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1대 총선을 치르면서 정의당이 가장 절실하게 깨달은 사실 하나가 그동안 언론이 자신들을 철저히 지켜주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주 잠시 대충 정의당의 비례후보를 훑어보는 것만으로 순식간에 수많은 의혹과 추문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러면 그동안 정의당 비례후보들은 그런 정도 결점도 없이 완벽하기만 한 인물들이었는가. 정의당 내부나 혹은 관련된 인사들 가운데 캐고 털려 하면 조국 전장관 만큼도 나오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어쩔 수 없이 정의당과 관련해서 당사자나 주변, 혹은 배후 등에 대해 듣게 되는 이야기들이 있다. 어떤 것은 사실일 테고, 어떤 것들은 의도적으로 왜곡되었거나 아예 날조된 것들일 터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름대로 근거도 있으니 당사자더러 해명하라 하면 꽤 재미있어질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나도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한낱 가십거리로라도 언론의 지면에 오르지 않는 것일까. 민주당과 관련해서는 없는 사실도 조작해서 물어뜯으려는 보수언론들마저 정의당에 대해서만큼은 관대하기 이를 데 없다. 당연하다. 다 쓸 데가 있기 때문이다.

 

당장 지금도 한창 시끄러운 정의연과 관련한 논란들이 대통령이나 민주당의 지지율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정의연과 윤미향 당선인을 공격하는 주체들이 그럴 말을 할 주제가 아니라 여기는 이들이 현실에 적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미래통합당이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고. 언제부터 조중동이 위안부 피해자들을 그리 위했었다고. 당장 정의연과 윤미향 당선인에 대한 의혹을 앞세워 수요집회를 방해하려 나선 세력들조차 대부분 눈에 익고 귀에 익은 이들이다. 그래서 정의당이 필요한 것이다. 정의당이라면 미래통합당과 달리 친일논란에 대해서도 부정이나 비리에 대해서도 한결 자유로운 입장에 있다. 정의당마저 정의연을 공격하면 효과는 더 극대화될 수 있다.

 

참여정부시절부터 한결같은 패턴이었었다. 그동안 보수의 이념을 앞세워 민주정당을 공격해 왔던 보수정당이었지만 두 가지 만큼은 여러가지로 말발이 먹히지 않는 것이었다. 그동안 드러난 부정과 비리만 해도 비교가 되지 않는데다, 사회적 약자나 소외된 이들을 위한 정책에 있어서도 할 말이 없는 것이었다. 구체적인 내용에서는 호불호나 시시비비가 있을 수 있어도 보편적 정의란 또한 대중이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이다. 제대로 언론이 다루어주기만 해도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인상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 그 반대편에서 민주당이 보수정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위를 가지는 그것들을 가지고 민주당을 공격해서 그 명분을 상쇄시킬 다른 수단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민주당보다 도덕적으로 더 우위에 있고, 사회적 가치에 있어서도 더 선명한 입장을 가지는. 바로 역대 진보정당들이다.

 

민주당은 보수정당보다는 이념적으로 빨갱이고, 진보정당보다는 기득권에 가까운 어중간한 정당이다. 진보와 개혁을 위한다면 정의당을, 안정과 발전을 위한다면 보수정당을. 그래서 경향신문에서 대놓고 떠들었던 것이었다. 민주당만 빼고. 보수는 보수정당으로, 진보와 개혁은 진보정당으로. 그러다가 혹시라도 진보정당이 진짜 민주당을 대신하면 어떻게 하는가? 그래서 더욱 선명하게 도덕적인 결벽함과 이념적인 순수성을 강조하도록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노회찬 의원이 불행한 선택을 하고야 만 것처럼 언론과 정치권의 아주 작은 공격에도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자멸하도록. 당장 정의연과 윤미향 당선인을 대하는 것을 보라. 그동안 아예 인간적인 교류가 없었던 것도 아닐 텐데 언론이 제기한 의혹조차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사퇴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만일 자신의 일이라면?

