있고 그에 대한 대응을 적절한 순간에 지시할 수 있어야 한다. 제국의 영토가 역사의 발전과 비례하여 더욱 넓어지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그래서다.


아주 고대에는 도보로 이동했다. 전차는 이동에 제약이 있었다. 말이 등장했다. 역참이 등장했다. 배는 말보다는 느리지만 지형의 제약도 크게 받지 않으면서 한 번에 더 많은 인원과 물자를 한 번에 이동시킬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었다. 철도가 등장했다. 전신이 등장했다. 무선이 등장했다. 비행기가 음속을 넘어 하늘을 날아다녔다. 사실상 지금의 제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영토는 지구 전체다. 굳이 고정된 국경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하루만에도 타국을 무력화시킬 수단을 미국은 이미 보유하고 있는 중이다. 다만 그 수단들에 들어가는 비용이 문제가 되고 있다.


역사상 많은 제국들이 끝내 무너지고 만 또 하나 이유였다. 제국에 한계는 존재한다. 제국이 가질 수 있는 영토의 한계는 명백히 존재한다. 하지만 인정하지 않는다.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무리해서라도 한계를 넘어서까지 영토를 넓히려 한다. 알렉산더는 그렇게 넓힌 영토를 항구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현지화를 시도했었다. 당제국은 한계를 넘어선 영토를 유지하기 위해 절도사를 두었었다. 하지만 조금만 틈을 보이면 한계를 넘어서 획득한 영토들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고는 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을 노리는 창이 되어 돌아오기도 했었다. 한계를 넘어선 영토를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자원과 비용이 들어가는데 정작 조금만 약점을 보여도 오히려 반란을 걱정해야만 했다. 제국의 최전성기는 그래서 제국의 쇠퇴가 시작되는 지점이라 보아도 좋았다.


과연 우주에서도 지구에서와 같은 전쟁은 일어날 것인가. 건담에서와 같은 태양계 내에서의 전쟁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까지가 아직까지 인간의 지식으로 가능한 한계다. 은하계의 지름만 무려 10만 광년이다. 빛의 속도로 10만년은 날아가야 겨우 닿을 수 있는 거리라는 뜻이다. 이 넓은 우주에 인간이 자리잡고 살아갈만한 조건의 행성은 몇 개나 될까? 그런 행성들 사이의 거리를 이용하려면 어떻게 해야만 할까? 소설에서처럼 광속을 뛰어넘어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하더라도 시공간을 부정하지 않는 이상 한계는 존재한다. 극단이기는 하지만 한 번 원정을 떠나는데도 수십수백년이 걸린다. 겨우 전쟁에서 승리해서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반란이 일어나면 알려지는데만 다시 수 세대가 걸린다. 다른 건 그렇다 치더라도 그런데도 인간이 우주에서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가능할까?


만일 외계인이 실제 존재하더라도 많은 SF에서 묘사하는 것 같은 그런 침략은 없을 것이라 자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UFO가 실제 외계인의 우주선이라면 압도적인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굳이 지구와 지구인에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실익이 없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렇게 지구를 침략해서 지구를 정복하면 무엇하는가. 그래서 무언가 이익이 되고 도움이 되는 것이 있으니 그런 수고도 감수하는 것이다. 설사 생기는 것이 있어도 남는 것이 있어야 비용이든 시간이든 투자할 보람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 역대의 모든 제국들이 그랬던 것처럼 먼 미래도 역시 멍청한 짓거리를 반복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인간이 항상 합리만으로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항상 합리만을 쫓았다면 지금의 인류의 문명은 없다.


바보짓이다. 한 마디로. 우주에서의 전쟁이란. 우주를 무대로 벌이는 정복이란. 하지만 원래 인간이라고 하는 자체가 바보들이다.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매번 같은 바보짓을 반복한다. 이것이거나 아니면 이것이거나. 새벽의 망상이다. 오지 않을 먼 미래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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