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몸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세포는 여러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분자는 당연히 원자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에는 다시 원자핵과 전자가 있다. 원자핵 안에는 양자와 중성자가, 그리고 양자와 중성자 안에는 쿼크가 각각 들어 있다. 그러면 그것들은 다시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그러나 그 전에 원자의 크기란 원자핵과 전자의 거리이며 거의 원자핵 지름의 2천배에 이르고 있다. 즉 그 나머지는 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인식하느 사물이란 촘촘하게 결합된 입자들의 집합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연히 단일체도 아니다. 오히려 느슨하게 대부분은 빈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포와 세포 사이, 분자와 분자 사이, 원자와 원자 사이, 그리고 원자핵과 전자의 거리처럼. 아마 실제 질량을 가진 입자들만을 기준으로 사람을 그려본다면 대부분은 빈 공간으로 그려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도 그것을 양감으로, 질감으로, 색감으로 인식한다. 그 인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한때 게임업계에 몸담았던 탓에 게임그래픽에 대해 이해하며 불현듯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에 대한 생각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컴퓨터 본체 안에는 그저 cpu와 메인보드와 ram과 그래픽카드와 기타 ssd와 케이스를 잇는 여러 케이블들이 있을 뿐이다. 어디에도 게임을 통해 보는 산이나 강이나 건물들, 그리고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게임데이터가 저장되는 ssd 역시 마찬가지다. 메모리반도체가 집적되어 있을 뿐 그곳에도 다른 세계의 우주나 행성같은 것은 들어있지 않다. 하지만 게임을 하는 순간 사용자들은 게임을 통해 그것이 실제 있는 것처럼 여긴다. 실제 만질 수도 있고, 집을 수도 있으며, 부술 수도 있다. 그것은 그러면 과연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것인가.


최초의 우주는 0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우주 이전은 지금의 우리들 자신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우주의 탄생 이후에 생겨난 것들이다. 우주 이전에는 지금 인간이 알고 있는 공간도 시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그러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가. 0이이란 그러면 무엇인가. 0으로부터 어떻게 그 많은 것들이, 이 끝도 없는 우주가 만들어졌는가. 다시 말해 어떻게 ssd에는 그토록 방대한 세계가 담길 수 있는 것인가.


그런 점에서 확실히 절대자의 말씀에서 이 세계가 탄생했다는 히브리의 신화는 놀라운 직관을 담고 있다 할 것이다. 사람들이 노란색을 인지할 수 있는 것은 '노란색'라는 단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직 회색과 녹색이 분리되기 전에는 사람들은 두 가지 색을 같은 색으로 여겼었다. 즉 다시 말해 우주는 어쩌면 여전히 0인 채인지도 모른다. 이 방대한 우주를 모두 더하면 여전히 처음과 마찬가지로 0인 그대로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을 인식할 수 없는 인간이 없다면 의식하지 않는 그곳에서 그것은 아무 의미없이 그곳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우주가 방대하다는 것도, 우주의 공간과 시간과 질량이라는 것 역시도. 에너지란 무엇인가. 어쩌면 우주란 인간이 세상에 나타나면서 인간의 감각속에 존재하는 허상일지 모른다.


과연 인간이 인지하는 우주와 실제의 우주가 같을 것인가. 인간이 인지하는 우주의 모습이 실제의 우주 그대로인 것일까. 우주 이전의 우주가 의미가 없듯 인간이 인지하기 이전의 우주 또한 의미가 없다. 인간 이외의 존재가 인지하는 우주란 인간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그리고 그것을 정의하는 것이 바로 말씀이다. 인간의 언어이고, 인간의 지성이고,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질서다. 인간조차 그저 무無의 허공에 존재하는 허상이 아닌가.


컴퓨터그래픽은 0이다. 전원이 들어가고 하드웨어들이 작동하기 시작할 때까지 ssd에 저장된 게임의 데이터란 0에 지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으며 인지할 수도 없다. 그러나 전원이 들어오고 모니터에 화면이 보이는 순간 그곳에는 이미 수많은 시간과 공간들이 존재한다. 인간과 새와 동물과 나무들이 존재한다. 다르지 않다. 신이 진짜 존재한다면 그는 어쩌면 프로그래머가 아닐까. 프로그램이란 무수한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망상이다. 게임과 게임그래픽에 대한 글을 쓰려다가 느닷없이 이런 헛생각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런 헛생각들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가. 무려 수 천 년 전 붓다는 그것을 고민했었다. 장자는 꿈을 꾸었었다. 부질없다고 말한 것은 공자다. 그곳에 숨은 진실을 찾으려는 것이 이데아였다. 인간이 알지 못하는, 그러나 반드시 알아야 하는 진리란 인간의 의식 너머에 있다. 끝이 없는 의식의 도돌이표다. 인간은 생각하기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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