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중국문화권에서 정치란 명망가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유비가 공융으로부터 인정받고 기뻐한 이유였었다. 공자의 후손으로 명성이 높은 공융의 평가라면 자신 역시 천하에 이름을 알릴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조조가 굳이 허소를 찾아가 자신에 대한 평가를 들었던 이유이기도 했었다. 당대의 명사로부터 평가를 받아야지만 천하에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개인이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것을 두고 입신양명한다 표현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몸을 바로 세우고 이름을 널리 알린다. 이름을 알린다는 의미다.

 

중종대 조광조가 추진한 현량과는 그런 전통적인 명망가정치로의 회귀였었다. 후한대에 인재를 선발하는 제도 또한 그런 식으로 역내의 인재들을 선발해서 천거하면 등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면 그런 인재들은 어떻게 찾아내서 천거하는가. 전국시대에는 그런 인재들이 스스로 천하를 떠돌며 자신을 알리려 했으니 세객이라 불렸고, 후한대에는 인근의 명사들 사이에서 명성이 있으면 인재라 여겨 천거하던 것이었다. 딱 사마휘가 유비에게 제갈량과 방통을 천거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면 될 것이다. 순욱 역시 같은 방식으로 조조에게 곽가와 유엽 등을 천거한 바 있었다. 그래서 명불허전이라는 말도 나오게 되었으니, 그 정도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수준이라면 명성이 아주 이유없지는 않을 것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이름이 알려졌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정치인에게 부고란만 빼고 언론보도는 부정적인 것이라도 도움이 된다는 진짜 이유인 것이다. 언론에 자주 보도되면 그만큼 거물이라 여기게 된다. 언론이 제아무리 쌍욕을 해도 일단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면 전국적인 인사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하물며 그 내용이 상대편 거물을 상대로 한 것이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괜히 초선 가운데 저격수를 자처하는 정신나간 놈들이 나오는 게 아니란 뜻이다. 상대편 거물을 상대로 물어뜯는 가운데 자신 또한 자연스레 그와 동격의 인물로 여겨지게 된다. 정치적으로 입지가 위태로운 인물 가운데 그렇게 저격수로 나섬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명성을 얻으려는 놈들이 그래서 나타나는 것이다. 바로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인 것이다. 국민의힘에서 거물이 되려면 민주당 고위인사를 물어뜯어야 하고, 민주당에서 거물이 되려면 민주당 유력인사를 물어뜯어야 한다.

 

당대표선거에서 송영길이 당선된 이유인 것이다. 일단 다선의원이다. 개판치기는 했지만 지자체장도 한 번 했었다. 무엇보다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분위기 봐서 닥치고 물어뜯는 기회적인 행보에 언론지면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내용은 변변치않지만 토론프로그램 나와서 제법 목소리도 좋게 조리있는 언변을 선보이기도 했었다. 그에 비하면 홍영표나 우원식이나 원내대표가 되기 전이나 그만두고 난 뒤나 제대로 언론에 이름이 노출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래도 민주당이 개혁을 밀고 나가려면 의심스럽기는 해도 홍영표나 우원식같은 잔챙이가 아닌 송영길 정도의 거물이 대표가 되는 게 낫지 않은가. 일단 국민의힘을 상대하려 해도 중량감에서 송영길에 비해 이들 두 사람이 상대가 되지 않는다.

 

민주당 안에서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이들이 반드시 참고해야 할 부분인 것이다. 김한규의 행보가 그래서 아주 괜찮다. 여기저기 토론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치며 원외의 인사 가운데 민주당을 대표하는 얼굴로 거의 낙점받고 있는 중이다. 김용민이나 박주민, 김남국 등 역시 원내에서 여러 이슈를 주도적으로 끌고가며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잘하는 것으로 부족하다. 잘하는 것을 더욱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어야 한다. 김종민이 어떻게 전국구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잊혀진 인물이 되었는가.

 

송영길 나부랭이도 이렇게 당당히 당원들의 선택을 받아 당대표에 당선될 정도로 명성이란 중요한 것이다. 어떤 명성을 얻는가도 중요하다. 송영길이 개짓거리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중요한 고비마다 민주당을 대변하는 입으로써 여러 토론프로그램에서 진흙탕싸움도 마다하지 않았었다. 내용이 변변치 않아 그렇지 대중들에게 그 이름을 알리는 정도로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하나마나 한 소리나 하느라 존재감도 희미했던 홍영표나 우원식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예상한 결과였기에 충격은 없지만 그래도 여전하구나 하는 아쉬운 감정만은 어쩔 수 없다. 고작 이런 꼴 보자고 문재인 정부 지지하고 민주당을 지지해 왔었는가.

 

다만 그래도 한 가지 기대할 만한 부분이 있다면 송영길은 기회주의자라는 것이다. 개혁에 대한 요구가 득세할 때는 개혁을 쫓고, 안정에 대한 요구가 득세하면 안정을 쫓는다. 노무현에 대한 인기가 높으면 친노가 되고, 노무현에 대한 인기가 떨어지면 반노가 된다. 마찬가지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높을 때는 친문이 되었다가 지지율이 떨어진다 싶어지니 비문을 자처하는 것이다. 더구나 그때 상황에 따라 어중간한 스탠스가 아닌 가장 강경한 모습으로 자신의 존재를 부각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개혁이 자기에게 유리하다 여긴다면 아마 역대 어느 당대표보다 무리할 정도로 개혁을 밀어붙일수도 있는 인물이다.

 

당원의 이탈은 송영길에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이후 거물로써 민주당 안에서 더 큰 그림을 그리는데 어떤 선택을 하는 쪽이 나을까에 대한 판단이 송경길의 선택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당원과 지지자들의 목소리가 중요한 이유다. 무엇을 대세로 만들 것인가. 이재명의 대통령 당선이 유력해지면 송영길은 당연히 이재명 편에 선다. 의리가 없기에 이낙연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 여겨지면 바로 거리를 두고 멀리한다. 어떤 점에서 지지자가 하기에 따라 가장 편리한 유형의 정치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검찰개혁을 반대하는 백혜련이 최고위원이 된 것은 역시나 명성이 제법 있으니 그럴 수 있다 봐야 할 것이다. 역시나 정치은 이름이 절반이다. 그럼에도 김용민이 1위 득표로 당선된 것은 주목해 볼 만하다. 당원과 지지자들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 정치인들이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의 경선제도는 신인정치인에게 최대한 유리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지지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바로 경선단계에서 본선은 밟아보지도 못하고 떨어지고 만다. 결국은 지지자 하기 나름이란 것이다. 복당완료했다. 가만 놔두지 않는다. 나름의 각오다. 송영길 두고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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