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이야 말로 공정 그 자체라 주장하는 시험지상주의자들에게 시험이란 그래도 되는 선을 정하는 기준이라 할 수 있다. 시험을 잘봐 합격했으면 남들보다 특권을 누릴 자격이 되는 것이고, 시험을 못봐서 불합격했으면 대신 모든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위치로 떨어지는 것이다. 노력 안해서 시험 못본 것이니 그에 대한 징벌로써 고통과 차별은 정당하다. 어째서 서울대는 청소노동자를 대상으로 시험을 치르려 한 것일까?

 

청소노동자에게 시험을 치르게 한다고 따로 시험공부할 시간을 주었을 리도 만무였다. 무엇보다 제대로 근무시간을 할애해서 필요한 내용이라고 따로 교육을 받게 한 것 같지도 않다. 한 마디로 일은 일대로 하면서 시험을 치르기 위해 업무외 시간에 공부를 하게 만든다. 휴식을 취해야 할 시간이다. 다음 근무를 위해 휴식을 하고 재충전을 해야 하는 소중한 시간인 것이다. 그런데도 부당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역치 어쩌고 떠드는 내용들이 그 이유를 말해준다. 그래서 꼬우면 때려치고 나가라. 남았으면 시험결과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치르라.

 

아마 청소노동자가 우스웠을 것이다. 하찮게 여겨졌으며 그래서 차별을 정당화할 이유를 찾았을 것이다. 시험을 치르게 만들고 그 결과로써 청소노동자들을 홀대하고 차별할 이유를 확인하게 된다. 시험을 치르게 만든 인간이나, 그를 감싸는 서울대 안의 교수와 학생들의 주장이 그것을 너무나 확실하게 보여준다. 저들은 그래도 된다. 그래도 되는 대상이기에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그게 바로 인간의 가치다.

 

이준석이 당대표가 되고 새삼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 이유인 것이다. 기자들이 어디서 나왔겠는가. 일베와 기자가 둘이 아니다. 시험지상주의자들이란 결국 무한경쟁 속에서 나름의 룰을 찾고자 하는 그 카테고리 안의 존재들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차별하고 그래서 그들은 그래도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은 그래도 된다. 새삼스런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시험을 치르게 하고 그 결과로써 지위와 대우를 결정한다. 너무 공정하고 정의롭다. 역겹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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