썼던가? 뭐 다시 써도 상관없겠지. 어차피 예전 글 일부러 찾아읽는 사람도 드물테니.


왕의 후계자란 아주 귀한 신분이다. 너무 귀한 신분이다 보니 아무나와 어울리게 할 수 없다. 극단적으로 주변의 관계가 제약된다. 심지어 부모자식간에도 엄격한 예법 아래 단절된 시간을 보내야 한다. 형제는 단지 왕위를 다투는 경쟁자다. 부모형제 이외에는 단지 자신을 받들어 모실 신하 뿐이다. 언젠가 자신의 왕위를 노릴지 모르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데 왕의 후계자가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가질 리 없다.


그래서 결국 의지하는 것이 부모처럼 형제처럼 친구처럼 자신을 받들어 모시던 환관들이었다. 어차피 환관들은 자식을 낳을 수 없다. 왕이 아니라면 어디 가서 제대로 대접도 받지 못한다. 왕이 있으니 환관도 왕을 등에 업고 행세깨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도감을 준다. 그러니 조금 못되게 굴어도 최소한 다른 형제나 신하들보다는 낫겠거니.


비단 환관만이 아니다. 때로 유모이고, 같이 자란 유모의 자식인 젖형제였다. 아니면 어머니이거나 어머니의 친척인 외쳑이었다. 마누라나 마누라의 친척들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그나마 자기의 친형제들보다는 믿을 수 있다. 결국 왕을 등에업고 전횡을 일삼으며 국정을 농단한 대부분의 권신들은 왕과 소통할 수 있는 측근들이었다. 왕을 대신해서 비난을 듣는 것도 이들의 역할이었다. 익숙한 사람들이 그래도 일단은 편하다.


전제왕조가 가지는 여러 단점 가운데 하나다. 신분사회의 단점이다. 이렇게 인간관계가 편협하다 보니 정작 신분도 높고 배운 것도 많은데 허황된 소리에 넘어가 패가망신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뻔히 보이는 속임수에도 쉽게 넘어가고는 한다. 그래서 조선의 경우 세자에게 일부러 보다 엄격한 인간관계를 만들어주려 노력하기도 했었다. 세자의 스승들이 그런 경우다. 아무리 왕의 후계자라도 스승들만큼은 어려워해야 했다. 그런 대상이 필요하다. 최소한 대등하거나, 아니면 자기보다 우위에 있는 누군가를. 그래야 편협해지지 않고 외곬로 빠지지 않는다.


어느 공주님이 있었다. 사실 공주님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반신이었기에 어렸을 적부터 감히 세속의 인간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학교에 다니면서도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리며 대등한 관계를 만들지 못했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부하들 뿐이었다. 그런 속에서 과연 그 공주님은 제대로 인간의 관계를 경험할 수 있겠는가. 인간의 관계를 경험하지 못하고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도 그런 공주님을 공주라고 떠받드는 신민들까지 있었다.


하다못해 귀족학교에서는 왕족이든 귀족이든 결국 특별한 세계에 사는 구성원 가운데 하나로 만든다. 학교 밖으로 나가면 당장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그래도 학교 안에서 그들은 나름대로 대등하고 복잡한 관계를 만들어간다. 인간의 관계를 경험해간다. 그렇게 할 정신머리도 없었던 것이다. 그 반쪽짜리 신은. 무당에 홀린 것이 아니다. 인간의 관계에 휘둘린 것이다. 왕조시대의 비극이다. 21세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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