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규가 어느 방송에서 말한 바 있다. 무식한 자가 신념을 가지면 더 위험하다. 아주 오래전 연예인에 대해 별 꼬투리를 잡아서 비난하는데만 열심인 이른바 네티즌들을 가리켜 나 역시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비루한 무지와 나태가 타인을 비난하는 것으로 자신을 증명하게 만든다. 

 

여기서도 썼을 것이다. 여기 아니어도 어디선가는 썼었다. 누군가를 칭찬하고 지지한다는 것은 그와 그의 행동에 대한 책임까지 같이 지겠다는 의미다. 어째서 칭찬했는가? 잘했으니까. 왜 지지하는가? 옳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면 왜 잘했고 무엇이 옳아서 그를 칭찬하고 지지한 것인가? 그러려면 알아야겠지. 공부해야 한다. 취재도 해야 한다. 그러고서도 혹시라도 생각못한 부분들로 인해 곤란해질 지 모른다. 그에 비해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은 얼마나 편한가? 설사 내가 비난한 내용이 사실과 전혀 다르더라도,

 

"그런 빌미를 준 당사자가 잘못한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아닌가? 타진요 때도 타블로를 비난하던 놈들이 마지막에 내뱉은 말이다. 그럴 빌미를 주었기에 자신들은 정당하게 비판을 한 것이다. 하지만 한 편에서 이미 초기에 드러난 몇 가지 사실만으로도 타진요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이었음을 알았던 나와 같은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판단의 여지가 있다면 오히려 신중하게 사실에 대해 더 정확히 알아보고 당사자의 해명까지 들어서 시간과 수고를 들이더라도 정확하게 사실을 알고 판단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에 대한 예의다. 하지만 귀찮으니까. 그런 노력을 하기는 귀찮고 당장 자신의 정의감을 드러내고 싶으니까. 바로 인정부터 받아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어디에 있는가.

 

정부가 잘한다. 그래서 칭찬한다. 바로 비판이 들어온다.

 

"너 어용이냐?"

"너네 친정부냐?"

 

그걸 못 견딘다. 차라리 가짜뉴스로 비난하면 살아있는 권력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라 변명이라도 할 수 있다. 오히려 사실을 제대로 취재해서 보도하는 것보다 더 편하고 폼도 난다. 제대로 취재도 않고 사실확인도 않은 채 그저 살아있는 권력과 맞선다는 자신에 취해서 아무 기사나 막 써댄다. 그래서 기자회견장에서 대통령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도 들어 올릴 수 있는 것이다. 기자세계에서 영웅이 될 수 있다. 살아있는 권력을 향해 자기가 이렇게 무엄한 행동까지 해 보였다. 그것이 얼마나 경우없고 무례한,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을 모욕한 행위일 수 있다는 사실 같은 건 이미 그들의 머릿속에 없다. 살아있는 권력과 맞섰으므로 자신은 정당하다.

 

정의당에 진보가 없다는 이유다. 한겨레에도 경향에도 진보란 없다. 홍세화에게도 강준만에게도 진보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주장하는 진보가 사실이면 최소한 박노자처럼 현정부가 들어서 조금이라도 나아진 부분들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박노자도 현정부를 강하게 비판한다. 당연히 박노자는 극좌 중에서도 극좌에 속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진중권보다도 홍세화보다도 강준만보다도 심상정보다도 더 왼쪽에 있는 인물이 박노자다. 그런데 어용소리 두려워하지 않고 인정할 건 인정하면서 비판할 부분들을 비판한다. 그것이 지식인이다. 누가 뭐란다고 그것을 두려워서 말조차 가릴 것이면 그건 협잡꾼이지 지식인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정의당이나 한겨레나 자칭 진보 가운데 누구도 현정부 들어서 이루어진 여러가지들에 대해 제대로 인정하는 경우가 없었다. 다 못했다. 다 잘못했다. 망해야 한다. 죽어야 한다. 아니 죽여야 한다. 왜? 어용 소리를 들어서는 안되니까.

 

감히 국민의힘으로부터 민주당 2중대라는 소리를 듣기가 그리 두려운 것이다. 조중동으로부터 친정부 언론이라는 말을 듣기가 그리 굴욕적인 것이다. 그래서 더 앞장서서 꼬투리를 잡아 정부와 여당을 비판하는데만 열을 올린다. 혹시라도 잘한 것이 보여도 그 가운데 못한 것을 찾아서 억지로 키워 떠드는데만 열심이다. 현정부와 민주당이 이루어낸 성과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진보이념에 부합하든 다른 부분을 찾아내서 비판하는 것만이 자신들이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그들에게 진보란 국민의힘으로부터 조중동으로부터 인정받는 진보다. 조중동이 부정하면 진보조차 아니게 된다. 국민의힘이 인정하지 않으면 진보라고 할 수도 없게 된다. 그런 무의식이 장혜영의 민주당을 진보로 인정할 수 없다는 발언으로 표출된다. 누가 누구를 인정하고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진보와 보수가 결정되는가? 

 

자아가 비루하기 때문이다. 자아는 비루한데 자존은 높다. 욕먹기도 싫고 비판듣기도 싫고 그래서 혹시라도 논쟁이 붙어 지기라도 하면 견딜 수 없는데, 그럼에도 인정은 받고 싶다. 대접은 받고 싶다. 그래서 그토록 기레기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남은 그렇게 쉽게 편하게 비난하면서 자신들을 향한 비난에는 그토록 견디지 못해 하는 것이다. 기레기라는 말을 인정하지 않는 기자는 기자가 아니다. 맞는 말이다. 그런 굴욕과 수모를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것이면 기사같은 건 쓸 수 없는 것이다. 기자가 아닌 것들이 쓰는 기사란 그냥 글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스스로를 주류라 생각한다. 자칭 진보들의 내면이다. 그런데 제대로 주류사회에서 주류로 인정받지 못한다. 주류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유일하게 노회찬 정도가 그런 판단과 상관없이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말하고 행동하고 있었다. 주류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 수구언론으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 수구정당으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 민주당의 인정따위 필요없다. 민주당이야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는 하찮은 존재들이다. 원래 자기들의 신분으로 보면 진짜도 아닌 가짜진보 민주당은 마주할 가치도 없는 비천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런 이면에 그럼에도 어느새 주류로 올라선 민주당을 인정할 수 없다는 졸렬함이 자리하고 있다.

 

김학의는 그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김학의의 인권조차도 소중히 여겨야 수구로부터 진보로 인정받을 수 있다. 김학의의 범죄와 상관없이 그의 도피를 막는 과정에서의 절차상의 문제를 비판할 수 있어야 진보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박원순은 비난해도 김병욱을 비난해서는 안된다. 피해자라는 여성의 주장을 앞세워 당사자도 아닌 민주당 국회의원의 사퇴는 주장해도 감히 주호영의 성추행에 대해 한 마디라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노후원전의 위험성보다 그 과정에서의 잘못들을 문제삼아 대통령과 청와대를 공격할 수 있어야 한다. 필사적인 것이다. 

 

악의가 있어서도 있겠지만 그 정도 수준도 못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란 뜻이다. 그나마 악의라도 있으면 목적과 동기가 읽히는데 악의조차 없으면 그냥 부화뇌동하는 경박함만이 보인다. 신념도 양심도 정의도 자존도 정체성도 없다. 더 나쁘다. 내가 자칭 진보들을 벌레취급하는 이유다. 존엄이 없는 인간은 벌레와 같다. 그냥 비천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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