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쉽게 오해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실제 조조를 주인공으로 삼국지연의를 아예 해체하여 재창작하다시피 한 만화 '창천항로'에서도 동탁은 서량의 기병대를 이끌고 중원을 오로지 무도와 난폭으로 짓누르는 마왕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하긴 원래 양주 출신이기도 하고, 그를 따르는 측근들이며 사병들 역시 그곳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평생 벼슬을 한 것도 기반을 닦은 것도 모두 그곳이었다. 


하지만 그래봐야 하진이 밀지를 받고 낙양으로 들어왔을 때 동탁이 거느리고 있던 병력은 고작 3천 정도에 불과했었다. 군세가 적은 것을 감추기 위해 이유가 억지로 꾀를 부려야 했을 정도로 미미한 세력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떻게 과연 동탁은 이후 전국의 난다긴다는 제후들을 거의 아우르다시피 한 17로의 연합군을 상대로 당당히 맞설 수 있는 군사력을 가지게 되었던 것일까? 동탁이 정권을 잡고 17로 제후군이 일어나기까지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 삼국지연의에서 병주자사의 신분으로 군사를 이끌고 낙양으로 들어가서 황제를 폐위시키려는 동탁에 맞섰던 정원은, 그러나 그보다 먼저 하진의 명령을 받고 낙양으로 들어가 손발노릇을 하며 집금오의 관직에까지 올랐던 인물이었다. 집금오란 곧 황실숙위대의 장이니 결국 황실을 호위하는 친위군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다. 대장군 하진이 십상시에 죽임을 당한 뒤에는 사실상 낙양에 주둔중인 중앙군을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할 수 있다. 그래서 동탁은 굳이 여포를 꼬드겨 그를 죽이게 만들고 그의 병사를 자신의 휘하로 흡수하려 했던 것이었다.


일부 특수한 겨우를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 가장 정예인 군사는 왕이 머무는 수도 인근에 주둔하는 중앙군이었다. 물론 실전경험이야 싸울 일이 많은 변경의 군사들이 더 많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군을 이끄는 실질적인 힘은 지휘관과 병사들 사이를 이어주는 요즘으로 말하면 부사관, 바로 하급지휘관들이었다. 전근대사회에서 거의 세습되었으며 임지와 직위마저 항상 고정되어 있었던 이들이야 말로 군을 움직이는 신경망이며 군을 지탱하는 허리와 같았다. 당장 한국군에서 부사관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 상상해보면 답은 바로 나온다. 실전경험은 부족할지 몰라도 오랜세월 신분을 세습해가며 직업군인으로서 전문성을 축적해 온 이들의 역량은 허투루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낙양의 중앙군을 흡수함과 동시에 주준과 같은 조정의 경험많은 지휘관들 역시 함께 휘하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들이 바로 동탁이 가진 진짜 힘의 정체였던 셈이다.


역시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부분으로 이미 후한말에 이르면 중국의 군사기술은 이민족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역사상 한무제 이후 역대 중국의 왕조가 정치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이민족과의 전투에서 크게 패퇴하거나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삼국지에서도 어지간한 이민족들은 몇몇 장수들에 의해 어이없이 패퇴하고 토벌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고구려마저 관구검의 1만 병력을 이기지 못하고 수도가 함락되는 수모를 겪고 있었다. 변경의 실전경험이 풍부한 군대라는 것도 고작 그런 의미다. 그같은 고도로 발달한 군사기술을 모두 집약한 것이 바로 중앙군이다. 그리고 그 모든 지식과 기술을 계승하며 발전시켜 온 것이 이들 전문직업군인들이었다. 17로 제후군이 아무리 수도 많고 강하다고 그런 중앙군을 쉽게 이길 수는 없는 것이었다. 역시 많은 왕조에서 역시 지방에서 일으킨 반란이 그 크기와는 상관없이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진압되곤 하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그러면 어째서 중원을 차지한 조조의 군사가 다시 원소와 원술을 쓰러뜨리고 마침내 천하의 패자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는가. 역시 마찬가지 이유다. 이들 하급지휘관들 역시 결국 낙양에 그 기반을 두고 생활하고 있던 이들이었다. 동탁이 낙양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천도하며 이들 또한 자신의 기반을 잃게 되었다. 동탁이 죽고 여포와 이각 등이 다투고 다시 이각과 곽사가 서로 싸우는 사이 동탁이 처음 장악했던 중앙군은 하나둘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그러면 그 중앙군의 유산을 가장 많이 의미있게 받아들인 것은 누구이겠는가. 원래 그런 이유로 어느 시대이든 난세를 끝내고 패자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딱 중앙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던 이들이었다. 초반의 혼란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그동안 축적해 온 힘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전쟁은 관우와 장비 등 그저 이름있는 장수 몇 명 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만인적이라 불리던 관우와 장비는 물론 유비 역시 한중에서 조조를 패퇴시켰을 정도로 군사적인 역량이 만만치 않았음에도 어째서 매번 싸우기만 하면 지고 쫓기기를 반복했는가. 조운이나 진도 같은 지휘관급은 어떻게 개인의 의리나 인정으로 가까이에 붙잡아 둘 수 있다. 하지만 이들 하급지휘관들은 생활인들이다. 명분보다 당장 자신의 가족과 내일의 삶이 우선이다. 굳이 앞날도 보이지 않는데 싸움에 져서 도망치는 유비를 끝까지 따라가야 할 이유가 그들에게는 없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안정을 찾게 되자 유비는 신야에서만도 여러 차례 조조군을 물리치며 만만치 않은 군사적 역량을 과시한다. 손발이 자기 뜻대로 움직여 줄 때 아무리 고수라도 자기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바로 이들 하급지휘관의 존재가 위촉오 삼국의 군사적 특성을 정의하게 되었는데, 이를테면 중원으로부터 한참 멀리 떨어진 강동은 굳이 중원으로 진출하여 천하를 제패해야한다는 동기 자체가 매우 약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고장을 지키는 것에는 목숨을 거는데, 그러나 영토를 벗어나 다른 이의 땅을 공격하는데는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 반면 촉은 상당수 외지인드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쉽게 근거지인 촉을 벗어나 한중으로 이동할 수 있었고, 굳이 성도의 조정과는 상관없이 제갈량과 그 뒤를 이은 강유를 따라 중원진출에 목숨을 걸 수도 있었던 것이었다. 정작 성도에 남아있던 토착인들은 등애가 산을 넘어 공격해 오자 쉽게 항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위의 군사들은 대세를 따라간다. 특히 중앙군은 누가 권력을 쥐는가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다. 원래 후한의 중앙군도 하진에서 동탁으로, 동탁에서 조조로 쉽게 자신의 위치를 바꾸고 있었다.


서량기병이라고 하지만 마초와 한수가 일으킨 반란 역시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조조에 의해 진압되고 있었다. 연의와는 다르다. 연의에서는 그나마 조조가 고전하기라도 했지만 실제 정사에서 마초는 그저 변방에서 작은 소란 정도나 일으킨 것이 고작이었다. 장로로부터 군사를 지원받아 기산을 공격했을 때도 하후연이 군을 이끌고 오자 지레 도망치고 있었을 정도였다.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군은 결국 기술이고 문명이 된다.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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