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도 나온 적 있을 것이다. 서울 사람들은 대개 자기 사는 구만 넘어가도 전국구급 핫플레이스가 아니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나처럼 멀리 나가는 자체를 귀찮아하는 사람이면 한강 건너는 그냥 다른 세계라 보는 것이 옳다. 그런데 지방도시 사는 사람들은 자기 도시는 물론 인근 도시들에 대해서까지 훤하게 꿰고 있는 경우를 흔하게 보게 된다. 당연하다. 생활권이 그렇게 묶여 있으니까.

 

오래전 잠시 강원도에서 산 적이 있었다. 지금은 제법 그럴싸해진 것 같은데 당시만 해도 변변한 것이 없던 작은 도시라 뭐 하나 하려 하면 도시는 물론 변두리의 농가들에서조차 한 곳으로 모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극장도 그곳에 있었고, 서점이며 화방도 죄다 그곳에 있었고, 뭐라도 먹으려면 거기는 나가야 식당들이 보였다. 반면 서울의 경우는 그냥 동단위 안에서도 거의 대부분의 것들을 해결할 수 있다. 책 한 권 사려 지방도시 살며 이동한 시간이 대략 1시간, 서울에서는 걸어서 대략 10분에서 15분. 이해가 되는가?

 

심지어 지역에 따라서는 영화 한 편 보려면 이웃 도시까지 원정을 가야 하는 경우마저 있었다. 그래서 이웃 도시까지 훤하게 꿰고 있는 것이다. 생활권이 서울처럼 동단위 구단위가 아니라 시단위를 넘어 광역단위가 되는 것이다. 간단한 상식이다. 피자 한 판 먹으려 해도 한참을 나가야 하는 지방도시와 그냥 문열고 나가면 바로 아무 피자집이나 보이는 서울 가운데 과연 어디서 살고 싶은가. 당장 바로 인접한 안양이나 의왕만 하더라도 뭐 좀 하려 하면 이동거리가 장난이 아닌 경우가 많다. 고용지원센터 가려면 거의 버스로만 40분이라 그래서 지금 실업급여 신청도 미루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도 머리 상처 꿰매겠다고 바로 그 앞까지 버스를 타고 나가야 했으니.

 

인프라가 다른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한 몫 하는 것이 그런 지방으로 내려가기 싫은 의사들인 것이고. 오죽하면 공무원이며 공기업 직원들마저 지방으로 이전하면 지방에서 살기 싫다고 아예 그만두거나 가족은 서울에 두고 혼자 내려가서 기러기생활을 하는 경우마저 적지 않겠는가. 그게 바로 서울공화국에서 서울 이외의 지역이 놓인 현실인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돈을 더 준다고 해도 차라리 서울에서 덜 받고 일하지 지방에서는 일하지 못하겠다는 사람이 생겨나는 것이다. 아니면 잠깐 바짝 지방에서 돈 더 받고 일한 뒤 돈 모아서 서울에서 다시 시작하려는 이들도 생겨나고는 한다. 그런데 고작 돈 얼마 더 준다고 의사들이 지방으로 내려갈 것인가.

 

그야말로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들인 것이다. 아니 그보다 당장 수가 올려주면 지방 내려갈 것이라는 의사들 자신들조차 그런다고 지방으로 내려갈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란 것이다. 그렇다 보니 몇 배의 연봉을 준다고 해도 오겠다는 의사가 없어서 지방의 공공의료기관은 더욱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보건복지부의 문건에서도 의대정원만 늘려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돈으로 유인할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나는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고, 하나는 지방에서 계속 있을 것 같은 사람을 골라서 의사를 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에 대해 반발하는 것이 의사들의 입장인 것이고.

 

당장 아무 의사나 붙잡고 물어보라. 월급 30% 더 줄테니 지방에서 일하겠는가. 서울과 인접한 수도권이 아닌 강원도나 경상도 전라도 저쪽 끝에서 한 번 일 해 보겠는가. 수가를 얼마나 올려달라고. 지방에서 의사 구하려면 연봉을 두 배도 거절한다 하는데 의료수가 두 배 이상 올리면 건강보험료는? 그래서 지방 병원들만 수가 올려주면 서울 병원이나 서울서 일하는 의사들은 반발이 없을 것인가.

 

내가 멀리 나가는 것을 귀찮아하는 이유라는 것이다. 원래 서울 살았는데 그냥 걸어서 10분만 나가도 어지간한 것은 다 있던 환경에서 경기도로 이사오니 불편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도 경기도인데도 그렇다. 그러다 오래전 강원도서 살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응답하라1994에서 인근 도시들에 대해서까지 줄줄 꿰고 있던 지방 유학생들의 모습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서울공화국이로구나. 고용지원센터 가는 게 그래서 죽도록 싫다. 현실이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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