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에 대해서 여러 이해와 정의가 존재하고 있지만 역시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증오'라는 감정일 것이다. 공포와 증오는 시작도 끝도 없다. 예를 들어 공포영화를 보면서 아무것도 없는데 막연히 무서운 감정이 드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아무것도 없는데 무섭다. 정작 아무것도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데 자기의 상상이 스스로 공포를 만들어내고 있다. 증오 역시 마찬가지다. 이유는 없지만 심지어 대상조차 없이 무작정 밉고 싫다.


사실 대부분 자신을 둘러싼 현실에 대해 크든 작든 불만 하나씩은 가지고 살아간다. 내 벌이가 시원치 않고, 그래서 나의 일상이 누추하고 비루하고, 그렇기 때문에 나와 내 가족들이 충분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막연히 가지고 있던 불만에 대해 누군가 나서서 이렇게 말하기 시작한다.


"바로 저놈들 때문이다!"


바로 유대인 때문이다. 바로 사회주의자 때문이다. 바로 외국인 때문이다. 바로 흑인들, 아시아인들, 히스패닉들 때문이다. 아랍의 테러리스트들 때문이다. 그러니까 바로 저놈들만 세상에서 지워버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모두 힘을 합쳐 몰아내자.


결론이 있으면 비로소 이유가 만들어진다. 일단 먼저 결론이 내려지면 어떻게든 이유는 그 뒤에 따라붙게 된다. 자신의 사고와 주장과 행동에 대해 스스로 합리화를 시도한다. 누군가 그것을 대신해주면 더욱 좋다. 그래서 대부분 증오는 그 같은 이유를 대신해서 들려주는 특정한 개인에 대한 숭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옳다. 그의 논거와 논리야 말로 아직 사람들의 모르는 진실을 담고 있다. 이를테면 선지자같은 것이다. 모두가 말하고 싶지만 미처 하지 못했던 말들을 대신해서 들려준다. 더불어 그들 우상들은 이같은 부당한 현실을 바꾸는 구심점이 되기도 한다. 이제 우리가 모여서 이 사악한 현실을 바꿔보자.


이 모든 것이 북한 때문이다. 사실 일정 부분 맞는 말이다. 북한의 존재만 아니었다면 우리 사회는, 아니 우리의 근현대사는 최소한 지금보다는 더 나은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면에는 북한을 이용한 사람들이 있었다. 공산당은 나쁘다. 북한은 나쁘다. 그러니 무엇보다 우선해서 공산당을 때려잡고 북한과의 대결에 집중해야만 한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권들마저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해야 한다는 당위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고, 자유를 억압하고 기본권마저 침해하며, 무엇보다 부정한 권력을 부당하게 휘둘러 온갖 부정과 비리를 저질러도 당장 호시탐탐 적화통일만을 노리고 있는 북한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권력을 중심으로 모두가 똘똘 뭉쳐야 한다. 


지금 경제가 안 좋은 것도 모두 노조 때문이다. 기업의 실적이 나빠지고 개인의 주머니가 가벼워진 것도 모두 현실을 모르는 얼치기 진보주의자들 때문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개인의 희생은 당연하다. 아무도 양보하지 않으면 나라경제는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해서라도 자신들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자신들이 지금 물러나면 나라의 경제와 안보는 그 순간 무너지고 만다. 개인들이 지금보다 더 높은 수입과 더 나은 삶의 질을 누리는 것에 반대하는 이유도 그 같은 절박함과 위기감만이 자신들의 일방적인 논리에 동의하게 만들 것이라는 나름의 냉정한 계산 때문인 것이다. 가난하게 만들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몰아넣음으로써 그 탓을 다른 사람에게 돌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 안철수가 전국을 돌며 하는 짓거리를 보며 안철수라는 인간에 대해 느꼈던 혐오가 더욱 선명한 확신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래서다. 하긴 처음 안철수라는 정치인이 대중 앞에 새로운 정치의 희망으로 등장한 것도 바로 그 '증오'라고 하는 감정 때문이었다. 정치가 싫다. 정치인이 싫다. 자신은 이토록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돌아보지 않고 방치하는 정치와 정치인들이 너무나 밉고 싫다. 그러니까 새로운 인물을 갈구한다. 기성의 정치와 동떨어져 있으면서 기성의 정치가 하지 못한 일들을 한 번에 해결해 줄 메시아를. 내가 처음 문재인에 대해 경계심을 가졌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지금도 사실 많은 문재인 지지자들이 내가 우려한 그대로의 말과 행동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님이 다 해주실 거야. 문재인 대통령님만 있으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야. 그러니까 문재인 대통령님에 반대하는 모두는 인정해서도 용납해서도 안되는 자신들에게 악이고 적이다. 다만 그럼에도 정작 문재인 자신은 단 한 번도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증오를 말한 적이 없다. 일방적으로 책임을 떠넘긴 적도 없다. 한국정치에서 지금까지 유일하다.


