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니 자칭 진보정당이 보수정당과 연대할 때는 매우 조용했었다. 민주노동당이 한나라당과 연대하던 때도 정작 민주노동당과 한나라당 사이에 크게 불협화음이 나거나 한 적이 거의 없었다. 반면 민주당과 연대 비슷한 걸 할 때는 무척 시끄럽다. 이건 안 된다, 저건 아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작년 패스트트랙 정국을 떠올려보면 된다. 그런데 평화당과 함께 정의평화연대를 만들었을 당시 정의당이 그렇게까지 적극적이고 열정적이었는가.

 

심지어 이제는 당대표라는 사람이 고용유연화까지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다. 김종인이 얼마전 민주당에 고용유연화를 제안했다가 퇴짜맞고 얼마 안 있어 나온 발언이다. 한 마디로 김종인 아쉬워 할 만한 부분을 잘 긁어주는 이슈를 끄집어낸 것이다. 말인 즉 좋다. 동일노동동일임금, 고용보험과 취업교육 등등등... 그런데 그런 간단한 걸 왜 아직 못하고 있는 것일까? 전부 현정부에서도 중점으로 추진하는 정책들인데 어째서 아직 다 이루지 못한 것일까? 그리고 어째서 노동자들은 해고당한다고 하면 마치 당장 죽기라도 하는 것처럼 목숨걸고 투쟁해야 하는 것일까? 그런 현실과 상관없이 국민의힘과도 접점이 있으니 우호적으로 대화를 나눠 보겠다. 그러면 문재인 정부는?

 

그래서 재미있다는 것이다. 현정부에서 최저임금을 올릴 때 정의당은 비판하고 있었다. 근로시간을 단축할 때도 마찬가지였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때도 항상 날을 세우고 있었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과 너무 다르다. 자신들이 기대하는 것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한 번에 다 이룰 것이 아니면 정부의 정책은 실패한 정책이다.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보수정당과는 어떻게든 공통점을 찾아서 대화로 풀어가려는 정의당이 민주당에 대해서만큼은 다른 점을 찾아 공격하는데 여념이 없다. 그러니까 하지 말자. 포기하자. 그만두자. 어차피 반대도 저항도 이렇게 거세기만 한데 전부를 얻을 수 없으니 비판만 한다면 아예 하지 말자는 소리다. 아마 당시도 그에 대해 그래서 한 마디 했을 것이다. 저 정도 정책에도 이토록 반대가 심한데 자기들 마음 같지 않다고 비판만 하면 무슨 힘으로 그나마라도 이루겠는가.

 

정의당과 민주당이 같은 정책을 주장한다고 해서 정책에 대한 입장이 같다고 여겨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반드시 다른 점을 찾아낸다. 아쉽고 부족한 점을 찾아내서 비판하며 반대한다. 그리고 보수진영의 반대에 밀려 결국 후퇴하거나 좌초되면 그것을 가지고 또 공격의 빌미로 삼는다. 보수정당과 연대할 때는 절대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보수정당이 집권했을 때는 점진적이며 제한적인 개혁을 주장하다가 민주당이 집권하면 아예 혁명수준을 요구한다. 그리고 안되면 그를 빌미로 다시 보수정당과 연대하여 자신들의 뜻을 거스르는 민주당을 심판하려 한다. 정의당 뿐만 아니라 자칭 진보언론 진보지식인들이 한결같이 보여 온 모습이다. 과연 누가 노무현 정부 당시 그나마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정책들을 좌절시켰는가. 그래서 노무현 정부를 무너뜨린 대가로 자칭 진보는 무엇을 이룰 수 있었는가. 그럼에도 민주당을 더 비판하고 반대하지 않아서 자신들의 진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민주당과 적대해야만 자신들의 진보는 이루어진다.

 

바로 여기서 드러나는 것이다. 국민의힘과는 어떻게든 공통점을 찾아 연대하려 하는 한 편, 민주당과는 어떻게든 차별점을 찾아 공격하는데 앞장선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진보의 이념을 이루어 줄 수 있는 것은 항상 보수정당이었고, 민주당은 단지 그 방해물에 지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악법만 늘었음에도 국민의힘과는 그래도 공통점이 있고, 자신들이 비판했던 수많은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정책들 만큼 민주당과는 차이점만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수정당과는 연대하고 민주당과는 적대한다. 작년 패스트트랙 정국에 대해 아직도 의심하게 되는 이유다. 저렇게 쉴 새 없이 떽떽거리기는 해도 정의당이 저럴 놈들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윤석열 검찰의 수사를 믿고서 시간끌기에 나섰던 것은 아닐까. 정의당이 윤석열과 소통하고 있었다는 것은 하필 공교로운 시기 심상정의 입에서 탄핵 발언이 나온 것에서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과연 심상정의 탄핵 발언이 그냥 우연히 실수로 나온 말이었을까?

 

결국 이유는 한 가지인 것이다. 내가 그동안 반복해서 주장해 온 그것이다. 보수정당은 인정의 대상이고, 민주당은 시험의 대상이다. 진보는 보수정당으로부터 인정받아야 가치가 있는 것이고, 민주당은 오히려 자칭 진보로보터 시험받고 인정받아야 비로소 자격이 생긴다. 자기가 뭐 대단한 엘리트라도 되는 양 생각하는 자칭 진보의 입장에서 그래도 자기들과 소통할 수 있는 대상은 엘리트집단인 정통 지배세력 뿐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이야 그때나 지금이다 듣보잡들 아닌가. 보수정당 정치인을 욕해도 민주당 정치인들처럼 대놓고 무시하지는 않는다. 보수정당 정치인을 비판하기는 해도 민주당 정치인들처럼 아예 노골적으로 모욕하는 경우도 드물다.

 

요즘 일때문에 바빠서 늦게서야 들었다. 하루 11시간의 노동이면 자는 시간 빼고 뉴스 챙겨보기도 쉽지 않다. 역시나 정의당이 정의당했구나. 나는 아직도 진중권이며 서민, 김경율 등이 진보에서 완전히 전향했다 여기지 않는 편이다. 가만 살펴보라. 진중권과 정의당과 한겨레의 최근 행보를 보면 어떤 차이점이라 할 만한 것이 있기는 한가. 조선일보를 받아 김봉현 의심하며 여전히 정부의 연루를 주장하고 싶어 하는 게 한겨레다. 그래서 자칭인 것이다. 진보가 아니라.

 

아무튼  참여정부 시절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당연히 한나라당 정책보다야 참여정부 정책이 더 개혁적이고 진보적이었었다. 하지만 당시 민주노동당이 선택한 것은 한나라당과 손잡고 참여정부의 정책들을 좌절시키는 것이었다. 다른 정당인가 싶었다. 작년 패스트트랙 정국 당시 그리 떽떽거리며 온갖 불만을 쏟아내던 모습을 보면서. 그러나 김종은 만난 자리에서 신임 당대표가 보인 모습은 역시 예전 그대로였구나. 자칭 진보가 어디 가지 않는다. 늘 그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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