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평민당 프로젝트부터 에러였다. 88년 총선 당시 김대중은 대한민국 민주화의 상징적 존재로써 양심적 시민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호남이라는 지역기반에, 수도권으로 이주한 호남출신 유권자들의 결집에, 여기에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보여준 민주화를 위한 강한 열망과 헌신에 공감한 시민들의 지지가 더해지며 영남을 나누어야 했던 김영삼에 승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안철수는 어떤가?


김대중처럼 민주화를 상징하지도, 시대의 개혁을 의미하지도, 그렇다고 호남이라는 지역을 대표하지도 못했다. 오히려 국민의당에서 안철수와 호남출신 국회의원들과의 사이는 이해를 같이하는 동업자 관계에 더 가깝다. 그리고 이들 호남출신 국회의원들은 하나같이 호남을 벗어나면 인지도나 이미지가 영 미치지 못한다. 호남의 지역주의를 자극해서 호남의 의석은 석권했지만 그 결과 수도권에서 야권유권자들로부터 신뢰와 지지를 잃었다. 그나마 두 거대정당의 오만이 만들어낸 빈틈이 비례투표에서 선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지금의 지지의 근거가 되고 있을 뿐이었다.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좋아서라기보다는 그저 두 정당이 싫어서 투표한 경우가 더 많았다. 안철수 개인의 대중적 인기나 카리스마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김수민과 박선숙까지 연루된 리베이트 의혹도 그 연장에서 보아야 한다. 안철수라는 인물의 인품에 이끌린 것이 아니었다. 안철수라는 인물이 보여준 그동안의 역정이나 업적, 혹은 그의 신념이나 이상에 이끌려서 모인 것이 아니었다. 단지 안철수라는 바람을 보았다. 그 바람을 타고 국회의원 배지라도 하나 달 수 있을까 계산하며 모였다. 앞서 말한대로 국민의당과 안철수의 관계는 제왕적 총재에 더 가까운 당대표 안철수에 비해 오히려 계약적 동업자 관계에 더 가까웠다. 다시 말해 안철수가 추구하는 이상에 충실하기보다 언제든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태도를 바꿀 수 있는 관계에 있었던 것이었다. 안철수가 아무리 부패청산을 말해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장 자신의 이익부터 챙길 수 있다.


내부자의 고발로 이번 추문이 세상에 알려진 것도 바로 그런 맥락이었다. 정당이라고 하는 단일한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지 못했다. 이익으로 뭉쳤다. 이해로 하나가 되었다. 따라서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당에 등을 돌릴 수 있다. 그렇게 새정치민주연합을 박차고 국민의당으로 합류한 인사들이 다수였다. 당이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자신이 희생하고 헌신해야 하는 대상은 아니었다. 당장 당이 위태로운 지경에 놓였어도 바로 나에게 주어져야 할 이익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상관없다. 과거 새정치민주연합 시절에도 룰을 무시한 채 당대표를 흔들던 인사들이 그런 식으로 더민주 내부사정을 세상에 알리고 있었다. 반복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제할 능력이 사실상 안철수에게는 없다.


지켜봐야 한다. 의외의 반전이 일어나게 될지. 안철수가 갑자기 놀라운 능력을 보이며 당내 불만세력들을 다독이고 단합시키면서 문제가 된 부분만을 도려낼 수도 있다. 그런다면 안철수는 최소한 김대중 급이라 보아도 좋다. 도저히 안되겠으면 잘라내고, 그래도 끌고 가야 한다면 다독여 품고, 문제가 된 부분들에 대해서는 철저한 대처로 더이상의 확산을 차단한다. 하필 박선숙이나 김수민이나 안철수 라인이라는 게 문제다.


정치가 기업과 같지 않다. 기업은 사용자와 고용자라고 하는 일방적 관계에 의해 유지되지만, 정당은 구성원 다수가 주주이고 동업자다. 어떻게 그들을 다독이고 끌어안는가. 이익만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이번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듯 한계가 있다. 당이라고 하는 정체성을 공유할 수 있게끔 동기와 계기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과연 가능할지는. 여기서 안철수가 주저앉아서는 안된다. 정권교체는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 지켜보는 이유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