아무튼 지난 대선에서 비천한 바닥을 낱낱이 드러낸 뒤임에도 아직까지 많은 언론과 지식인들이 안철수를 추종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아직도 자신들이 보기에 한국 정치는 너무 저급하고 저열하다. 너무나 한심해서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정치권 이외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야 한다. 그 희망이 현실정치에 대한 자신들의 혐오와 증오를 정당화하고 사실로 입증해 줄 것이다. 민주당은 바로 어제까지 자신들이 욕하던 기성정당이었다. 문재인은 불과 몇 년 전 자신들이 그토록 가혹하게 비판했던 기성정권의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정당과 정치인이 너무 잘해서 성공한다는 것은 그 같은 지식인으로서의 자신들의 이해와 판단이 잘못된 것이었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 아니 심지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마저 쉽게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지식인의 오만한 본성인 것이다. 그러니까 아직까지 - 비록 그 구성원 다수는 기성의 정치인이더라도 새로운 제 3정당과 제 3의 인물에게 기대를 걸어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안철수가 자신들을, 자신들의 옳음을 밝혀주고 구원해 줄 것이다.


정말 너무 어이가 없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런 식으로 가는 곳마다 '홀대론'이나 떠들어대는 수준이고 주제라니. '홀대론'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지금 내가 어렵고 힘든 것이 모두 저놈들 때문이라는 것 아닌가. 고작 한 줌도 안 되는 땅이다. 한반도도 겨우 남쪽 절반만 차지하고 있을 뿐인 작은 나라다. 그런데 이쪽 저쪽 편을 갈라 서로를 탓하고 서로를 미워하며 서로 싸우도록 만든다. 사실 지역주의 자체는 거의 없는 나라가 없다 할 정도로 인류사회의 보편적 특징 가운데 하나다. 서로 자기가 사는 동네가 잘났고 남이 사는 동네는 뭔가 못하고 문제가 있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 가면 같은 지역 출신들끼리 모여 공감대를 이루는 경우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단지 사는 지역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서 서로를 배척하고 차별하는 것까지 일상적이지는 않다. 그냥 막연한 감정일 뿐이고 실제 행동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최소한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사는 지역으로 인해 대상을 단정하고 심지어 실제 행위를 통해 영향을 주기에는 너무 작고 사소한 이유다. 그런데 그래도 원내 제 3당 대표라는 인간이 앞장서서 지역마다 돌며 지역주민들에게 자신들의 열악한 상황에 대한 책임을 다른 누군가에게 돌리도록 부추기고 선동하고 있다. 이런 행동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호남홀대론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무엇보다 호남홀대론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참여정부 당시 고 노무현 대통령과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호남을 차별하고 홀대해야만 하는 정당한 이유가 필요하다. 고 노무현 전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호남을 미워하고 싫어할만한 타당한 이유부터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하다못해 어린 시절 호남출신 선생님한테 매를 맞았거나, 젊은 시절 호남을 여행하다가 바가지라도 썼거나. 그러고보면 박지원이 문재인 자서전의 내용 가운데 문장 하나를 발췌해서 호남홀대론의 근거로 써먹은 것도 그런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결국은 영남 사람이기 때문이다. 부산 출신이고 김해 출신이기 때문이다. 영남사람이기 때문에 영남만 우대하고 호남을 차별하고 홀대한 것이었다. 심지어 호남의 정당이던 민주당마저 독차지하고 호남사람들을 밀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호남이 하나가 되어 호남을 무시하는 문재인과 그의 민주당을 응징해야만 한다.


