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서 촉한이 멸망했을 때 다시 일으키고자 나섰던 것은 황제인 유선이 아니었다. 신하인 강유였다. 대한제국이 멸망했을 때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황제 고종의 죽음에 슬퍼하여 모인 민초들이 3.1만세운동을 일으킨 바 있었다. 대한제국 황실이야 굴욕과 모멸을 조금만 참고 견디면 어떻게든 살아질 테지만 민초들은 아니다. 차라리 내가 죽은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이 내가 받드는 군주, 혹은 국가가 핍박받고 모욕당하는 것이다.

 

원래 안철수 지지자들은 반민주당, 반국민의힘의 중간지대라 해도 좋을 것이다. 민주당도 싫고 국민의힘도 싫다. 그래서 그 중간에 있는 안철수를 통해 새로운 정치를 모색해 보겠다. 아무리 안철수가 자신들을 실망시켰어도 여전히 새로운 정치에 대한 자신들의 갈망에 화답할 인물은 달리 없는 것이다. 어차피 어떻게 해도 문재인 정부가 싫고, 민주당은 더 싫고,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이들은 벌써 윤석열에게로 달려간 지 오래다. 진보진영에서도 정권교체해야겠다는 놈들은 심상정이 아닌 윤석열 똥구멍 빨고 있는 지 오래다. 경향과 한겨레가 그 대표다. 그러면 남은 이들은 누구인가? 그래도 역시 국민의힘은 아니다. 국민의힘이 아닌 중간지대를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

 

그런데 그런 지지자들의 눈에 국민의힘이 자기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모욕하는 것이 보였다. 굴욕을 주고 모멸을 가하고 심지어 사고로 목숨을 잃은 지지자마저 조롱한다. 그럴 때 지지자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 분연히 자신들을 위해 저들과 싸워주는 것이다. 그것을 기대하고 오히려 더 단결하여 안철수를 지지하려 하고 있는데 안철수가 그만 항복을 선언하고 말았다. 아무 조건없이 사퇴란 단일화도 뭣도 아닌 그냥 항복인 것이다. 그것도 저쪽 당대표에게 그토록 오만 수도를 다 당한 상태에서도. 그러면 지지자들이 안철수를 따라서 윤석열을 찍으려 할까?

 

차라리 대등한 관계에서 일정한 정치적 거래의 결과로 그같은 결과가 나왔다면 또 상황이 달라졌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안철수의 다음을 위해서라도 자신들 역시 안철수를 쫓아 윤석열을 지지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이 그냥 굴욕만 당하고 손놓고 항복해 버리고 만 것이다. 정치적으로 죽임을 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안철수에게 이번 대선 이후 다음이란 있을 것인가? 안철수를 쫓아서 윤석열을 지지한다고 안철수를 지지해 온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라는 것은 보답받을 수 있을 것인가?

 

오히려 단일화하면 이재명의 지지율이 윤석열보다 더 높게 나오는 이유인 것이다. 어차피 국민의힘으로의 정권교체는 아니라는 사람들이 대부분 남아 있는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단일화란 그냥 항복에 지나지 않는다. 굴복이며 굴종이다. 그런데도 안철수를 따라가기엔 인간의 존엄이라는 것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안철수 지지자들 사이에 동요가 커지는 이유다. 물론 역시 선거란 실제 투표함을 까봐야 아는 것이겠지만.

 

생각보다 작은 인물이었다. 초딩조차도 아니었다. 고작 일주일만 버티면 되는 것이었다. 일주일 버티고 이재명이 대선에서 승리하면 그때부터는 어떻게든 빠져나올 틈이 생길 터였다. 이재명이 연합정부 구상을 발표하면서 안철수에게 이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늘릴 수 있는 공간도 준비되었다. 윤석열이 더 고민해야 할 상황에 지레 항복해 버린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래서 내가 처음부터 안철수를 지지하지 않았던 것이지만. 한심한 정도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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