 

물론 이번에 더욱 확실하게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들에게 헛점이나 결점이 없어서 언론이 눈감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굳이 찾으려고도 들추려고도 하지 않으니 굳이 기사로까지 나가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언론이 보도하지 않는 동안에는 설사 있어도 없는 일들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그동안 진보정당들은 크게 논란이 될 만한 일도 별로 없이 순수하고 선명한 진보의 이미지를 지켜 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민주당처럼 진보정당도 언론들이 털기 시작한다면 비례후보로 논란이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나마 한 줌도 안 되는 약소정당따위 하루아침에 녹아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니까 정의당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혹시라도 언론의 먹잇감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의당은 언론이 자신들을 방치하는 본분에 충실하지 않으면 안된다. 보수정당과 반대편에서 민주당이 보수정당에 대해 가지는 우위를 가지고서 민주당이 가진 명분을 희석시키고 빌미를 만들라.

 

총선이 끝나고 자칭 진보인사라는 것들이 정의당을 찾아가 충고한 것도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총선이 끝나기도 전에 한겨레와 경향 역시 정의당에 같은 것을 주문하고 있었다. 앞장서라고는 하지 않겠다. 다만 자신들이 판을 깔아주면 그동안 봐 준 대가로 제 역할을 충실히 다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번 총선에서 언론들이 유독 정의당을 못살게 군 이유이기도 하다. 선거법 한 번 바꿔보겠다고 정의당이 감히 검찰개혁에 한 발 담그고 있었다. 언론과 검찰이 조국을 죽이려고 그리 어렵게 일을 꾸며 놨는데 정의당이 그것을 거부하기까지 했었다. 반성문을 써야 했다. 더이상 언론의 공격을 받지 않으려면. 조국 전장관의 일은 정의당이 잘못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 언론이 듣기 좋게 문재인 대통령의 탄핵까지 입에 담는다. 언론과, 언론과 손잡은 검찰의 충실한 개가 될 것을 선언한 것이다. 그것만이 진보정당이 존재하는 이유다.

 

사실 지금 정의당의 태도는 참여정부 시절부터 진보정당을 지켜 봐 온 사람들에게는 전혀 새삼스런 모습이 아니란 것이다. 그때도 정의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은 진보적 가치를 위해 열린우리당이 아닌 수구정당인 한나라당과 연대하고 있었다. 노무현 전대통령을 죽는 그 순간까지 저주하며 참여정부의 실패에 힘을 보태고 있었다. 미래통합당이 노무현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이나 정의당이 노무현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나 전혀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오늘 경향신문 1면에도 노무현이 있었다.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잘 죽었다 떠들어대는 놈들이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를 공격할 때 필요하면 그 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가져다 앞세운다. 언론을 등에 업고 보수정당과 손잡고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과 싸우며 자신들의 인지도와 영향력을 높이겠다. 보라. 그 결과 언론이 더이상 정의당을 비판하지 않게 되었지 않은가 말이다.

 

그리 날을 세우며 정의당을 비판하던 언론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약속이라도 한 듯 정의당에 대한 관심을 끊어 버렸다. 굳이 정의당의 이용가치를 더이상 훼손하지 않기 위한 언론의 전략적 판단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정의당은 열심히 제 할 일이나 하라. 한겨레와 경향이 같은 언론으로써 정의연과 윤미향을 공격하기로 결정한 순간 그래서 정의당의 참전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언론의 이쁨을 받지 않으면 정의당에 미래란 없다. 언론의 방치과 비호 속에 정의당은 진보정당으로써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다.

 

낯설지 않다. 너무 익숙해서 어제오늘 일인 것 같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불행한 선택을 하기 전 심상정과 주고받은 글들을 살펴 보라. 잠시 자기 주제를 잊었던 것이다. 혹시라도 선거법이 바뀌면 원내교섭단체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거기까지는 언론이 허락하지 않는다. 원내교섭단체가 되더라도 그것은 언론의 허락과 지원 아래서다. 민주당과의 연대를 통해서가 아니다. 이제는 알았을 것이다. 열심히 해야 한다. 다시 버림받지 않으려면. 처절하기조차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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