하필 호남에서 홀대론을 떠들고 난 다음 안철수가 찾은 곳이 대구경북이었다. 같은 영남으로 묶이는 경우가 많지만 특히 근현대사에서 대구경북과 부산울상경남이 걸어온 길은 서로 사뭇 달랐다. 그래서 정서적으로도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그동안의 여러 선거에서도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은 서로 다른 선택을 했던 경우도 적지 않았었다. 바로 그 부산출신이 대통령이 되었던 것이었다. 어제까지 함께 보수정당을 지지하던 부산울산경남의 지지가 대구경북이 지지한 후보를 떨어뜨리고 부산출신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던 터였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부산출신인 대통령이 대구경북에 복수하려 할 것이다. 대구경북을 차별하고 홀대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문재인 정부와 대적할 수 있게 자신들에 힘을 실어달라. 이제는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마저 서로 구분지어 대립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 증오의 구심점을 자신으로 삼도록 유도한다. 누가 참모인지는 모르지만 아주 저열하고 흉악하다. 그래서 안철수가 정권을 잡으면 홀대받던 호남과 대구경북의 원망은 누구에게로 향하게 될까?


증오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이미 말했었다. 영남출신이 호남을 차별했다. 부산 출신이 대구경북을 차별했다. 그냥 부산출신 문재인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문재인이 나왔고 그를 지지했던 부산과 경남에도 그 책임은 돌아가게 된다. 그러니까 부산출신이라서 그런 것 아니던가. 그래서 부산출신이기 때문에 그랬던 것 아니던가. 미얀마에서 로힝야족에 대한 차별과 학살이 공공연하게 저질러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영국의 식민지배는 끝났지만 영국의 지배 아래 로힝야족이 우대받았던 사실 자체는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 스리랑카 등 열강의 침략을 겪었던 많은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문제다. 우리나라는 그나마 같은 조선인이 친일파로서 앞잡이역할을 했었다. 자비를 설파하는 불교의 승려가 로힝야족에 대한 차별만큼은 정당하다 말할 수 있는 그 이유가 어디에서 왔겠는가.


그나마 안철수의 지지율이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낮아서 다행이라 할 것이다. 지식인들이나 자존심때문에 아직까지 잡고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미 안철수에 대한 모든 기대를 놓아버린지 오래였다. 안철수가 히틀러만큼 논리야 어쨌든 말 잘하고 친화력도 있는 인물이었다면 어땠을까? 그의 주위에 괴벨스같은 탁월한 선동가가 있었다면 또 어떻게 되었을까? 무엇보다 그동안 지역주의가 나쁘다는 사실을 질리도록 주입받아 온 탓에 국민 자신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홀대론은 이제 너무 식상하다. 안철수가 멍청해서 다행인 걸까? 아니면 그래도 국민들이 그동안의 경험으로 조금은 현명해진 것에 안도감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안철수이기 때문에 고작 가십으로 끝났지만 안철수가 아니었어도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아주 위험할 뻔했던 행보라 아니할 수 없다. 나라를 둘로 쪼갠다. 다시 셋으로 쪼갠다. 충청도에 가서는 다른 말을 할까? 강원도에 가서는 또 어떤 말을 할까? 자기 머릿속에 있는 것도 오로지 문재인에 대한 증오 뿐이다. 원래 자기 것이어야 했을 자리를 빼앗아 간 누군가에 대한 원망 뿐이다. 그런 인간이 정치리더의 하나로서 지식인과 언론의 추앙을 받고 있다. 아직까지도 다수 언론의 지원까지 등에 업고 있다. 물론 그 다수는 문재인만 아니면 된다는 역시 언론의 증오와 혐오였을 것이다.


제대로 비판하는 언론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진보를 자처하는 언론들조차 지난 총선부터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노골적으로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행위를 직접적으로 비판하지 않고 있다. 비판할 가치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비판해서는 안되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바보라서 다행이다. 새삼 느끼는 것이다. 똑똑하고 말잘하는 놈들은 위험하다. 안철수라서 그나마 낫다. 안철수라서 정말 다행이다. 신을 믿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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