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누군가가 사고를 당하면 몇 번이고 곱씹게 되는 가정인 것이다. 아니 몇 년 전 함께 살던 고양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몇 달을 그런 사고 속에 갇혀 살며 지냈었다.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 그때 그렇게 했었다면. 그만큼 그 순간이 절박하고 안타깝기 때문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 때로 돌아가 모든 것을 돌려 놓고 싶다.

 

하필 사고장소가 버스정류장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차가 멈춰서지 않았더라면. 기자의 발언왜곡이 악의적이라는 것은 정차한 상태에서와 주행중일 때의 엑셀레이터의 기능이 다르다는 점 때문이다. 주행 도중 가속하는 것과 정차한 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을 같이 생각하는 것인가. 그러니까 가정법이 나오는 것이다. 하필 그곳이 정류장이 아니었고 버스가 정차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사고를 인지했을 때 엑셀레이터를 밟든 뭘 하든 버스기사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도 어떤 행동들을 취했을 것이다. 그러면 최소한 얼마간 피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처음 기사를 보았을 때 뭔 말을 저리 주저리주저리 구구하게 붙이는가 싶었다. 그런데 유가족과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하니 비로소 이해가 되는 것이다. 사고를 아예 미연에 막을 수 없었다면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다른 가능성은 없었을까. 그러면서 지자체에 책임을 물을 근거로써 버스정류장을 방치한 부분을 찾아낸 것이었다. 그것만 아니었어도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다. 다만 말이 좀 정제되지 않은 부분이 없잖아 있는데 그러나 그건 송영길의 스타일이니 이제와 뭐라 하기도 그렇다. 정제해서 말하는 타입이 아니다.

 

아무튼 덕분에 송영길도 깨닫게 된 것이다. 송영길이 당대표 되었을 때 아마 이야기했을 것이다. 송영길은 소인배에 속물이기에 오히려 대중정치인으로서 더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모른다고. 당원과 지지자들의 바람도 그렇고, 당장의 수세에 몰린 국면을 타개하며 당대표로써 입지를 세우기에도 그만인데, 무엇보다 자신의 발언이 왜곡되어 전파됨으로써 혹시라도 지워질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라도 역공이 최선인 것이다. 바로 이 문제를 언론개혁과 연계시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는데 이용한다. 그동안 정치를 허투루 한 것은 아니란 것이다.

 

말하자면 언론이 습관처럼 민주당을 공격하기 위해 기사를 도구로 쓰다가 도리어 빌미만 내어 준 상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 언론개혁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던 송영길이 이 기사 때문에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내몰렸다. 그마저 노린 것이었을까?

 

말 그대로 유가족의 심정을 그대로 대신 전달하고자 사용한 표현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권한이 있는 해당 구청장에게 책임을 물으려 한다. 선의를 그런 식으로 왜곡당하면 누구나 화가 난다. 더구나 당대표 취임 초기에 그런 식으로 흠집을 내려 하면 소인배일수록 더 크게 화가 난다. 소인배라 다행이다. 대인배라면 대범하게 넘겼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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